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과 지방선거를 염두에 두고 정치권에서 제기한 KDB산업은행 등 주요 국책은행들의 지방 이전 문제로 금융권 안팎이 시끄럽다. 정치권 입장에서는 지역 균형발전이라는 명분을 고려해 쉽게 포기할 이슈는 아닐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금융을 전공하는 학자로서 국책은행들의 지방 이전에 선뜻 동의하기는 어렵다.
최근 정보기술(IT) 발달에도 불구하고 금융은 전문인력의 대면접촉과 인적 네트워킹이 경쟁의 핵심이다. 이에 따라 금융과 법률, 회계, IT 등이 중심이 된 금융서비스 클러스터의 형성은 필연적이며, 세계 금융중심지 역시 주요국의 경제 수도에 집적되는 경향을 보인다. 일찍이 우리 정부가 2003년 '동북아 금융허브 로드맵'을 수립하고, 2008년 이후 '금융중심지 기본계획'을 일관되게 추진해 온 이유도 여기에 있다. 따라서 주요 국책은행의 지방 이전은 정책의 일관성만 훼손하는 제안으로 이해된다.
특히 산업은행의 지방 이전은 정책금융기능의 약화를 가져올 우려가 크다. 산업은행은 대표적인 정책금융기관으로, 금융당국은 물론 민간은행과의 협력이 필수적이다. 하지만 지방 이전으로 물리적 거리가 멀어지면, 협력이 줄어들어 비효율성을 초래하게 될 것이다. 덧붙여 핵심 인력의 유출도 우려된다. 2016년 국민연금공단의 기금운용본부가 전주로 이전하면서 100여명의 핵심 인력이 떠난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인력 유출로 인한 경쟁력 저하는 그 어떤 명분으로도 보충하기 힘든 손실이다.
내친김에 금융허브 육성에 대해 조금 더 논의해보자. 동북아 금융허브 육성은 금융 분야의 경쟁력 제고를 통한 미래 먹거리 마련을 취지로 한다. 더불어 과다한 외환보유로 인한 불필요한 비용부담을 절감하고, 장기자금의 안정적 확보를 추구하는 올바른 정책 방향이다. 중국과 일본을 포함한 동아시아에서 금융허브의 가능성이 있는 도시는 홍콩, 상하이, 도쿄, 싱가포르와 더불어 서울이라고 할 수 있다. 홍콩과 상하이는 사회주의 경제방식의 경직성으로 인해 불확실성이 큰 한계를 가지고 있다. 도쿄는 일본의 장기불황으로 금융산업이 여전히 취약해 장래가 밝지 않다. 현재 가장 경쟁력이 높은 싱가포르 역시 공간적 괴리와 도시국가의 한계는 여전하다고 할 수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동북아 금융허브로서 서울의 발전 가능성은 매우 긍정적이다. 지난해 9월 발표된 글로벌금융센터지수에서 서울은 13위를 기록했다. 특히, 2~3년 후 주요 금융허브로 부상이 예상되는 도시 중에서 2위를 기록해 7위에 그친 홍콩을 2년 연속 추월했다. 물론 몇몇 지표나 지정학적 상황만으로 미래를 낙관할 수는 없지만, 금융허브로서 서울의 발전 가능성이 여느 때보다 높은 것은 사실이다. 부산 등의 도시들이 금융허브를 표방하고 있다지만, 글로벌 금융허브에 가장 근접한 도시가 서울이라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다.
따라서 국책은행들의 지방 이전으로 기존에 구축해온 금융 클러스터를 훼손하기보다는 서울을 금융허브로 육성하기 위한 정책을 지속적으로 추진할 필요가 있다. 기회는 위기와 더불어 갑자기 찾아온다. 천혜의 지정학적 위치를 고려한 서울의 성장 기회를 반드시 살려야 한다. 서울이 금융허브로 발돋움할 천재일우의 기회를 국책은행들의 지방이전 문제로 허비해서는 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