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유럽 위기' 먹고 큰 서유럽 은행

'동유럽 위기' 먹고 큰 서유럽 은행

프랑크푸르트(독일)=김익태 기자
2009.04.06 0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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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금융강국 코리아] <제1부> 글로벌 금융 대격변기(4)

- 대출 국가별 충격파 달라 위기대응 온도차

- 추가 재정지출 합의 실패로 금융불안 상존

지난달 27일 오후 독일 프랑크푸르트 시내 뢰머광장. 토요일이어서 평소같으면 각국 관광객이 붐비는 곳이지만 이날은 시위대가 차지했다. 비가 내리다 개었다 하는 궂은 날씨에도 2만5000여명이 광장에 몰렸다.

"너희 위기에 돈을 대줄 수 없다." "은행들이 경제위기에 책임을 져야 한다." 뢰머광장은 금융위기 성토장이 됐다. "국제 금융시장에 대한 구속력 있는 규제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좌파 지도자인 오스카 라폰타이네씨가 연단에 나와 "고소득자에 대한 증세와 저소득자를 위한 경기부양책을 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일부 청중은 날계란을 던지며 야유를 퍼붓기도 했다.

이날 프랑크푸르트뿐 아니라 베를린 런던 빈 로마 파리 등 유럽 전역에서 주요 20개국(G20) 정상회담에 반대하는 동시다발적인 시위가 벌어졌다. 현지 언론은 글로벌 금융위기에 따른 경기침체의 충격을 단적으로 보여준다고 전했다.

절약이 몸에 밴 독일인들은 외형상 불황을 그리 타지 않는 듯 보였다. 하지만 식당 등 서비스업체들은 아우성이었다.

한산한 프랑크푸르트 중심가 전경
한산한 프랑크푸르트 중심가 전경

프랑크푸르트 시내에서 와인숍 '빌라비눔'(Villa Vinum)을 운영하는 클라우스 디이터 바이스씨(42)는 "와인 매출이 금융위기 이전보다 15% 정도 줄었다"며 "특히 30유로 이상 와인 소비가 크게 줄었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시내 외곽에서 전통 이탈리안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알베르토씨(45) 역시 "평일 저녁에도 60석 중 3분의2 이상 손님이 찼지만 요즘에는 3분의1에 그친다"고 전했다.

◇금융부실에 떨고 있는 서유럽=독일을 포함한 서유럽국가들은 글로벌 금융위기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자국 은행들이 국가부도 우려가 나오는 동유럽국가에 상당한 대출을 해준 탓에 부실 가능성이 커진 데다 경기도 위축돼서다.

소련이 붕괴된 직후 서유럽국들은 동유럽국의 최대 자금 공급처였다. 지난해말 동유럽국 대출금 1조7000억달러 가운데 90%가량인 1조5000억달러가 서유럽자금이었다. 최근 수년간 동유럽국들이 유럽연합(EU)에 속속 가입했고 이 과정에서 서유럽계 은행들이 이 지역에 대거 진출한 결과다.

라이파이젠, 에르스테 등 오스트리아계 은행들이 20%가량, 유니크레디트 등 이탈리아 은행도 15% 정도의 자금을 각각 댔다. 특히 폴란드 체코 헝가리 루마니아 우크라이나 등 최근 국가부도 가능성이 제기되는 곳에 대출이 집중됐다. 동유럽경제가 최근 7년간 연평균 5% 성장하는 사이 현지 서유럽계 은행 자회사들은 모은행의 수익을 키웠다.

지난달 27일 프랑크푸르트시 뢰머광장장에는 2만5000여명의 청중이 모여 G20 반대 시위를 펼쳤다.
지난달 27일 프랑크푸르트시 뢰머광장장에는 2만5000여명의 청중이 모여 G20 반대 시위를 펼쳤다.

서유럽계 은행들은 글로벌 금융위기가 진행되자 무차별적인 자금회수에 나섰다. 동유럽이 흔들리면 그 충격은 서유럽에 미칠 수밖에 없다. 특히 국내총생산(GDP) 대비 동유럽 대출비중이 큰 오스트리아(56%) 벨기에(24%) 스웨덴(19%) 등이 더 큰 타격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요헨 뫼베르트 도이체방크 이코노미스트는 "동유럽이라도 어느 국가에 대출을 많이 해줬느냐에 따라 충격의 강도는 달라질 것"이라며 "독일과 프랑스는 체코 슬로바키아 등 비교적 상태가 나은 곳에 투자가 많았던 반면 오스트리아 벨기에 등은 루마니아 불가리아 발틱국가들에 대한 대출비중이 크다"고 설명했다.

◇국제 공조체계 절실=소련 붕괴 후 동·서유럽은 금융뿐 아니라 경제 각 분야에서 교류의 폭을 넓여왔다. 최근 동유럽발 위기가 유럽경제, 나아가 세계경제 침체를 가속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한국도 지난해 동유럽 수출이 급감했고, 앞으로 유럽연합(EU) 수출까지 큰 타격을 받을 것으로 전망된다. 이에 따라 EU 차원을 넘어 세계 각국의 공조체계 구축이 절실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 지난 3일 런던에서 막을 내린 G20 정상회담에서는 신흥경제국과 개발도상국에 금융거래 지원과 유동성 확대방안에 대한 합의가 이뤄졌다. 각국 정상은 미국과 영국의 주도로 국가부도 위기에 몰린 신흥국 지원 등을 위해 국제통화기금(IMF)에 7500억달러 규모의 자금을 추가 공급하기로 했다.

독일과 프랑스의 강력한 요구에 따라 금융상품과 금융기관에 대한 규제 강화도 합의됐다. 이번 금융위기가 미국식 금융시스템의 폐해에서 비롯된 것으로 인식한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은 이번 회의에서 가시적인 규제 강화가 이뤄지지 않으면 협상에 참여하기 힘들다고 압박했을 정도다. 동유럽 금융위기 같은 돌발상황을 사전에 차단하고 위기 발생시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방안도 마련키로 했다.

하지만 세계경제의 4% 성장 회복을 위한 적극적 대응에는 합의했지만 추가 재정지출 규모의 합의 도출에는 실패했다. 미국 영국 일본 등은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국제적으로 보다 과감하고 신속한 재정지출 확대가 필요하다고 주장한 반면 독일과 프랑스는 추가 재정지출 확대에 반대했다.

삼성경제연구소의 정무섭 수석연구원은 "재정지출에 대한 국제공조 합의 실패로 세계경제는 지역별로 회복속도가 차별화될 전망"이라며 "경기부양책에 대한 의지나 실제 집행규모가 미흡한 유럽은 미국과 중국에 비해 경제회복이 상대적으로 더디게 진행될 것"이라고 말했다. 동유럽발 금융불안이 쉽게 가시기 힘든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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