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칼럼]단체교섭이 끝난 날, 사측 인사팀장은 왜 찜찜했을까

홍보경 기자
2026.04.07 17:01

몇 해 전, 제약사 C사의 인사담당 임원이 교섭 종료 후 겸연쩍은 미소를 지으며 노조 측으로부터 위임받아 교섭위원으로 참여한 필자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올해도 결국 노조가 원하는 방향대로 흘러갔네요." 교섭 테이블에는 노무 관련 전문적 자격을 갖춘 사내 담당자도 배석해 있었다. 다만 그는 해당 업계에 발을 들인 지 얼마 되지 않은 인물이었고, 관련 법령에 대한 이해와 해석은 나무랄 데 없었지만, 정작 제약 현장이 실제로 어떻게 움직이는지는 몸으로 겪어본 적 없는 사람이었다. 노조는 교섭담당자별 역할을 배분하여 단계별 전략에 따라 협상에 임한 반면, 사측은 준비한 논리보다 노조 측 요구에 반응하고 방어하는 데 급급했다. 문제는 '의지'가 아니라 '구조'에 있었다.

흥미로운 것은, 많은 기업의 인사담당자들이 교섭이 끝난 후 "나름 선방했다"라고 평가한다는 점이다. 노조가 처음 제시한 요구안보다 최종 타결 수치가 낮아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전형적인 착시다. 노조는 처음부터 양보를 전제로 요구안을 설계하며, 최초 요구안은 목표치가 아니라 협상의 출발선이다. 사측이 그 출발선을 기준으로 결과를 평가하는 순간, 교섭의 주도권은 이미 넘어간 것이다. 교섭이 끝난 날 인사팀장이 느끼는 그 묘한 찜찜함은 무언가를 놓쳤다는 감각, 바로 인지부조화의 출발점이다.

그 구조적 문제의 핵심은 의외로 단순한 곳에 있다. 인사팀은 지원부서(Staff)다. MR(Medical Representative, 의약품 영업 담당자)이 현장에서 실제로 무엇에 불만을 느끼고 조직에 무엇을 원하는지를 가장 가까이에서 체감하는 것은 인사팀이 아니라 현장의 동료들이다. 노조 측 요구안에는 단순한 임금인상이나 복리후생 개선을 넘어, 수년간 현장에서 쌓인 불만과 박탈감, 조직에 대한 불신이 녹아 있다. 인사팀이 이를 정확히 읽어내기 어려운 것은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의 한계이며, 그 한계는 교섭 테이블에서 고스란히 드러난다.

김경락 공인노무사 · 대상노무법인 대표

필자는 공인노무사가 되기 전, 국내 및 다국적 제약사에서 약 15년간 세일즈 파트에서 근무했다. 일선 현장에서 시작해 매니저로서 팀과 부서를 이끌고 본사 지원부서와 소통하며 현장과 조직 사이의 간극을 몸으로 익혔다. 현장 직원들의 목소리가 인사팀의 보고서에 도달하기 전에 희석되거나 왜곡된다는 사실, 그것이 노조가 꺼내 드는 현장의 언어를 인사팀보다 더 먼저,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는 이유다. 이후 공인노무사로서 제약업계에서 노조를 대리하여 부당노동행위 구제신청, 부당해고, 임금체불, 산업재해 등 다양한 근로자 측 사건을 수행하며 어떤 사용자의 대응이 노조를 자극하고 갈등을 증폭시키는지를 반대편 자리에서 직접 경험했다. 그 외 공공기관과 제약업계 외 다양한 사업장에서 사용자 측 교섭 대리인으로 참여하며 노사 양측의 균형적 관점을 체득해왔고, 대학원에서 노사관계를 전공하며 교섭의 구조와 전략을 학문적으로 체계화할 수 있었다.

국내외 제약사의 단체교섭 테이블에는 MR의 간주근로시간제 운영과 포괄임금제의 유효성, 성과급 제도 변경에 따른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 조직개편에 따른 노사 마찰 등 산업 고유의 복잡한 쟁점들이 등장한다. 이 쟁점들은 현장을 경험하지 못한 전문가에게는 단순한 법령 해석의 대상에 불과하지만, 현장을 알고 현장 직원들의 기대를 체감적으로 이해하는 대리인에게는 전략적으로 접근 가능한 협상의 지점이 된다.

2026년 3월 10일부터 시행된 개정 노조법, 이른바 '노란봉투법'은 정리해고, 구조조정에 따른 배치전환 등 사업경영상의 결정까지 교섭 대상에 포함될 수 있는 여지를 두었다. 체결된 임단협은 최소 1년에서 최대 3년간 구속력을 가지며, 협약 문구 하나의 차이가 수년 후 소송의 근거가 되는 일은 이제 특수한 사례가 아니다. 교섭 대리인을 선택하는 일은 협상 테이블의 담당자를 고르는 문제가 아니라, 현장의 언어로 노조를 이해하고 법률의 언어로 경영권을 지키며 협약문 한 줄 한 줄에 미래의 리스크를 설계해 넣을 수 있는 사람을 세우는 일이다. 단체교섭을 인사팀의 내부 업무로만 볼 것인지, 현장을 아는 노사관계 전문가와 함께 준비해야 할 경영 과제로 볼 것인지, 그 선택의 결과는 매년 교섭이 끝나는 날 고스란히 드러난다. (글 / 김경락 공인노무사 · 대상노무법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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