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가 오르고 자산 가치도 뛰었지만, 일부 세금의 문턱은 최대 수십 년 동안 제자리다. 정부가 제도를 도입할 당시의 기준을 지키지 않은 사례도 있다. 여당 주요 국회의원들을 중심으로 국회 차원에서 과세 기준을 현실화해야 한다는 결의안까지 나왔다.
5일 정치권에 따르면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장인 이광재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달 29일 '사회·경제적 여건 변화에 따른 과세기준 및 벌금형·행정질서벌 등 제재기준의 현실화 촉구 결의안'을 대표 발의했다.
결의안은 장기간 동결된 과세 기준을 현실화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양도소득세 기본공제(30년 동결), 상속세 기초·일괄·배우자공제(29년 동결), 근로자 보장성 보험료 세액공제(24년 동결), 직계존비속 증여재산 공제(10년 동결) 등이 대상이다.
아울러 1년 주기의 점검 체계를 구축하고, 과세 기준의 물가연동제를 단계적으로 도입하는 내용도 결의안에 들어갔다.
결의안 공동발의자로는 민주당 소속인 한병도 원내대표, 조승래 재정경제기획위원장, 오기형 재경위 간사, 정태호 예산결산특별위원회 간사 등 관련 입법 과정의 핵심적인 인물들이 포함됐다.
문제는 정부가 각종 공제를 장기간 손보지 않은 데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일부 세제는 도입 당시 공제액을 정할 때 적용했던 산식과 현재의 공제액 사이에 괴리가 생겼다.
가령 현재 5억원으로, 상속세 계산 과정에서 가장 많이 활용하는 일괄공제는 1996년 세법개정으로 1997년부터 도입됐다. 단순히 5억원으로 정한 게 아니다. 기초공제 2억원에 자녀공제와 미성년자공제, 장애인공제 등을 합산한 금액이었다.
이후 개별 공제액은 시대 변화에 맞춰 인상됐지만, 이들을 토대로 정한 일괄공제는 그대로 남았다. 제도를 구성하는 각각의 부품은 바뀌었는데 이를 묶어놓은 기준은 30년 가까이 멈춰 있는 셈이다. 30년 전 산식대로라면 일괄공제는 7억6000만원에 이른다.
2007년 세법개정으로 2008년부터 적용한 근로소득세 과세표준 구간은 당시 5년 후 다시 조정하는 것을 전제로 설계했다. 하지만 과세표준은 이후 고소득 구간을 세분화하고 저소득 구간을 일부 개편했을 뿐, 큰 틀의 경우 장기간 유지되고 있다.
이 의원은 "30년 전 국민소득 1만달러 시절에 만들어진 과세표준을 4만달러를 바라보는 오늘날까지 유지하는 건 유통기한이 지난 제도를 방치하는 것"이라며 "세금은 걷는 측면에선 합리성이, 내는 입장에선 수용성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장인 이광재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과세기준 현실화 촉구 결의안'을 대표 발의한 건 그만큼 유통기한이 지난 세제가 많기 때문이다. 물가 상승률을 따라가지 못하는 각종 공제와 과세표준 탓에 납세자들의 부담은 커지고 있다.
상속세가 대표적이다. 상속세의 대표적인 공제인 기초공제(2억원), 일괄공제(5억원), 배우자공제(5억~30억원)는 1997년 이후 변하지 않았다. 공제는 과세의 문턱 역할을 한다. 3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상속 자산의 가치가 큰 폭으로 올랐는데도 문턱은 그대로다. 부자들의 세금이었던 상속세가 점차 중산층까지 부담하는 세금으로 변한 이유다.
근로소득세 과세표준도 유통기한이 지났다. 직장인들은 매달 소득세 등을 원천징수한 뒤 월급을 받는다. 이때 과세표준에 따른 세율이 적용된다. 과세표준이 높아질수록 세율도 높아지는 구조다. 임금이 오르는데 과세표준이 그대로라면 더 높은 세율을 적용받는 직장인이 늘어난다. 근로소득세 과세표준은 2008년 이후 크게 바뀌지 않았다.
이 의원실이 국세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를 보면 5년 이상 개정되지 않고 고정된 세법상 공제와 비과세가 총 38개다. 상속세 외에도 양도소득세 기본공제(30년 동결), 근로자 보장성 보험료 세액공제(24년 동결) 등이 해당한다.
정부는 유통기한이 지난 세제를 단순히 방치하는 데 그치지 않았다. 제도 도입 당시의 근거와 시대적 배경까지 사실상 외면했다. 물가 상승률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것은 물론, 제도를 처음 만들 때 적용했던 기준과 현재의 기준 사이에도 간극이 생겼다.
