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넘게 동해 바다를 건너 온 일본 프리미엄 맥주 '기린 이치방 시보리(이하 기린 이치방)'가 한국 생산을 시작했다. 하이트진로가 일본 맥주회사 기린(Kirin)으로부터 제조 원료와 기술을 전수받으면서 두 회사의 협력은 수입·유통에서 생산·기술 교류까지 넓어졌다.
장인섭 하이트진로 대표이사는 지난 8일 경기 용인 하이트진로 통합연구소에서 "2004년부터 약 20년 동안 기린 이치방 시보리의 맛과 품질을 국내 소비자에게 전달하기 위해 노력해왔다"며 "아시아에서 최초로 한국에서 라이선스 생산을 시작하게 됐다"고 말했다.
하이트진로는 지난 7월 기린과 라이선스 생산 계약을 체결했다. 기린이 자본관계가 없는 아시아 지역 파트너사에 생산 라이선스를 넘겨준 건 이번이 처음이다. 초도 생산량은 150만리터(ℓ)로 500㎖(밀리리터) 캔 300만개 분량이다. 내년에는 국내 연간 판매량의 75%를 전주공장에서 생산할 계획이다.
우리나라에서 기린 이치방이 매년 역대 최대 판매량을 갈아치우면서 직접 생산에 대한 뜻이 맞아떨어졌다. 특히 캔 제품의 2020~2026년 연평균 판매량 증가율(CAGR)은 97%다. 하이트진로의 수입맥주를 담당하는 권광조 권역장은 "일본 맥주의 성장세와 국내 수요 증가가 맞물리면서 공급량이 부족한 부분도 있었다"고 설명했다.
하이트진로는 전주공장 설비를 활용해 똑같은 맛을 구현하기 위해 1년 넘게 공을 들였다. 기린 이치방은 다른 맥주와 달리 맥아에서 처음 짜낸 맥즙만 사용하는 기린 고유의 제조법으로 만들어진다. 제품명에 '이치방'(첫번째를 뜻하는 일본어)이 들어가는 이유다. 하이트진로는 일본에서 효모를 직접 공급받아 양조 온도와 시간, 원료 비율과 완제품 규격을 기린의 생산 기준에 맞췄다.
생산 승인까지도 세 차례 이상 시험을 거쳤다. 전주공장에서 시험 생산한 제품을 일본으로 보내 관능검사와 수치분석을 받았고 기린이 정한 기준을 통과해야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다. 국내 생산 이후에도 정기 기술협의체를 통해 품질 관리와 기술 교류를 이어갈 예정이다.
하이트진로는 이달 첫째주부터 기린 이치방 국내 생산을 시작했다. 기존 일본 생산 제품이 소비되면 순차적으로 편의점 등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을 전망이다. 기자가 직접 서울 시내 편의점들을 찾아 비교해보니 기존 일본 생산 제품의 캔 뒷면에는 '제조사 KIRIN Brewery CO., LTD.'와 '원산지 일본'이 적혀있고 국내에서 생산한 제품은 제조업소로 하이트진로 전주공장 주소가 적혀 있다.
국내 생산으로 기린 이치방의 공급 기간은 크게 줄어든다. 일본에서 생산한 제품은 통관을 거쳐 국내에 유통되기까지 약 한 달 반이 걸리지만 국내 생산 시 1~2주면 국내 어디로든 제품을 공급할 수 있다. 물량 변동과 관세 등 대외 변수에 따른 공급 부담도 줄고 완제품을 옮겨야 했던 물류비용도 아낄 수 있다.
하이트진로는 줄어든 비용을 프로모션과 마케팅에 투입해 소비자 혜택을 늘릴 계획이다. 아울러 기린 이치방 병 제품과 생맥주의 국내 생산 확대 여부도 캔 제품의 생산과 판매가 안정되면 검토할 예정이다. 장 대표는 "이번 기술 협정은 단순한 생산 현장의 이전이 아닌 기술과 품질을 함께 만들어가는 전략적 파트너십의 시작"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날 행사에는 호리구치 히데키 기린맥주 대표와 관계자들도 참석할 예정이었으나 일본 현지 사정으로 불참했다. 최근 일본 공정거래위원회가 기린·아사히·산토리·삿포로 등 주요 맥주업체 4곳을 대상으로 가격 담합 의혹에 대한 강제 조사에 착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