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돈·내 정보 사고 났는데…수천억 과징금은 누구 위한 '엄벌'인가

김도엽 기자, 조철희 기자, 김평화 기자
2026.09.07 07:00

[MT리포트]무책임한 '엄벌행정'(中)

[편집자주] 공정거래위원회, 국세청 등 강력한 규제 권한을 가진 기관이 '일단 때리고 보자' 식의 엄벌주의 처분을 남발하고 있다. 과도한 표적 수사 등을 이유로 검찰 수사권을 없앤 정부와 정치권의 행보와 결이 다르다. 규제 기관의 무리한 조사와 징벌적 제재는 매년 행정소송과 조세불복으로 이어져 정부가 패소하는 사례가 잇따른다. 법적 다툼을 거쳐 무혐의, 취소 판결이 나면 막대한 과징금과 세금이 환급되고 이에 따른 가산금까지 국고에서 빠져 나간다. 제재 처분을 받은 기업은 경영 불확실성과 브랜드 가치 실추 등으로 어려움을 겪는다. 아무런 승자가 없는 무책임 '엄벌 행정'의 문제점과 개선책을 짚어본다.

생산적 금융 늘리라더니 과징금 폭탄…금융도 '엄벌행정'에 발목

순이익 감소시 줄어드는 은행권의 자금 공급 규모/그래픽=김지영

은행권도 정부의 '엄벌 행정' 부담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홍콩H지수 주가연계증권(ELS) 불완전 판매 피해 계좌의 97% 이상이 자율배상에 동의했고 부동산담보인정비율(LTV) 정보교환 담합 역시 공정거래위원회가 차주 피해액을 정확히 산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지만, 수천억대 과징금이 예고됐다. 과도한 과징금이 기업에 자금을 공급하는 생산적 금융과 취약계층을 지원하는 포용금융의 여력을 줄이고 있다.

6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위원회는 KB국민·신한·하나·NH농협·SC제일은행 등 홍콩 ELS 판매 은행 5곳에 대한 과징금 부과안을 검토하고 있다. 과징금 규모는 당초 금융감독원의 사전통지 단계에서 약 2조원에 달했지만 제재심의위원회를 거치며 1조4000억원대로 낮아졌다. 이후 금융위가 법리와 사실관계에 대한 보완을 요구하면서 금감원이 재심의했고, 그 결과 과징금은 6000억원 수준까지 줄었다.

하지만 은행권에서는 여전히 '징벌적 수준'의 과징금이란 의견이 나온다. 5개 은행은 2021년부터 4년간 약 19조원의 홍콩 ELS를 판매해 수수료 수익으로 약 2000억원을 벌었다. 벌어들인 수익의 3배 가량을 과징금으로 낼 상황에 몰린 셈이다.

금융당국이 지난해 11월 규정을 개정해 사후 피해 구제를 과징금 감경사유에 포함했지만 충분히 반영되지 않았다는 불만도 있다. ELS를 판매한 5개 은행은 과징금이 사전통지 되기 전인 지난해 6월 이미 전체 16만9594개 계좌 중 16만2973개 계좌와 자율배상을 합의했다. 올해 1월 말 기준으로는 16만4845개(97.2%) 계좌와 배상에 동의했다.

LTV 담합 과징금도 은행권이 얻은 실익에 비해 과도하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공정위는 지난 1월 국민·신한·하나·우리은행이 2022년부터 2024년까지 LTV 정보를 교환해 부동산담보대출로 총 6조8000억원의 이자수익을 거뒀다며 총 2720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하지만 공정위는 "차주들이 입은 피해를 금액으로 정확히 산정하기는 어렵다"며 담합으로 인한 실제 수익 규모는 파악할 수 없다고 인정했다. 은행권은 오히려 정보 교환으로 LTV를 낮춰 대출 관련 이익이 줄었다고 주장한다.

아울러 은행권의 국고채 담합에 대한 심의 결과도 조만간 발표될 예정이다. 과징금이 부과될 수도 있다. 연이은 과징금은 은행의 손익뿐 아니라 정부의 핵심과제인 '생산적 금융'에도 악영향을 준다. 순이익이 1000억원 감소하고 국내 은행들이 CET1 비율을 평균 14.5%로 유지한다고 단순 가정하면 약 6900억원 규모의 RWA를 줄이거나 추가 자본 확충이 필요하다. 이를 위험가중치 43% 수준의 기업대출로 환산하면 약 1조6000억원 규모의 여신 공급 여력이 감소한다. 특히 담보가 부족하거나 신용도가 낮은 중소기업, 기술력은 있지만 재무구조가 취약한 초기 혁신기업이 자금 공급 축소의 영향을 더 크게 받을 수 있다.

포용금융 역시 자본 여력의 영향을 받는다. 중저신용자와 소상공인 등은 대출 부실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높아 은행 입장에서는 자본 부담이 큰 차주다. 은행이 자본비율을 맞추기 위해 대출자산을 조정할 경우 이들에 대한 신규 대출이나 만기 연장 등을 보수적으로 운용할 가능성이 있다.

