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초 기계부품 제조업체 A사는 원청기업인 B사에 납품단가 인상을 요청했지만 오히려 거래종료 통보를 받았다. 20년 전 인건비가 적용된 납품단가를 바로잡기 위해 최근 계약부터 이를 반영하기로 약속한 터였다. 그러나 B사는 20년 거래사인 A사와 계약을 지연하더니 결국 다른 하청기업인 C사와 계약했다.
문재인정부가 ‘최저임금 1만원’을 공약으로 내걸면서 중소기업계가 적정한 납품단가 반영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임금인상분을 납품단가에 반영하지 않으면 부담은 고스란히 하청기업에 돌아가는 구조여서다.
4일 정부와 정치권 등에 따르면 ‘일자리위원회’는 중소기업의 납품단가 공정화 방안으로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노무비 변동에 대해 하도급업체에 납품단가 조정요구권을 주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문 대통령이 대·중소기업간 불공정행위를 근절하겠다며 이같은 내용의 방안을 공약으로 내건 만큼 관계기관과 협의해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납품단가 조정요구권은 원자재가격 인상에만 적용되는 단가 조정신청 권한을 임금인상에도 적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핵심이다. 이 경우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노무비 부담에 대해 중소기업은 대기업과 노사협상에 준하는 조정권한을 갖는다. 중소기업계도 산업전기료 인상비와 더불어 노무비를 조정협의 대상에 포함해줄 것을 요구한다. 업종별 노무비 단가산정 기준을 마련해 표준계약서 등에 반영하면 효과를 볼 수 있다는 것이다.
현재 상당수 중소제조업은 제조원가 인상부담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된 납품단가를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중소기업중앙회의 지난 1월 실태조사에 따르면 제조원가가 인상된 중소기업 4곳 중 3곳이 인상분을 자체부담했다. 심지어 최저임금 인상분조차 반영되지 않은 곳이 42.9%나 된다. 반면 중소제조업의 대기업 종속 비율은 점점 높아지는 추세다. 2013년 중소제조업체의 하도급거래 비중은 43.6%였지만 2015년 47.3%까지 상승했다. 이 추세라면 올해는 50%에 육박할 것으로 보인다.
이런 이유로 19대 국회에서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납품단가 조정요구를 담은 법안이 발의됐지만 입법에 실패했다. 강기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하도급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 일부 개정법률안’은 정무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에 6차례나 상정되고도 전체회의로 넘어가지 못했다.
정무위 검토보고서에 따르면 개정안은 민간끼리 조정할 수 있는 방안이 없어 소극적으로 대응할 가능성이 제기됐다. 여기에 공정거래위원회는 최저임금이 매년 노사정의 합의로 기업이 감내할 수준에서 결정되는 것이어서 하도급대금의 조정 필요성은 상대적으로 크지 않다는 의견을 냈다.
이같은 내용의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한다 하더라도 이미 계약관계에 있는 하청기업이 대기업을 상대로 협상력을 발휘하기 쉽지 않을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이미 조정신청이 인정되는 원자재가격 인상에 대해서도 대기업이 납품단가 인상에 소극적인 경우가 많아서다. 하청업체들이 “협상하자”고 나섰다가 거래종료 통보를 받을 수 있는 만큼 법을 개정할 때 보완책도 함께 마련해야 한다.
중소기업 관계자는 “환율 등 외부요인으로 대기업이 원가상승 압박을 받으면 소비자가격을 올리기보다 하청기업에 말도 안되는 가격으로 납품가격을 일방통보한다”며 “계약해지를 우려해 조정신청보다 대기업의 요구를 수용하는 것이 현실”이라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하청기업이 생존의 위협을 받지 않고 마음 놓고 협상할 수 있도록 보완하는 방안이 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편으로 중소기업계는 경제개혁연대 소장을 지낸 김상조 신임 공정위원장 후보자에게 기대를 거는 분위기다. 원청기업과 하청기업의 관계를 바로 세울 ‘경제경찰’의 수장으로 적임자라는 평가다.
중소기업중앙회 한 임원은 “그동안 정부가 대기업에 힘을 실어주면서 경제생태계는 대·중소기업간 경쟁이 불가능한 구조로 바뀌었다”며 “신임 공정위원장은 공정한 경쟁이 벌어지도록 심판 역할을 충실히 해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