그 블로그에 올라가면 제품동난다

그 블로그에 올라가면 제품동난다

이정흔 기자
2009.02.23 0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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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위크 커버스토리]똑소리 나는 주부 9단 와이프로거

아침 9시. 아이들을 학교에 보낸 뒤 바쁘게 집을 나섰다. 그가 향한 곳은 안국동에 위치한 아름다운재단 본사. 그의 블로그를 통해 진행했던 ‘공동구매 금액 1% 기부’ 행사에 대한 감사패를 받게 된 것이다.

아름다운재단의 행사에 참석한 뒤에는 그 옆에 위치한 박원순 변호사의 희망제작소에 들렀다. 이런저런 얘기를 나눈 뒤 희망제작소에서 진행하고 있는 사회적 쇼핑몰 ‘이로운 몰’에 대한 사업 설명을 진지하게 듣고, 상품도 한아름 받아 들었다.

점심에는 국내 유명 식품회사인 S사의 관계자와 약속이 잡혀있다. 신제품의 마케팅 제휴를 제안 받은 그는 구체적인 업무 사항과 계약 조건을 조절하느라 식사 중에도 치열한 논의를 해야 했다.

그러고도 그의 일정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유명 와이프로거들 몇명과 함께 인터뷰 요청에 응하기로 한 그는 충무로 근처의 한 신문사에서 1시간에 걸쳐 인터뷰를 마쳤다.

바쁜 하루 일과의 마지막은 바로 <머니위크>와의 인터뷰. 인터뷰 장소로 들어오는 그의 한손에는 이미 쇼핑백 가득 다양한 물건이 가득 차 있었다. 그는 “이게 다 오늘 받은 숙제”라고 웃음 짓는다. 직접 사용해 보고 후기를 작성해야 할 물건들이다.

5시가 넘어서야 인터뷰를 마친 그는 “우리 아들 밥 해줘야 할 시간”이라며 걱정이 한창이다. 지금껏 똑 부러지는 '사업가'의 모습을 보여줬던 그는 어느샌가 평범한 '주부'의 모습으로 되돌아가 있었다.

요리 블로그 '문성실닷컴'을 운영하고 있는 주부 블로거 '둥이맘' 문성실(35) 씨의 하루 일과다. 빡빡한 스케줄도 그렇지만 그가 진행하고 있는 사업만 보더라도 이미 아마추어 수준은 넘어선 지 오래다.

1인 기업가로서 당당하게 활동 영역을 넓혀 가고 프로 주부들, 그들의 직업은 '와이프로거'다.

◆와이프로거, 취미 아닌 ‘직업’

와이프로거들이 운영하는 블로그는 더 이상 ‘취미생활’이 아니다. 국내 1세대 와이프로거라고 할 수 있는 문씨를 비롯한 스타 와이프로거들의 블로그의 하루 방문자 수만 해도 1만여명을 훌쩍 넘어선다. 웬만한 미디어 못지않은 수준이다.

더욱이 블로그 방문자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주부들을 대상으로 하는 산업에 있어서는 그 영향력이 엄청나다. 한때 유행했던 ‘문성실닷컴에 어느 제품이 뜨면, 그날 슈퍼에서 그 제품이 동이 난다’는 말은 이들의 영향력을 단적으로 표현해 준다.

문씨는 최근 있었던 일화 하나를 소개했다. 그는 지난해 12월 중소형 오븐 회사인 컨벡스 코리아와 공동구매 이벤트를 실시했다. 평소 좋아하고 즐겨 쓰던 제품이었기에 블로그 식구들에게 소개하고 싶은 마음에 가볍게 진행한 행사였다. 그러나 결과는 예상 밖의 대성공. 1300대의 컨벡스코리아 오븐 제품은 단 며칠 만에 동이 났다.

문씨는 "그때까지만 해도 막연하게 느껴지던 책임감이 확실하게 다가오는 순간이었다"며 "진짜로 '내 말 한 마디가 회사 하나를 살릴 수도 죽일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털어놓는다.

인테리어 D.I.Y 블로그인 '맛. 밋. 멋'을 운영 중인 최유리(32) 씨는 "내 이름 하나를 믿고 제품을 선택하는 소비자들을 생각하면 단순히 취미로만 여기기에는 책임감이의 무게가 다르다"며 "보다 전문적인 콘텐츠로 소비자들에게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내 직업이고 와이프로거의 일"이라고 설명했다.

