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지주 내에서 1위가 무슨 의미가 있나."
양종희 KB금융그룹 회장이 은행과 보험사의 협업을 통해 방카슈랑스 역할을 재정립하려는 배경엔 금융지주의 성장성 약화라는 문제의식이 있다. KB금융은 국내 금융지주 중 1위를 유지하고 있지만, 최근 증시 활황에 따른 머니무브 등으로 은행 중심 금융지주의 성장성이 정체되는 흐름이 뚜렷하다.
KB금융의 올해 1분기 당기순이익은 1조8924억원으로 전년 대비 11.5% 성장하며 '리딩금융' 지위를 지켰다. 국민은행의 압도적인 고객 기반과 경쟁 금융지주 대비 다각화된 비은행 포트폴리오를 바탕으로 업계 1위 자리를 공고히 하고 있지만 양 회장은 여기에 만족하지 않는 모습이다.
현재 개별 증권·보험사의 추격이 거세다. 미래에셋증권은 불장에 힘입어 올해 1분기 전년 동기 대비 288% 급증한 1조19억원의 순이익을 벌어들였다. 분기 기준 증권사가 1조원 이상의 이익을 낸 것은 처음이다.
삼성생명과 삼성화재 등 삼성 보험계열사는 올해 1분기 1조8388억원 순이익을 벌어들이며 KB금융을 턱밑까지 추격했다. KB라이프생명과 KB생명은 각각 업권에서 7위, 4~5위권에 머물러 선두와의 격차가 크다.
은행원 출신으로 KB손보 대표와 KB금융지주 보험부문장 등을 지낸 양 회장은 고령화 시대에 방카가 WM(자산관리)의 핵심이 될 수 있단 판단을 해왔다. 방카슈랑스의 판매 철학을 단순 상품 판매에서 고객의 생애주기에 맞춘 보험·투자·노후 설계를 통합적으로 제공하는 플랫폼으로 진화시켜야 한단 구상이다. 보험은 상속·증여·절세 등 복합적인 자산관리 수단으로 활용될 수 있다는 점에서 단순 투자상품과 차별화된다는 판단이 깔려 있다.
KB금융은 방카 상품 개발 초기단계부터 은행과 보험사 상품팀이 협업하는 시스템을 구축한다. KB국민은행의 고객 접점과 보험사의 상품제조 역량을 결합한 독점적 경쟁력을 확보한단 전략이다. 삼성 보험계열사에 없는 국민은행의 방대한 고객 데이터를 기반으로 보험 수요를 분석하고 전국 영업망까지 활용할 수 있단 점은 금융지주 체제만의 강점을 극대화할 수 있는 대목으로 평가된다.
금융당국이 강조하는 '소비자 보호' 관점에서도 방카의 역할 재정립이 필수적이란 게 양 회장의 판단이다. 지금까지 국내에서 방카는 고금리·고환급률 저축성 보험 중심으로 성장해왔다. 또 판매가 쉽고 수수료가 일시에 지급돼 핵심성과지표(KPI)에 즉각 반영되는 일시납 상품 판매에 치우처 있었다. 안정적 장기수익 기반을 마련할 수 있는 적립식 상품 판매는 감소 추세를 보였고, 고객 자산관리 관점의 포트폴리오형 판매는 사실상 부재했다.
반면 일본은 일시납 상품 비중을 줄이고 장기 적립식 변액보험과 간병·치매 등 노후 보장 기능이 결합된 하이브리드 상품 중심으로 포트폴리오를 확대 중이다. 프랑스의 방카 채널에서 생명보험은 고객의 종합자산관리 관점에서 절세 솔루션으로 활용되고 있다. KPI도 수수료 중심이 아닌 고객 민원, 적합성 원칙 준수 여부, 장기수익률 위주로 책정한다.
양 회장은 은행에서 파는 보험의 불완전판매 비율이 상대적으로 낮단 점에도 주목한 것으로 전해진다. 금융당국에 따르면 지난해 방카슈랑스의 불완전판매 비중은 0.009%로, 법인보험대리점(GA)의 불완전판매 비중(0.026%)보다 크게 낮았다.
KB금융은 고액자산가, 일반고객, 법인고객 등 고객 유형별로 판매인의 역할과 상담 방식, KPI 등을 차별화해 운영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AI에이전트를 활용한 방카 상담 지원과 디지털 프로세스 개선, 방카 상품 판매 전문성 강화도 추진할 방침이다.
KB금융 관계자는 "이번 방카 개편은 보험사와 은행이 협업해 상품 경쟁력을 끌어올리는 것 이상으로 소비자보호 관점이 강조돼 있다"며 "단순히 수수료 장사의 의미를 넘어 고객의 생애주기에 걸쳐 자산관리에 도움이 되는 포트폴리오를 제공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