은행권 관계자는 " 은행권은 이미 ELS와 LTV로 1조원 넘는 충당금을 적립했다"라며 "과징금으로 은행의 자본 여력을 소진시키면서 한편으로는 생산적 금융을 확대하라고 하는 것은 정책적으로도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CEO 중징계부터 때렸는데 결국 취소…법원서 깨진 금융당국 '엄벌 행정'

금융당국 CEO 중징계부터 최종 취소까지/그래픽=김지영

금융사고의 책임을 물어 금융회사 최고경영자(CEO)들에게 내려졌던 금융당국의 강력한 제재 가운데 일부는 수년간의 법적 다툼 끝에 효력을 잃었다. 대규모 투자자 피해에 엄정하게 책임을 묻겠다는 명분이었지만 금융당국이 적용한 제재 법리가 법원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은 사례가 이어졌다.

처분은 경영활동과 금융권 취업 등에 즉각적인 영향을 미치지만 잘못된 처분을 바로잡는 데는 수년이 걸린다. 강력한 규제 권한을 가진 금융당국의 '엄벌 행정'에도 그에 걸맞은 책임성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 CEO 중징계, 법원서 잇따라 취소

대표적인 사례가 라임·옵티머스 사태다. 금융위원회는 2023년 11월 박정림 전 KB증권 대표에게 라임펀드 사태와 관련해 직무정지 3개월, 정영채 전 NH투자증권 대표에게 옵티머스 사태와 관련해 문책경고를 내렸다. 내부통제기준 마련 의무 위반 등을 이유로 한 중징계였다.

금융당국은 대규모 투자자 피해가 발생한 사모펀드 사태에서 판매 금융회사의 내부통제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고 경영진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판단했다. 문책경고 이상은 금융회사 임원의 향후 선임까지 제한되는 중징계다.

그러나 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박 전 대표와 정 전 대표는 금융위를 상대로 낸 행정소송 1·2심에서 모두 승소했다. 금융위는 대법원까지 상고했지만 지난 4월 두 사건 모두 심리불속행 기각됐다. 두 중징계는 1·2심에서 모두 취소됐고 대법원에서도 금융위의 상고가 받아들여지지 않으면서 최종 취소됐다. 박 전 대표 사건은 4월 9일, 정 전 대표 사건은 4월 2일 각각 대법원에서 확정됐다.

특히 박 전 대표 사건 1심 재판부는 보다 실효성 있는 내부통제기준을 마련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의무 위반이라 평가하는 것은 '사후적 평가에 의한 제재'에 불과하다고 판단했다. 내부통제기준 마련 의무를 처분 대상자에게 불리하게 확대해석해서는 안 된다는 취지였다.

금융당국의 내부통제 책임 제재가 법원에서 제동이 걸린 것은 처음도 아니다. 손태승 전 우리금융지주 회장은 해외금리연계 파생결합펀드(DLF) 사태와 관련한 문책경고 처분에 불복해 소송을 냈고 2022년 대법원에서 최종 승소했다. 대법원은 당시 법체계에서 내부통제기준을 '마련할 의무'와 '준수할 의무'를 구별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 제재는 즉시, 구제는 수년 뒤

제재가 취소됐다고 이미 발생한 불확실성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박 전 대표가 받은 직무정지는 4년, 정 전 대표가 받은 문책경고는 3년간 금융회사 임원 선임이 제한되는 중징계다. 처분이 내려지는 순간부터 당사자의 경영활동과 향후 거취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반면 처분을 바로잡으려면 집행정지 신청과 행정소송을 거쳐야 한다. 박 전 대표와 정 전 대표의 경우 2023년 11월 제재 이후 올해 4월 대법원의 최종 판단까지 2년 넘게 걸렸다. 법원도 박 전 대표의 집행정지 사건에서 처분이 유지되면 본안에서 승소하더라도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가 발생할 우려가 있다고 판단했다.

금융투자업계에선 금융사고에 엄정한 책임을 묻는 것과 사고 이후 법규를 확대 적용해 책임자를 찾는 것은 구분해야 한다는 문제제기가 나온다. 대형 금융사고일수록 경영진에게까지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압력이 커지면서 법리보다 제재 수위가 앞설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예측하기 어려운 제재는 금융회사의 의사결정을 보수적으로 만들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금융회사에 적극적인 위험 감수와 생산적 금융 확대를 주문하면서 한편으로 사후 제재 위험을 키운다면 금융회사들이 새로운 사업과 투자에 소극적으로 나설 수 있다"고 말했다.

