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4년 전 한국 탁구를 세계 정상으로 이끌었던 정현숙 한국여성탁구연맹 회장이 넘을 수 없는 벽이 된 중국 탁구의 시작점을 생활체육에서 찾았다.
정현숙 회장은 1973년 사라예보 세계탁구선수권대회 여자단체전 우승 주역으로 꼽힌다. 정 회장은 은퇴 이후에도 한국 탁구 발전을 위해 다양한 활동을 이어왔다. 특히 생활탁구 저변 확대와 세계 교류에 꾸준히 힘써왔는데, 이번 XIOM 2026 강릉세계마스터즈탁구선수권대회에도 동반자 포함 한국여성탁구연맹 소속 선수 160명과 함께하며 한국에서 처음 열리는 세계마스터즈 무대를 맞이했다.
정 회장이 현역일 당시만 해도 만리장성은 결코 넘을 수 없는 벽까진 아니었다. 1970년대 이전까진 유럽과 일본도 세계 무대에서 강세를 띠고 있었지만, 1980년대부터는 서서히 세계 무대를 독식했다. 중국 여자 탁구가 가장 먼저 패러다임을 쥐었다. 중국 남자 탁구 역시 여자부만큼은 아니지만, 꾸준히 계보를 잇는 선수들이 출현하고 있다.
중국 탁구의 무서운 점은 꾸준함과 깊이다. 일례로 올림픽 여자 단식에서 중국은 단 한 번도 금메달을 놓친 적이 없다. 올림픽 10연패로 최근 5번의 올림픽 결승은 모두 중국 선수들 간 맞대결이었다. 여자 복식 단체와 남자 복식 단체도 8연속 금메달 신화를 쓰고 있다.
그 저력의 비결이 생활 체육에 있었다는 것이 정 회장의 주장이다. 정 회장이 생활탁구의 중요성을 본격적으로 느낀 계기는 1990년 베이징아시안게임이었다. 당시 중국에서 일상에 자리 잡은 탁구 문화를 보며 엘리트 경기력의 기반 역시 폭넓은 생활체육에서 나온다는 점을 깨달았다고 한다. 정 회장은 "중국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탁구를 즐기는 모습을 보면서, 강한 탁구를 만들기 위해서는 많은 사람이 함께하는 기반이 중요하다고 느꼈다"고 돌아봤다.

정 회장은 이후 여성 스포츠 활성화와 생활탁구 보급에 힘썼고, 2009년 출범한 한국여성탁구연맹을 중심으로 더 많은 사람이 탁구를 즐길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갔다.
세계마스터즈탁구선수권대회와 인연도 그 연장선에 있었다. 한국여성탁구연맹은 2012년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열린 세계베테랑탁구선수권대회(현 세계마스터즈탁구선수권대회)에 처음 선수단을 꾸려 참가했다. 당시 한국 생활 탁구에는 아직 세계 베테랑 무대가 낯설던 시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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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회장은 "처음에는 세계대회라고 하니까 우리가 나갈 실력이 되느냐고 걱정하는 분들도 있었다. 하지만 엘리트 선수들에게 세계대회가 있듯 생활체육 선수들에게도 세계대회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어 "참가했던 분이 '올림픽에 온 것 같다'고 이야기했던 것이 아직 기억난다. 세계 여러 나라 선수들과 경기하고 함께 어울린다는 경험 자체가 큰 의미였다"고 덧붙였다.
이후 한국 선수들은 꾸준히 세계 무대에 동참했고, 한국 개최에 대한 꿈도 키워갔다. 정 회장은 한국여성탁구연맹을 중심으로 2015년 쑤저우세계탁구선수권 현장에서 2018년 세계베테랑탁구선수권 유치에도 도전한 경험이 있다. 비록 당시 유치까지 이어지진 못했지만, 한국 생활 탁구의 가능성을 국제무대에 알리는 의미 있는 과정이었다. 정 회장은 "유치에는 실패했지만, 얻은 것은 분명히 있었다. 한국의 생활 탁구도 큰 대회를 준비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그리고 10여 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 세계마스터즈탁구선수권대회는 마침내 한국 강릉에서 열리게 됐다. 정 회장은 "2024년 부산에서 성공적으로 개최한 세계선수권대회도 그렇고, 열심히 환경을 만들어간 탁구인들의 공이 크다고 생각한다. 이번 대회 역시 훌륭한 경기장을 배경으로 외국 선수들에게 좋은 인상을 줄 수 있을 것 같다. 한국에서 처음 열리는 대회인 만큼 우리의 모습을 보여줄 좋은 기회"라고 기대했다.
또한 이번 대회가 국내 생활탁구 활성화에도 새로운 전환점이 되기를 바랐다. 정 회장은 "세계대회에 참가한 분들은 돌아가서 그 경험을 이야기하게 된다. 그러면 더 많은 사람이 관심을 갖고 '나도 한번 도전해보고 싶다'는 마음을 갖게 된다. 이번 대회가 그런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XIOM 2026 강릉세계마스터즈탁구선수권대회는 6일 오후 강릉 오발(스피드스케이팅경기장)에서 열린 개막식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일정에 돌입했다. 정현숙 회장은 레전드 석에서 개막식을 함께했다. 그의 바람처럼 이번 대회가 단순한 국제대회를 넘어 더 많은 사람이 탁구로 세계와 만나는 새로운 출발점이 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