◆ 상속세 일괄공제가 5억원으로 정해진 이유…30년째 제자리
상속세부터 살펴보자. 상속세는 상속 자산에서 각종 공제를 뺀 후 과세하는데, 상속 자산이 공제액보다 많아야 과세한다. 따라서 상속세 과세 기준점을 통상 10억원으로 본다. 일괄공제 5억원과 배우자공제 최저금액인 5억원을 합한 숫자다. 정부와 국회는 1996년 세법개정을 통해 이러한 공제를 도입했고, 1997년부터 적용했다.
일괄공제 5억원은 임의로 정한 숫자가 아니었다. 재정경제원(현 재정경제부)이 1996년 발표한 '상속세법 개정안 관련 보충 설명자료'에 따르면, 일괄공제액 5억원은 기초공제(2억원)와 자녀공제(3000만원×2명=6000만원), 미성년자공제(9·13세인 경우 9000만원), 장애인공제(30년간 생존시 1억5000만원)를 합한 값으로 산출했다.
미성년자 자녀가 2명 있는 가정을 전제로 상속세를 납부하도록 설계했는데, 특히 기초공제를 포함해 각종 공제를 합한 금액이 일괄공제보다 적을 경우 일괄공제를 적용하는 방안은 그때부터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다. 자녀 수가 월등히 많지 않은 이상 일괄공제를 적용하는 게 유리하기 때문에 지금도 일괄공제가 가장 중요하다.
문제는 일괄공제를 도입할 때 '산식'이 깨졌다는 점이다. 정부는 2015년 세법개정으로 자녀공제를 1인당 3000만원에서 5000만원으로 올렸다. 공제액에서 19세(1996년 당시엔 20세)까지의 잔여 연수를 곱하는 미성년자공제는 500만원에서 1000만원으로, 공제액에서 기대여명을 곱하는 장애인공제도 500만원에서 1000만원으로 인상했다.
이를 1996년 일괄공제 도입 당시 산식과 비교하면 기초공제(2억원), 자녀공제(5000만×2명=1억원), 미성년자공제(9·13세인 경우 1억6000만원), 장애인공제(30년간 생존시 3억원)를 합한 7억6000만원이 된다. 정부가 30년 전 일괄공제를 설계할 때 내세운 산식대로라면 일괄공제는 5억원에서 7억6000만원으로 올려야 한다.
실제 적용 과정에선 공제의 유형이 워낙 다양하게 나올 수 있기 때문에 일률적으로 이야기할 수 없지만, 적어도 제도 설계의 기준 자체가 깨진 건 사실이다. 자녀공제와 미성년자공제, 장애인공제는 개편하면서 이를 합산해 만든 일괄공제 자체는 30년째 바꾸지 않았다.
◆ "5년 뒤 구간 조정 계획"…지켜지지 않은 근로소득세 과표 개편 약속
근로소득세 과표구간 역시 정부가 원칙을 깼다. 정부는 1996년(이하 적용시점 기준)과 2008년 비교적 큰 폭의 과표구간 조정에 나섰다. 1996년에 과세표준을 1000만원 이하, 4000만원 이하, 8000만원 이하, 8000만원 초과로 나눴고 2008년엔 1200만원 이하, 4600만원 이하, 8800만원 이하, 8800만원 초과로 올렸다.
2008년에 과세표준 구간별로 각각 20%, 15%, 10%의 인상률을 적용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상대적으로 저소득층의 부담을 적게 주려는 의도였는데, 인상률의 평균값인 15%도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당시 정부는 연 3%의 물가 상승률을 가정하고 이를 설계했다.
2007년 11월 재정경제위원회 회의록을 보면 당시 재경부 세제실장은 "앞으로 5년 뒤에는 또 한번 구간 조정을 할 계획을 갖고 5년치 정도의 구간 조정을 했다"고 말했다. 매년 3%의 물가가 오를 것으로 예상하고, 5년 후에 다시 과세표준을 올릴 것을 전제로 과세표준을 평균 15% 수준으로 인상했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이는 지켜지지 않았다. 과세표준은 2008년 이후 2022년까지 8800만원 초과 구간만 세분화하는 방식으로 개편했고, 정작 상당수 직장인이 적용받는 8800만원 이하 구간은 2023년에서야 조정했다. 1200만원을 1400만원으로, 4600만원을 5000만원으로 올렸고, 그나마 8800만원이라는 기준점은 2008년 이후 18년째 그대로다.
