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부 손희경(가명, 34세)씨는 최근 집 욕실을 리모델링하면서 세면대부터 욕조, 양변기까지 모두 아메리칸 스탠다드 제품으로 맞췄다. 손씨는 아메리칸 스탠다드가 유명 호텔 등에 시공되는 브랜드고 미국산이라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손씨는 "상호명부터가 '미국 표준'이고 실제로 미국에서 유명한 브랜드라 하니 믿음이 간다"며 "디자인도 국산 제품에선 볼 수 없는 것들이 많아 만족한다"고 말했다.
아메리칸 스탠다드가 미국 브랜드라 선호한다는 손씨. 하지만 그가 알면 크게 실망할 만한 사실이 하나 있다. 아메리칸 스탠다드는 사실 미국 브랜드가 아니라 일본 브랜드다.
욕실 인테리어 리모델링 수요 증가와 해외 직구 트렌드의 확산으로 수입산, 명품 욕실제품을 찾는 소비자가 늘고 있지만 예상 밖의 브랜드 소유주 때문에 혼돈을 유발하는 경우가 있어 주의가 요구된다.
8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일본 최대 건축자재그룹인 릭실은 지난해 8월, 아메리칸 스탠다드의 지주회사인 ASD아메리카 홀딩스 지분 100%를 5억4200만 달러에 사들이고 아메리칸 스탠다드를 자회사로 편입시켰다. 국내에서 '미국산', '고급' 욕실 브랜드의 대명사로 꼽히는 아메리칸 스탠다드가 일본 브랜드로 재탄생하게 된 배경이다.
이는 지난 2009년 릭실이 아메리칸 스탠다드의 아시아 지역 판매 및 마케팅 권한을 인수한 데 이은 후속조치로, 침체된 내수시장에 대한 돌파구를 해외시장에서 찾고 있는 릭실의 글로벌 경영전략의 일환으로 진행됐다. 릭실은 지난 2011년 이탈리아의 커튼월 제조업체인 '퍼마스틸리사'를 인수하는 등 글로벌 건축자재기업으로 발돋움하기 위한 라인업 구축에 힘쓰고 있다.
아메리칸스탠다드가 미국 브랜드로 오해받는 경우라면 그 반대의 사례도 있다. 한국 브랜드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미국업체가 소유하고 있는 비데전문 업체 '노비타'가 대표적이다.
노비타의 시작은 물론 한국에서였다. 지난 1984년 한일가전주식회사로 설립된 이 회사는 1998년 노비타로 상호를 변경했다. 하지만 경영위기를 겪으며 2007년 사모펀드인 보고펀드에 인수됐고 2011년 말, 미국의 욕실기업인 '콜러'에 지분 100%가 최종 매각되면서 미국 회사로 바뀌었다.
전문가들은 회사의 주인이 바뀌면 전반적인 경영틀에서부터 디자인 정책, 제품 생산에 이르기까지 다방면에 걸쳐 변화가 일어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이같은 변화는 제품의 품질에 영향을 미치는 만큼 최종적으로 선택을 해야하는 일반 소비자들에겐 중요 판단 근거가 된다. 노비타의 경우 보고펀드가 인수한 이후 저가 경쟁, 홈쇼핑 채널 확대 등에 나서면서 기존에 갖던 '고급제품'의 이미지가 퇴색됐다는 지적을 받기도 한다.
업계 한 관계자는 "인수합병을 통해 주인이 바뀐 회사가 고유의 아이덴티티를 잃고 변화하는 사례는 수도 없이 많다"며 "이런 속사정을 자세히 알지 못하는 소비자들은 브랜드네임만 믿고 제품을 구매했다가 낭패를 보기도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