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동!사건팀]아파트 재개발 지지부문하며 재래시장 상권 '한숨'
김금순씨(65·가명)는 서울 양천구 신정제일시장에서 42년째 가방 장사를 해 온 '터줏대감'이다. 9평(29.75㎡) 남짓한 김씨의 가게에 쌓인 가방들은 며칠째 그 자리 그대로다. 꽃 피는 4월, 손님 없는 가게를 지키는 김씨의 얼굴에는 봄이 오지 않았다.
김씨는 "요즘엔 하루종일 손님 한 명없이 공치기 일쑤"라며 한숨을 쉬었다.
김씨의 가방가게 맞은편에서 30여년간 야채와 반찬을 팔아 온 박명순씨(60)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박씨는 오후 5시면 가게 문을 닫는다. 저녁이 돼도 장 보러 오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재래시장 주변 아파트 재개발 사업이 10년 넘게 지지부진하며 지역 상권에 찬바람이 이어지고 있다. 철거가 80% 가량 이어지며 주민들이 떠나 유동인구가 줄면서 재래시장에 12년째 겨울이 지속되고 있다. 그 사이 그나마 있던 '손님'들은 장보기가 편한 대형마트로 발걸음을 옮겨 재래시장 상인들은 이중고에 시달리는 형편이다.
◇ "10여년전 재개발 이야기 돌면서 손님도 뚝"
한때 저녁마다 발디딜 틈도 없던 신정제일시장에서 손님 구경이 어려워진 건 1990년대 말부터 였다.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국내 경제침체와 함께 지역 상권에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주변에 지하도로가 생기면서 유동인구가 줄고 손님들은 대형마트로 발길을 돌렸다.
무엇보다 신정제일시장이 찬바람을 맞게 된 이유는 주변 주택가 재개발(신정4지구 재개발사업)로 주민들이 속속 지역을 떠나면서. 70개가 넘던 상점이 가득 들어찼던 시장에 현재 남은 점포수는 50개 정도. 남은 상점마저도 장사가 시원치 않아 평일에도 문을 닫기 일쑤다.
지난 13일 찾은 시장에는 텅 빈 한 정육점 냉장고가 눈에 띄었다. 정육점 주인은 "육류 제품은 신선도가 생명인데 언제 팔릴지 기약이 없으니 바깥 냉장고에 고기를 내놓아봐야 색깔만 변할 뿐"이라고 설명했다.
'훈이네 맛있는 반찬 야채가게'를 운영 중인 박씨는 신정제일시장에서 야채장사를 하며 1남 1녀를 결혼까지 시켰지만 이제는 하루벌이도 쉽지 않다.
독자들의 PICK!
박씨는 "시장 골목 노점에서 장사를 하려고 해도 1500만원 가까운 거금이 들던 시절이 있었다"며 "이제는 보증금 500만원에 월 50만원이면 가게 하나 임대 받을 수 있지만 임대료만큼 수익이 나지 않는다"고 전했다.
◇"재개발 완료되면" VS."이젠 돌아오지 않아"
한파가 몰아닥친 신정제일시장을 여전히 떠나지 못하는 상인들은 '기대파'와 '포기파'로 나뉜다. 기대파는 재개발지역에 아파트 단지가 완공되면 상권도 살아날 것으로 기대했다.

신정4지구 재개발사업을 담당한 현대건설에 따르면 1081세대가 모인 아파트 단지가 이르면 오는 9월 착공, 2015년에는 입주가 완료된다.
기대파에 속하는 박씨는 "80년대 목동에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들어설 때도 손님들이 많이 늘어났다"며 "하루빨리 아파트가 들어서기만을 기다리고 있다"고 밝혔다
이에 반해 포기파는 시장 주변에 주거인구가 증가해도 재래시장이 살아나긴 힘들 것으로 예상하면서도 대안이 없어서 시장에 남은 경우다.
아파트단지에는 상가가 따로 마련되는데다 주변 대형마트 때문에 새로운 주민들이 재래시장으로 애용하진 않을 것이란 분석이다.
30년 가까이 제일시장에서 일한 상인 김모씨(70)는 "대형마트로 들어갈 수도 없고 그렇다고 다른 재래시장으로 옮긴다 해도 장사가 잘 되리란 보장도 없다"며 "그저 지금의 시간이 지나가길 기다릴 뿐"이라고 말했다.
현재 신정4지구 재개발사업에는 약 80% 가량 철거가 완료된 상태지만 건설사와 철거주민 사이 합의가 마무리되지 않았다. 더욱이 신정4지구 이주대책위원회와 현대건설의 팽팽한 줄다리기로 협상 과정이 답보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