오문성 한양여대 세무회계학과 교수는 "과표구간뿐 아니라 소득공제 금액까지 물가 변화를 반영하는 문제를 근본적으로 손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30년 전 국민소득 1만달러 시절에 만들어진 과표를 4만달러를 바라보는 오늘날까지 유지하는 것은 유통기한이 지난 제도를 방치하는 것. 세금은 걷는 측에선 합리성이, 내는 입장에선 수용성이 있어야 한다."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장인 이광재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달 29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에서 머니투데이 the300(더300)과 만나 상속세와 증여세 등 세법 전반의 과세표준(과표)·공제 제도가 지닌 문제에 대해 이렇게 짚었다. 최근 국정감사를 준비하며 국세청과 세제 전반의 실태를 검토한 이 위원장은 낡은 조세 체계의 개편을 촉구했다.
이 위원장은 현행 세제의 구조적 모순을 30년 전 'YS(김영삼) 정부' 시절과 비교해 설명했다. 이 위원장은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하는데 우리가 30년 전 그때 국민소득 1만달러쯤 될 때"라며 "지금 4만달러 시대는 근본적으로 다른 시대인데, 그때와 동일한 과표를 가지고 지금까지 세금을 물린다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다"고 지적했다.
실제 우리나라 세법은 경제성장의 흐름을 제때 반영하지 못한 채 멈춰 서 있다. 5년 이상 개정되지 않고 묶인 세법상 공제 및 비과세 제도만 38개에 달한다. 이 중 자산 격차 완화를 위해 설계됐던 상속·증여세 관련 항목이 21개로 절반 이상(55.3%)을 차지한다. 상속세 기초·일괄공제(2억~5억원)와 배우자 상속공제(최저 5억원)는 30년 가까이 그대로다. 직계존비속 증여재산 공제(5000만원) 역시 10년째 제자리다.
실제 2005년 서울 사망자의 0.7%에 불과했던 상속세 과세 대상은 지난해 16%까지 늘어났다. 과거 상위 1% 초부유층을 겨냥했던 세금이 이제는 '수도권 1주택'을 가진 평범한 중산층의 턱밑까지 파고든 셈이다. 낡은 과표가 시대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면서 소리 없이 세 부담만 커지는 '스텔스 증세'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이 위원장이 제시한 대안은 선진국형 '물가연동제'다. 물가 상승으로 명목 소득과 자산 평가액만 올랐을 뿐 실질 가치는 늘지 않았는데, 자동으로 상위 세율 구간에 진입하거나 면세선 밖으로 밀려나 세 부담이 가중되는 왜곡을 바로잡자는 취지다. 이 위원장은 "물가에 연동한다는 건 세제의 세계적인 보편성"이라며 "이걸 안 하는 나라는 주요국 가운데 우리나라와 일본 두 국가뿐"이라고 했다.
이 위원장은 상속·증여세와 소득세 등 전반적인 세제를 손보기 위해 국회 차원의 '결의안'을 띄웠다. 통상적인 의원 입법 방식으로는 수십 개에 달하는 세법 조항을 일일이 개정하기 어렵다는 판단에서다.
이 위원장은 "이번 결의안은 단순히 특정 세금을 깎아주자는 단편적인 감세 논쟁이 아니라, 유통기한이 지난 국가 법제를 현실에 맞게 현대화하는 출발점"이라며 "정치권이 머리를 맞대고 다가오는 국정감사와 정기국회에서 조세제도를 글로벌 기준에 맞게 대전환하는 전기를 만들어내야 한다"고 했다. 이번 결의안에는 이 위원장을 비롯해 한병도 원내대표, 조승래 재정경제기획위원장, 오기형 재경위 간사, 정태호 예결위 간사 등 여당 의원 19명이 공동발의자로 이름을 올렸다.
여야 간 협치 또한 필수적이다. 국민의힘 정책위 부의장인 박수영 의원 역시 과거 물가연동 세제 도입을 공식 주장했던 만큼 진영 논리를 넘어선 논의가 진행될 가능성도 있다.
범여권에서 제기될 수 있는 '부자 감세' 비판에 대해선 이 위원장은 "세수가 감세가 될지 그대로 유지될지는 알 수 없지만, 기본적으로 세제라는 것은 현실화해 주는 게 맞다"며 "물가 상승으로 발생한 것까지 국가가 세금으로 다 거두면 과한 것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이 위원장은 "여태까지 국회를 보면 세출(쓰는 것)에 대해서는 관심들이 많았지만, 세입(걷는 것)에 대해서는 큰 관심들이 없었다"라며 "국민들은 '국가는 부자인데 왜 국민의 삶은 가난한가' '우리가 내는 세금이 그만한 가치가 있는가' '세금이 과연 양극화의 완충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는가'라는 근본적인 회의를 갖게 된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