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니위크]박정수의 미술 감상법

정일모, 말뚝박기, 53x46cm, Acrylic on canvas, 2009
이탈리아 로마에는 카타콤베(Catacomb)라는 것이 있다. 초기 기독교인들의 도피처이기도 한 이곳에는 포도넝쿨, 물고기, 빵과 같은 기독교적 상징물이 벽화로 남아 있다. 글을 읽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포교하기 위한 방법이었거나 로마 학정에 반하는 정보를 그리기 위한 것이라 여겨진다.
과거에 대한 역사적 사실과 근원을 찾는 데는 문자와 구전(口傳)이 중요한 수단이다. 하지만 그림 또한 과거의 사실을 이해할 수 있는 의미 있는 기록임이 분명하다. 문자로 기록할 수 없는 사실을 기록하기 위해 암호화된 특정의 의미를 지닌 그림을 활용하는 것이다. 미술에서는 이렇듯 거창한 역사나 신화를 기록하기도 하지만, 개인의 기억과 흔적을 그리기도 한다. 개인의 삶이 시대를 살아가는 대변인이 되기도 하기 때문에 개인의 기록 역시 예술로서 한 부분을 차지한다.
정일모의 <말뚝박기>는 성인이 된 현시점에서 자신을 찾아 가는 기억의 여정을 그려낸 작품이다. 과거의 즐거움에 대한 탐구로서 현재의 자아실현과 본성에 대한 탐색이다. 추억의 한켠으로 남아있는 어릴 적 사건을 그림으로 재현하면서 지금의 각박한 현실을 피해가거나, 현재의 즐거움을 더욱 행복하게 하는 방법이다. 감상자에 따라 달라지는 과거의 회상이다.
<말뚝박기>는 과거의 여러가지의 놀이 기억 중의 한부분이다. 누구나 즐겼을 놀이를 통해 즐거움과 기쁨에 대한 현시점의 감상을 재현한다. 그렇게 높았던 동네 야산은 어느 사이 둔덕으로 변했고 등대고 말뚝을 치던 아름드리나무는 그저 그러한 나무로 줄어들었다. 편을 짠 후 한 팀은 다른 팀을 반드시 이겨야 한다. 말뚝을 무너뜨리거나 가위바위보로 이겨야 한다. 화가는 즐거운 마음과 담담한 기억을 그림으로 재현하지만 감상자에게는 무한의 상상력을 제공한다. 그림을 보면서 그 속에다 감상자 자신의 동네와 자신의 주변 인물들을 배치시킨다. 화가가 그리는 기억은 자신의 것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것이 된다.
과거의 즐거웠던 기억은 현재에서 망각되거나 재구성한 기억들이다. 현재의 나와 과거의 나를 하나의 나로 일관되게 만들어 주는 매개의 공간이다. 유년기 즐거운 기억에 대한 재현은 현재 마주치고 있는 현실에 대한 대응이거나 자아 성찰을 위한 과정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