금융사고에 엄정한 책임을 묻는 것과 규제기관의 처분 책임성을 높이는 것은 양립할 수 있다. 강력한 규제 권한을 가진 금융당국일수록 '일단 중징계부터'가 아니라 처분 단계부터 법리와 책임 범위를 엄밀히 따지는 '책임 행정'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개인정보 과징금 6년 새 110배…국고 입금은 5년 뒤

개인정보위 과징금, 6년 새 112배/그래픽=김지영

개인정보보호위원회가 올해 8월까지 기업에 부과한 과징금이 약 7590억원에 달한다. 출범 첫해인 2020년 68억원의 112배다. 처분의 적법성이 최종 확정되기까지는 4~5년이 걸리기도 한다. 기업들이 소송을 걸어서다. 오는 11일부터는 3년 안에 같은 위반을 되풀이하거나 1000만명 이상 피해를 낸 경우 매출의 10%까지 부과하는 징벌적 과징금이 시행된다.

6일 개인정보위가 머니투데이에 확인해준 연도별 과징금 합계는 △2020년 68억원 △2021년 82억원 △2022년 1018억원 △2023년 232억원 △2024년 612억원 △2025년 1678억원 △2026년(8월 기준) 7589억원 등이다. 고객 3755만명의 정보가 샌 쿠팡 건 6247억원이 올해 총액의 82%를 차지한다. 모두 의결 기준으로 과태료는 빠진 금액이다.

7월 말 기준 처분에 반발해 진행 중인 소송은 17건이다. 1심 판결이 난 구글·메타(2건)·삼성전자·카카오·카카오페이 등 6건은 모두 개인정보위가 이겼지만 패소한 기업들이 모두 항소했다. 개인정보위가 생긴 뒤 2024년 말까지 50억원 넘는 과징금 10건 중 6건이 소송으로 갔다. 소송 대신 개인정보위에 "다시 봐 달라"는 이의신청은 한 건도 없었다.

소송은 오래 걸린다. 2022년 9월 시작된 구글(692억원)과 메타(308억원)의 소송은 4년이 지난 지금도 2심에 머물러 있다. 2020년 페이스북에 부과한 과징금 67억원이 적법하다고 대법원에서 확정되기까지 4년 3개월 걸렸다. 골프존 사건(75억원)은 처분 2년이 지나도록 1심에 있다. 올해 1월 소송을 낸 SK텔레콤(1348억원) 사건과 소송을 예고한 쿠팡 사건은 2030년쯤에야 결론이 날 전망이다.

법정 공방, '개보위 6전 6승, 그래도 전원 항소'/그래픽=김지영

소송이 길어지면 정부의 대응 부담도 커진다. 개인정보위 송무팀은 6명, 올해 송무 예산은 약 8억원이다. 개인정보위 관계자는 "인력과 예산이 충분하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대형 로펌을 선임한 글로벌·빅테크 기업에 훨씬 적은 인력과 예산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개인정보위는 인력 증원과 예산 확대를 관계부처와 협의 중이라고 밝혔다.

법원에서 처분이 뒤집히면 받은 돈을 이자까지 붙여 돌려줘야 한다. 개인정보위 처분이 법원에서 취소되거나 깎여 확정된 사례는 위메프(18억5200만원)·KT(7000만원)·이스트소프트(1억1200만원) 3건이다. 돌려준 원금만 20억3400만원이고 여기에 연 3.1%의 이자가 붙는다. 셋 다 2020년 개인정보위가 생기기 전 방송통신위원회가 매긴 과징금을 넘겨받아 다툰 사건이다.

기업이 소송을 포기하지 않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뒤집힌 전례가 있고, 과도한 과징금을 그대로 수용하면 배임이 되기 때문이다. 위메프는 2018년 11월 이벤트 페이지 설정 오류로 고객 20명의 정보가 다른 이용자 29명에게 노출돼 과징금 18억5200만원을 부과받았다. 대법원은 쇼핑몰 전체 매출을 기준으로 과징금을 매긴 것 자체는 적법하다고 보면서도, 오류가 하루짜리였고 주민등록번호와 비밀번호는 새지 않은 점을 들어 "제재적 성격이 지나치게 강조돼 위법성의 정도에 비해 과중하게 산정됐다"고 판단했다. 2023년 10월 과징금 처분 취소가 확정됐다.

제재액이 커진다고 피해 회복에 큰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니다. 과징금은 국고로 들어가고, 정보가 샌 피해자는 보상을 받으려면 따로 민사소송을 내야 한다.정부와 기업이 처분의 적법성과 금액을 다투는 동안 피해자는 별도로 구제 절차를 밟아야 한다. 제재 강화와 함께 기업의 보안 개선을 앞당기고 피해 구제를 이끌 장치가 필요한 셈이다.

해외에는 소송으로 가기 전 분쟁을 끝내는 장치가 있다. 미국에서는 개인정보 제재가 소송이 아니라 합의로 끝난다. 컬럼비아로리뷰 논문은 연방거래위원회(FTC)의 개인정보 관련 제소 154건 가운데 합의 없이 끝난 사건이 6건뿐이었다고 집계했다. 개인정보위에는 기업이 스스로 고칠 방안을 내면 제재를 감면해 주는 동의의결 제도가 없었다. 지난 7월에야 도입을 공식화했다. 동의의결도 실제 개선과 보상을 얼마나 신속하게 이끌어낼지가 관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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