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비사업의 속도는 권한을 나누는 데서 나오지 않습니다. 현장의 병목을 정확히 진단하고 일관된 기준과 책임 있는 행정이 뒷받침될 때 비로소 빨라집니다."
김준용 서울시정비사업연합회(서정연) 이사장은 13일 오전 서울시청 정문 앞에서 열린 '500세대 미만 정비구역 지정 권한 자치구 이양' 반대 기자회견에서 "이 같은 권한 이양이 사업을 앞당기기는커녕 혼란과 지연, 난개발을 부를 것"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서정연은 서울시 약 65개 정비구역의 조합장, 추진위원장 등으로 구성된 단체다.
정부와 여당은 현재 500가구 미만 정비사업의 구역 지정 권한과 통합심의 등 서울시 인허가 권한을 구청장에게 넘기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동작구 등 서울 16개 자치구도 권한 이양을 위한 구체적인 제도 개선안을 마련하고 있다. 지난 7일 동작구청에서 열린 '정비구역 지정 권한 이양 자치구 TF' 2차 회의에서는 이양 기준을 '500가구 미만' 대신 '3만㎡ 이하'의 면적 기준으로 바꿔 법령 개정을 건의하기로 했다.
서정연은 실제 병목이 구역 지정 이후의 인허가 단계에 있다고 주장했다. 김 이사장은 "신속통합기획 도입 이후 구역 지정 기간이 5년 이상에서 2년 안팎으로 줄었다"며 "실제 지연은 추진위원회 승인, 조합설립, 사업시행, 관리처분 등 구역 지정 후 자치구가 맡은 인허가 단계에서 발생한다"고 말했다.
현장에서는 자치구 인허가 지연 사례도 나왔다. 창신동 정비사업 관계자는 "우리 구역은 사업시행자 지정에 필요한 법정 동의율 75%를 넘어 지난 6월 구청에 지정 신청을 접수했으나 아직도 지정 고시가 나오지 않고 있다"며 "통상 30~60일 걸리는데 구청장이 바뀌면서 고시가 나오지 않아 사업이 정체된 상황"이라고 주장했다.
구역 쪼개기로 주거환경과 사업성이 악화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됐다. 김 이사장은 "권한이 25개 구로 나뉘면 인접 구역 간 계획이 따로 움직이고, 500가구 기준선이 반대 민원이나 인허가권자의 편의에 따라 큰 구역을 인위적으로 쪼개는 유인이 된다"며 "구역이 작아지면 공원·도로·주민편의시설을 충분히 확보하기 어렵고 분양성과 사업성이 나빠져 피해가 조합원과 입주민에게 돌아간다"고 주장했다.
자치구의 전문인력과 예산이 충분히 준비되지 않았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했다. 서정연에 따르면 서울시 통합심의에는 건축·경관·교통·환경 등 분야별 전문위원 약 30명이 참여한다. 25개 자치구가 각각 위원회를 구성하려면 수백 명의 전문인력이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위원회 구성과 심의 체계 마련 과정에서 사업이 지연되면 금융비용은 조합원 부담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우려다.
자치구마다 기준과 처리 속도가 달라질 가능성도 제기했다. 용적률과 기부채납, 임대주택 비율 등 조합원 재산권과 직결된 기준이 자치구별로 달라지면 형평성 논란과 갈등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김 이사장은 "권한이 분산되면 같은 서울에서도 자치구에 따라 기준과 속도가 달라지는 불공정이 생길 것"이라며 "이해관계가 첨예한 정비사업 권한이 기초자치단체로 내려가면 소수의 반대 민원이나 선거 주기에 사업이 좌우될 위험이 크다"고 말했다.
세대수 대신 면적을 기준으로 권한 이양 범위를 정하는 방안에 대해서도 같은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 이사장은 "면적으로 따져도 똑같은 문제가 발생한다"며 "교육·도로·상하수도 등 광역적 문제는 해결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주변 지역과 연계한 기반시설 계획이 필요한 만큼 광역 차원의 일관된 기준을 유지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서정연은 정부와 국회에 500가구 미만 정비구역 지정 권한의 자치구 이양 추진을 즉각 중단하고 원점에서 재검토할 것을 촉구했다. 정비사업 속도를 높이기 위한 대안으로는 추진위원회 승인부터 관리처분인가까지 단계별 처리기한을 명확히 하고 이를 준수하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할 것을 요구했다.
서울시에는 신속통합기획 등 신속 절차를 강화하고 정비사업 활성화를 위한 규제 완화를 추진할 것을 요청했다. 정비사업 관련 제도를 바꿀 때 조합과 추진위원회 등 현장 당사자의 의견을 공식적으로 수렴할 것도 요구했다.
김 이사장은 "권한을 이양해서 500가구 미만 정비사업이 빨라진다면 적극적으로 찬성하겠지만 현실은 오히려 늦어질 것"이라며 "사람이 바뀔 때마다 정책이 일관성 없이 바뀌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