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전시회에 가면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차를 본다. 디자인을 살펴보고, 문을 열어보고, 주행거리와 출력, 배터리 용량과 충전속도를 비교한다. 자동차를 전시하는 곳이니 너무나 당연한 풍경이다. 그런데 전기차 100만 대 시대에도 우리는 자동차만 봐도 되는 걸까.
8월 25일부터 서울 코엑스에서 EV TREND KOREA 2026이 열린다. 전기 SUV부터 PHEV, 전기 픽업, PBV, 소프트웨어 중심 자동차까지 다양한 전동화 차량과 기술이 한자리에 모인다. 전기차가 더 이상 하나의 새로운 차종이 아니라 다양한 용도와 생활로 뻗어나가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나는 전기차를 볼 때 조금 다른 지점에 주목한다. 내연기관차가 주로 달리는 성능으로 평가받았다면, 전기차는 멈춰 있는 시간까지 새로운 가치로 바꾸기 시작했다.
충전을 위해 차가 멈춘다. 주차된 차 안에서 사람은 쉬고, 책을 읽고, 일을 하고, 영상을 본다. 캠핑장에서는 자동차의 전기를 밖으로 꺼내 쓰고, 여행지에서는 충전하는 시간이 새로운 체류시간이 된다. 앞으로 자율주행까지 보편화되면 운전에 사용하던 시간마저 다른 생활시간으로 바뀔 것이다.
그래서 좋은 전기차를 판단하는 질문도 하나 더 필요해졌다. "얼마나 멀리 갈 수 있는가?"와 함께 "이 차로 무엇을 더 할 수 있는가?"
전기차 전시회도 이 질문에 답하기 시작해야 한다. 새로운 자동차를 보여주는 것을 넘어 그 자동차가 만들어낼 새로운 하루를 보여줘야 한다. 전기차로 캠핑하는 장면, 충전하며 쉬는 장면, 차 안에서 책을 읽고 음악을 듣는 장면, 가족이 함께 시간을 보내는 장면까지 말이다.
흥미롭게도 올해 EV TREND KOREA가 내건 메시지도 'New lifestyle begins with EV'다. 전기차 산업의 관심이 자동차를 얼마나 더 잘 만들 것인가에서, 그 자동차가 우리의 생활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로 확장되고 있다는 의미로 읽힌다. 나는 이런 새로운 전기차생활을 '전생(電生)'이라고 부른다. 그래서 같은 제목의 책 『전생이 온다』도 펴냈다. 책에서 강조한 것도 기술 자체보다 기술이 만들어내는 생활의 장면이다. 자동차회사가 자동차만 만들고 충전회사가 충전기만 설치하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가전과 콘텐츠, 유통과 관광, 숙박과 상권까지 연결될 때 비로소 새로운 전기차생활이 만들어진다.
이번 EV TREND KOREA에서 '전생체험존'이 기획된 것도 같은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전시를 함께 준비하는 과정에서 코엑스와 여러 파트너들이 함께 고민하며 확장해온 결과물이다. 전기차가 들어왔을 때 우리의 휴식과 여행, 일과 놀이가 어떻게 달라질 수 있는지를 실제 장면으로 만들어 직접 경험해보는 작은 실험이다.
물론 중요한 것은 하나의 체험존이 아니다. 이 작은 실험이 던지는 질문은 앞으로 자동차산업 전체가 함께 고민해야 할 문제이기 때문이다.
앞으로 자동차산업의 경쟁은 누가 더 좋은 자동차를 만드느냐에서 끝나지 않을 것이다. 누가 그 자동차와 함께하는 더 좋은 시간을 만들고, 더 매력적인 공간을 만들고, 더 편리한 생활을 제안하느냐까지 확장될 것이다.
스마트폰을 떠올리면 이해하기 쉽다. 우리는 더 이상 스마트폰을 통화 품질만으로 평가하지 않는다. 그 안에서 무엇을 할 수 있고, 우리의 일상을 얼마나 확장시켜 주는지가 더 중요하다. 전화기는 어느 순간 생활 플랫폼이 됐다.
전기차도 같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 단순히 잘 달리는 자동차를 넘어 이동과 정차, 충전과 대기, 휴식과 체류의 순간까지 새로운 생활의 기회로 바꿀 수 있는지가 중요해지고 있다. 전기차의 경쟁은 주행거리를 늘리는 경쟁에서, 생활의 가능성을 넓히는 경쟁으로 확장되고 있다. 전기차 100만 대가 도로 위의 풍경을 바꿨다면, 다음 100만 대는 우리의 하루를 바꿔야 한다.
그래서 이제 자동차 전시회에도 신차 발표만큼 '신생활 발표'가 많아졌으면 한다. 새로운 배터리와 더 긴 주행거리뿐 아니라, 그 기술 덕분에 사람이 무엇을 새롭게 할 수 있게 되었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자동차를 전시하는 시대에서, 전기차생활을 전시하는 시대로. 얼마나 멀리 가는지를 보여줬다면, 이제 그 차와 얼마나 다르게 살아갈 수 있는지를 보여줄 차례다. 글/조현민 이볼루션 대표
조현민
전기차 생활문화 기획자
㈜이볼루션 대표
『제4의 공간』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