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인 간소화로는 부족"..근로시간 특례 법제화 목소리 커진 반도체업계

김아영 기자
2026.10.27 05:50

칩 설계·검증 돌발 변수 잦아…업무 집중 시기 예측도 어려워

반도체 R&D 근로시간 제도 비교/그래픽=이지혜

정부가 잇따른 근로시간 제도 개선에 나서고 있지만 반도체업계가 연구개발(R&D) 인력에 대한 별도 특례 법제화를 지속적으로 요구하고 있다. 칩 개발 과정에서 발생하는 돌발 변수와 특정 시기에 업무가 집중되는 특성상 현행 특별연장근로 제도만으로는 연구인력을 탄력적으로 운용하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27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23일 특별연장근로의 사전 포괄승인 등 제도 개선을 주문했지만 업계는 현행 제도의 보완만으로는 연구개발 현장의 근로시간 운용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정부는 지난해 반도체 R&D 분야의 특별연장근로 1회 인가기간을 기존 최대 3개월에서 6개월로 확대했다. 6개월 인가를 받으면 첫 3개월은 주당 최대 64시간, 이후 3개월은 최대 60시간 근무할 수 있다. 근로자 동의와 고용노동부 인가를 받아야 한다는 요건은 그대로다.

문제는 인가기간이 늘어나도 반도체 R&D 현장의 업무 집중 시기를 예측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칩 설계·검증 과정에서 오류가 발견되면 원인 분석과 수정·재검증을 반복해야 하고 고객사의 갑작스러운 요구에도 대응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개발 이력과 공정 조건을 파악한 담당자의 업무가 특정 시기에 집중될 수밖에 없다. 앞서 반도체 기업들은 과거 고대역폭메모리(HBM) 개발 과정에서도 연장근로를 활용했던 경험이 있다.

실제 개발 상황에 따라 업무량이 급변하고 있지만 특별연장근로를 활용하려면 그 필요성을 별도로 소명해야 한다. 인가가 비교적 신속하게 이뤄지더라도 신청 과정에서 연장근로가 필요한 배경과 개발 진행 상황을 설명해야 하는 부담은 남는다. 신청 과정에서 개발 단계나 업무 내용을 구체적으로 소명할 경우 해당 정보가 외부에 알려져 경쟁사에 개발 동향을 추론할 단서를 줄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정부가 검토하는 사전 포괄승인은 이같은 신청 부담을 줄이기 위한 방안이다. 하지만 승인 절차가 간소화되더라도 특별연장근로에 적용되는 근로시간 상한은 유지된다. 개발 일정이 예상보다 길어지거나 검증 과정에서 돌발 변수가 발생하더라도 허용된 근로시간 내에서 대응해야 한다는 제약이 남는다는 게 업계의 지적이다.

그러면서 일정한 요건을 갖춘 반도체 R&D 인력에 현행 특별연장근로와 다른 근로시간 적용 기준을 법률로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정부 지침에 따라 인가기간과 심사 방식이 조정되는 현행 제도와 달리 법률에 적용 대상과 요건을 규정해 제도의 지속성을 확보하자는 취지다.

다만 법제화 논의는 더딘 상황이다. 반도체특별법에서 제외된 주 52시간 예외 조항이 초광역특구법을 통해 재추진되고 있지만 노사정 사회적 대화는 수차례 실무협의에도 여전히 의제 조율 단계에 머물러 있다. 노동계가 장시간 노동에 따른 건강권 침해를 우려하는 점도 법제화 과정에서 풀어야 할 과제다.

업계 관계자는 "연구개발 분야는 집중력과 연속성이 중요한데 현행 근로시간 제한은 개발 막바지나 양산 직전 같은 결정적 시기에 대응하는데 한계가 크다"며 "인가기간 확대나 승인 절차 간소화만으로는 한계가 있는 만큼 R&D 현장의 특성을 반영한 실효성 있는 법적 특례가 조속히 마련돼야 한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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