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모리 반도체(이하 메모리) 공급 부족이 장기화되면서 '장기공급계약(LTA)'이 업계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삼성전자·SK하이닉스·마이크론 '메모리 3사'에 이어 샌디스크와 난야테크놀로지도 이를 통한 중장기 수요 확보에 나섰다. 메모리 제조사들의 공급 여력이 수요 증가세를 따라가지 못하는 상황이 지속되면서 현재의 공급난이 최소 2028년까지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8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미국 낸드플래시(이하 낸드) 제조사 샌디스크는 지난 5일(현지시간) 2026년 회계연도 4분기 실적발표에서 데이터센터·엣지(Edge) 분야 핵심 고객 8곳과 LTA를 체결했다고 밝혔다. 이번 분기에만 신규 고객 3곳을 포함해 5건의 LTA를 추가로 체결했다. 샌디스크는 올해 1분기 매출 기준 글로벌 낸드 시장에서 마이크론, YMTC와 함께 점유율 4위를 기록한 업체다.
글로벌 D램 시장 점유율 5위인 대만 난야테크놀로지도 최근 실적발표에서 LTA가 전체 생산능력의 50%를 차지한다고 발표했다. 업계에서는 난야테크놀로지가 공급 물량을 사전에 확정하되 가격은 시장 상황에 따라 탄력적으로 조정하는 방식의 LTA를 확대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계약 기간도 기존 1년에서 최소 2년으로 늘어난 것으로 알려졌다.
LTA가 확산되고 있는 배경에는 메모리 공급 부족이 있다. 수요 증가 속도를 공급이 따라가지 못하면서 고객사들의 물량 확보 경쟁도 치열해졌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지난달 '대한상공회의소 제주포럼 기자간담회'에서 "고객사들은 향후 5년 내 현재보다 5~6배 많은 공급을 원하고 있다"고 언급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물량 선점 경쟁이 심화되면서 메모리 3사에 집중됐던 장기계약의 외연도 다른 제조사로 넓어지고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마이크론은 이미 주요 고객사와 통상 5년 단위의 LTA를 체결한 상태다. 데이비드 게클러 샌디스크 CEO(최고경영자)는 "모두에게 도움이 되지 않았던 호황과 불황의 반복에서 벗어나고 싶다"며 "고객들과 더 깊은 관계를 맺고 장기 계획을 세우는 것이 목표"라고 강조했다.
중장기 수요에 대한 가시성이 높아지면서 메모리 제조사들의 투자 확대도 이어지고 있다. 난야테크놀로지는 2029년까지 자사 팹(공장)에 사상 최대 규모인 총 3466억대만달러(약 15조원)를 투자할 계획이다. 올해 설비투자 규모도 기존 520억대만달러에서 697억대만달러로 약 34% 상향 조정했다. 이에 2029년 생산능력은 300㎜ 웨이퍼 기준 3만5900장으로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앞서 메모리 3사도 대규모 투자 계획을 내놓은 바 있다.
그럼에도 메모리 공급 부족은 당분간 이어질 전망이다. 제조사들이 일제히 생산능력 확대에 나섰지만 신규 생산라인이 실제 공급으로 이어지기까지 최소 2~3년이 걸리기 때문이다. 김동원 KB증권 리서치본부장은 "올해 3분기 빅테크 고객사의 메모리 수요 충족률은 60~70%에 불과하다"며 "공급을 초과한 수요는 매년 다음 해로 이월돼 2028년까지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업계 관계자는 "과거에는 일부 대형 고객사를 중심으로 장기계약이 이뤄졌지만 공급난이 장기화되면서 가격보다 안정적인 물량 확보가 중요해졌다"며 "메모리 3사를 넘어 다른 제조사로 LTA가 확산되는 것은 메모리 거래의 무게중심이 단기 가격 협상에서 중장기 물량 확보로 이동하고 있다는 의미"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