◆브랜드는 ‘내 이름’, 사무실은 ‘우리집’, 사장도 직원도 모두 ‘나’

1인 기업으로서 와이프로거들의 경제 활동은 어떻게 이루어지는 것일까?

와이프로거의 활동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은 기업들과의 마케팅 제휴다. 대개는 기업이 와이프로거에게 제품을 협찬해주면 와이프로거가 이를 직접 사용해 보고 후기를 올려놓는 형식으로 진행되며, 블로그를 통해 와이프로거 추천 제품을 공동구매 이벤트를 통해 판매하기도 한다.

스타 와이프로거들의 설명에 의하면 블로그의 인지도가 상승하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기업쪽에서 먼저 제의해 오는 경우가 대부분. 와이프로거 이름 그 자체가 ‘브랜드’가 되어 기업과 함께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사업 파트너가 되는 셈이다.

이밖에 자신의 블로그에 배너 광고를 띄우거나, 책을 출판한 뒤 얻게 되는 인세, 외부 기고를 통한 고료, 특별강연 등을 통해서도 추가 수익이 발생한다.

이렇게 해서 이들이 얻는 수익은 한 달에 300만원 남짓. 국내 대표적인 스타 와이프로거의 경우 한 달에 1000만원 정도의 수입이 가능하다고 하니 여느 중소형 기업 못지않은 규모다. 다만, 고정적인 수입이 아닌 탓에 월별로 편차가 클 수 있다는 것이 단점이다.

그러나 이들의 가장 중요한 본업은 뭐니 뭐니 해도 자신의 블로그를 관리하는 일이다. 대개 일주일에 2~3일은 기업관계자들과 만나 사업 진행과 관련된 얘기를 나누고, 나머지 시간은 블로그를 관리하는 데 투자한다. 말하자면 자신의 집이 사무실이 되는 셈이다

최유리 씨는 “집에서 일을 한다면 편할 것 같지만 사실 처음에는 블로그 관리와 개인 생활을 구분하는 데 애를 먹었다”며 “지금은 요령이 생겨 아이들을 학교에 보낸 뒤부터 아이들이 돌아올 때까지를 ‘업무시간’으로 정해 놓고 하루 일과를 조절하다보니 여느 직장생활과 다름없다"고 말한다.

◆프로 와이프로거의 고민... '사업자 등록' 등 문제 많아

와이프로거들의 활동 규모가 이처럼 확대되고 상업화되면서 문제점도 적지 않게 드러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사업자등록’이다. 아마추어 블로그에서 자연스럽게 사업으로 연결된 와이프로거들은 사업자등록 없이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

한 와이프로거는 “최근 한 식품 업체와 제휴 마케팅을 논의하다, 같은 제품의 다른 업체와 먼저 계약이 체결되는 바람에 함께 일하지 못한 적이 있었다”며 “그런데 이후 그 식품 업체가 ‘불법’ 사업을 하고 있다며 내 블로그를 고발해 곤란을 겪은 적이 있다”고 털어놓는다. 실제로 경쟁 업체나 와이프로거들 사이에서 이런 일이 비일비재 하다는 고백이다.

그는 “와이프로거들의 경제활동이 초기 단계여서 그런지 아직까지 현실적으로는 법적인 규제조차 제대로 마련돼 있지 않다”며 "막상 이런 문제가 닥치면 어떻게 해야하는지 정확한 가이드라인이 없어 우왕좌왕하다가 손해를 키우는 경우도 많다”고 안타까워했다.

문성실 씨는 1세대 와이프로거로서 조금 더 깊은 고민을 털어놓았다. 문씨는 “주변에서는 ‘문성실’이라는 브랜드가 어느 정도 자리 잡았으니 지금쯤 본격적으로 쇼핑몰 사업을 시작하는 등 본격적으로 사업 규모를 키워야 하지 않느냐는 권유가 많다”며 “나 역시도 진지하게 고민 중이지만 그게 와이프로거로서 올바른 방향인지는 결론을 내기가 어렵다”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는 “하지만 와이프로거가 직업이 된 만큼 이제는 어떤 형태로든지 사업 활동을 이어나가야 되지 않겠냐"며 "와이프로거가 어떻게 발전할지, 내가 어떤 모습으로 활동하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조만간 1세대 와이프로거로서 새로운 도약을 꿈꾸고 있다”는 욕심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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