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률칼럼] 유족이 먼저 포기한다, 자살 산재를 둘러싼 두 가지 오해

홍보경 기자
2026.10.02 18:15

자살 산재는 상담이 시작되기까지가 가장 어렵다. 장례를 치르고 나서도 유족은 한동안 경황이 없고, 유서가 없어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모르는 경우도 있다. 자살은 산재가 안 되는 줄로 아는 분도 있고, 남은 가족이 어린 자녀나 친척뿐이면 신청 절차가 막막해 손을 대지 못한다. 경찰 통계상 직장이나 업무 문제로 목숨을 끊는 사람은 한 해 평균 477명인데 근로복지공단에 접수되는 자살 산재 신청은 한 해 58건이다(2019~2023년, 직장갑질119 분석). 열에 아홉 가까이는 신청서를 내기 전에 멈춘다.

어렵게 시작된 상담에서도 걸리는 대목은 대개 둘이다. 고인이 정신과에 다닌 적이 없다는 것, 그리고 징계나 감사를 받던 중이어서 고인 쪽에도 잘못이 있어 보인다는 것. 둘 다 오해다.

몇 해 전 대리한 사건이 그랬다. 20년 넘게 한 회사에서 영업 조직을 이끌던 관리자가 부하직원들로부터 괴롭힘으로 신고됐고, 회사는 절차대로 조사하며 그를 자택에 대기시켰다. 두 달 뒤 그는 세상을 떠났다. 정신과 진료기록은 없었고 가정의학과에서 불면증 약을 두 번 받은 것이 전부였다. 남은 것은 휴대전화였다. 골프 가방과 수입차 가격을 검색하던 사람이 신고 사실을 안 다음 날부터 징계와 해고 사유를 검색했고, 조사 일정과 출석 통보가 있던 날마다 검색어가 달라졌다. 이 기록을 징계 절차의 날짜와 나란히 놓았고, 공단은 업무상 재해로 인정했다. 지난해 인정받은 또 다른 사건의 고인은 반대로 상사의 괴롭힘을 견디지 못한 대기업 사무직이었다. 자리는 정반대였지만 공단의 질문은 같았다. 업무가 그 사람의 정신 상태를 무너뜨렸는가.

산재 판단은 잘잘못을 가리는 절차가 아니다.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시행령 제36조 제3호는 업무상 사유로 인한 정신적 이상 상태에서 자해행위를 했다는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되면 업무상 재해로 본다. 정신과 치료 이력이 없다는 사정만으로 업무상 재해가 부정되는 것은 아니다. 대법원도 감사원 문책을 받은 공기업 팀장이 정신과 치료 이력 없이 며칠 만에 세상을 떠난 사건에서, 인과관계는 의학적으로 명백히 증명될 필요가 없고 규범적으로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되면 족하다고 보았다(대법원 2019.5.10. 선고 2016두59010 판결).

그런데도 승인율은 떨어지고 있다. 국회에 제출된 공단 자료를 보면 지난해 자살 산재 승인율은 35%로 2019년 58%에서 내려왔고, 결정까지 평균 다섯 달이 걸렸다. 공단이 묻는 것은 정해져 있다. 발병 전 6개월 안의 사건을 중심으로 폭언과 괴롭힘, 업무의 양과 질 변화, 인사조치와 징계, 업무 밖의 사정까지 살핀다. 유족은 답하지 못한다. 고인만 아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일은 진단서를 찾는 일이 아니라 고인의 마지막 몇 달을 날짜별로 다시 짜 맞추는 일이다. 유서가 없어도 마지막 통화와 메신저, 검색 기록, 잠과 식사와 말수가 달라진 시점이 유서를 대신한다. 공단은 빚이나 가정불화 같은 업무 밖의 사정도 함께 살피므로, 그런 사정이 없었다는 점은 채무 조회와 가족관계 자료로 미리 밝혀 둔다. 정신과 기록이 있다면 숨길 일이 아니라 정신적 이상 상태를 보여 주는 가장 강한 증거가 된다. 유족급여 청구권의 소멸시효는 사망일부터 5년이지만(산재보험법 제112조) 증거는 5년을 기다려 주지 않는다. 장례를 치른 뒤 휴대전화부터 해지하지 마시라.

대상노무법인 김경락 대표노무사

처음 걸렸던 두 가지로 돌아가 본다. 평소 아무 문제 없이 일하던 사람이 신고당하고 집에서 대기한 지 두 달 만에 무너졌다면 그 원인을 일 말고 어디서 찾겠는가. 징계를 받던 중이었다는 사정은 숨길 일이 아니라 공단이 스트레스 요인으로 직접 묻는 항목이다. 둘 다 청구를 접을 이유가 아니라 신청서 맨 앞에 적어야 할 사실이다. 될지 안 될지는 공단이 판단한다. 절차가 막막하면 산재를 다루는 공인노무사의 도움을 받으면 된다. 유족의 몫은 포기가 아니라, 고인이 끝내 하지 못한 말을 대신 적는 일이다. 글 -김경락 공인노무사 / 대상노무법인 대표노무사 · 한국공인노무사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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