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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한 만화' 그려주던 고딩, 지금 뭐하나 보니

[청년이여 도전하라] <5> 만화가 강호진

머니투데이 류지민 기자 |입력 : 2012.07.18 07:00|조회 : 415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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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웹툰에 5년 넘게 '호랭총각'을 연재중인 강호진씨가 충남 당진의 작업실에서 만화를 그리며 활짝 웃고 있다. 당진(충남)=이기범기자 leekb@mt.co.kr
고교시절. 전교생이 '야한 잡지'는 모두 가져다 줬다. 만화 그리는데 참고하라고.

공부에 흥미가 없었던 18살 소년은 친구들에게 섬세하고 부드러운 터치로 만화를 그려 돌렸다. 주위의 열광적인 반응은 마약과도 같았다. 재밌어 하는 친구들의 눈빛을 보면서 점점 더 만화에 빠져들었다. 연습장에 그린 만화들은 인근 학교까지 소문이 퍼지며 인기를 끌었다. 다른 친구들은 도서관에서 밤을 보내는 고3 수험생 시절, 그는 밤새 만화를 그렸다. 그렇게 만화가가 돼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강호진씨(35)는 네이버 웹툰에 5년 넘게 '호랭총각'을 연재하고 있다. 물론 처음부터 만화를 좋아했던 것은 아니었다. 공부를 잘했던 두 형과는 달리 그는 흥미를 느끼는 일이 별로 없었다.

"끄적거리는 것을 좋아했어요. 주로 수업시간에 그랬죠. 원래 공부하는 타입은 절대 아니었으니까요. 수업시간에는 내내 뭔가를 그리고 있었던 것 같아요. 칠판을 보고 있는 것 자체가 힘들었는데 그걸 만화로 이겨낸 셈이죠. 친구들이 제 만화를 서로 보겠다고 다툴 때는 '아, 내가 만화에는 소질이 좀 있나보다'라는 생각도 들었어요"

백지 한 장과 펜 하나만 있으면 행복했던 시간. 이내 장벽에 부딪쳤다. 엄했던 아버지의 반대. 재수를 해서라도 만화를 하고 싶다는 그에게 아버지는 중문과·철학과·무역학과를 제시했다. 어릴 때부터 아버지의 말이라면 다 따랐던 그는 결국 철학과에 진학했다.

대학에 입학했지만 방황의 시기가 찾아왔다. 수업은 뒷전이었다. 도서관에 박혀 해부학 책부터 시작해 미술과 관련된 책들을 닥치는 대로 읽어나갔다. 밴드에 가입해 기타를 치기도 했지만 만화를 그리고 싶다는 생각을 지울 수는 없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아버지의 뜻에 따라 고향 부산에서 일 년을 더 머물렀지만 마음은 대학에서 이미 떠난 상태.

졸업 후 2000년 가방 하나만 들고 무작정 서울로 올라왔다. 서울에 살던 작은형 집에 얹혀 지내며 하고 싶던 만화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화실을 다니고 공모전에 낼 작품을 그리며 하루하루 꿈을 향해 나아갔다. 또 다시 난관이 찾아왔다. 만화 시장은 극심한 쇠퇴기에 접어들고 있었다.

"만화가가 배고픈 직업이고 힘들 것이라는 건 충분히 각오했지만 시장 자체가 없어져버리는 상황이 되니까 말 그대로 '멘붕'이 오더군요. 특히 국내 출판만화시장은 거의 붕괴 상태와 다름없게 됐으니 충격이 컸죠"

2005년 강씨는 인생의 전환점을 맞았다. 아내 정유진씨(28)를 만나 결혼을 한 것. 가장이 된 그는 이제 정말 만화를 그만둬야겠다고 결심했다. 당시 수입이 전무한 상태였을 뿐 아니라 계속 만화를 그려서는 미래가 불투명했기 때문이다.

결혼후 1년 뒤인 2006년 강씨는 만화를 접고 제대로 된 직장을 구하겠다고 아내에게 말했다. 정씨는 한 마디를 건넸다. "딱 1년만 더 죽기 살기로 매달려봐. 그동안은 내가 벌게" 그는 마음을 다잡고 미친 듯이 만화에 매달렸다. 때마침 침체일로에 빠져 있던 만화 시장에 '웹툰'이라는 새로운 형식의 만화가 태동하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다시 1년 뒤. 2007년 5월, '호랭총각'이 탄생했다.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인간사회에서 생활하게 된 호랑이의 이야기. 언뜻 생각하면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동화 같지만 풍자와 패러디로 가득 찬 내용에 성인들은 뜨거운 반응을 보였다.

입시제도와 전투기 도입사업, 한류 등 결코 가볍지 않은 사회문제를 다루면서도 적절한 희화화와 유머코드를 사용해 유쾌하게 풀어냈다. 그의 만화에는 텍스트의 비중이 상당히 높지만 막힘없이 유쾌하게 읽힌다.

만화가로 등단했지만 삶은 넉넉하지 않았다. 전세값이 폭등하면서 서울에서 남양주, 양주를 거쳐 충남 당진까지 둥지를 옮겼다. 2년마다 이삿짐을 쌌지만 꿈을 잃지 않았다. 30세에 만화가의 길로 접어들어 다소 늦은 나이에 필명을 알렸지만 그는 지금 행복하다고 했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며 가족들과 그 즐거움을 함께 공유할 수 있다는 것에서 충만한 행복을 느낀다고 했다.

만화가의 꿈을 이룰 수 있게 도와준 아내는 이제 호랭총각의 컬러링(흑백 화면에 색깔을 입히는 작업)을 누구보다 빠르고 완벽하게 해내는 든든한 동업자가 됐다. 만화를 한다고 했을 때 가장 많이 반대를 했던 아버지는 지금은 가장 열렬한 팬이자 조언자다.

"꿈을 이루는데 가장 중요한 건 끝까지 꿈을 포기하지 않는 것 같아요. 저 역시 몇 번의 위기를 겪었지만 그때마다 항상 언젠가는 만화로 돌아가겠다는 의지와 믿음은 간직하고 있었거든요. 지금도 그리고 싶은 이야기들이 늘 머릿속에 가득 차 있어요. 다음 작품은 농촌로맨틱코미디를 준비 중이에요. 재밌겠죠?"

신바람 나서 차기작의 내용을 설명해 주는 그는 정말 즐거워 보였다. 장발의 머리에 배우 오달수를 빼닮은 그의 얼굴에서 19살 소년의 해맑은 표정이 엿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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