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가 늘 반복되지는 않지만, 역사는 우리에게 현재에 대한 무언가를 가르쳐 줄 수 있다. 서방과 공산권 간 냉전 대립 시대에 벌어졌던 공급망 무기화 과정이 그 사례 중 하나다. 제재·수출 통제와 같은 수단과 이 수단들이 사용된 목적이 오늘날과 놀랍도록 유사하다는 점에서다.
1947년부터 1992년까지 지속된 냉전 시대를 살펴보면 우리는 공급망 무기화의 효과를 평가할 수 있다. 그 적용으로 인해 때로 예상치 못한, 의도하지 않은 결과들이 나타났다는 것 역시 알 수 있다.
냉전 기간엔 오늘날보다 더 광범위한 산업들이 무기화됐다. 여기에는 컴퓨터, 전자제품 제조 노하우, 통신 장비, 항공우주 산업, 다양한 원자재, 조선, 중장비 기계가 포함됐다. 컴퓨팅과 에너지를 위한 공급망은 아마도 냉전 시대에 가장 경합이 치열했던 분야였을 것이다.
서방 동맹국들의 행동은 두 개의 다자간 플랫폼, 즉 COCOM(대공산권수출통제위원회)과 CHINCOM(대중국수출통제위원회)을 통해 조정됐다. COCOM은 소비에트 연방과 그 위성국들의 전쟁 잠재력이 더 증가하는 것을 방지하거나 지연시키기 위해 1949년 파리에서 설립됐다.
이 위원회는 500개 이상의 금수 조치 품목 목록을 유지했다. 소비에트 블록이 이미 제조하고 있거나 더 이상 전략적으로 중요하지 않다고 여겨지는 것에 대한 정보를 바탕으로 목록의 품목이 매해 추가되거나 제거되는 검토를 거쳤다.
CHINCOM은 1952년 9월에 공산 중국으로의 전략 물자 수출을 구체적으로 다루기 위해 만들어졌다. 설립 직후 '중국 차별화 정책'도 등장했는데, 이는 미국이 다른 공산권 국가들보다 중국에 대해 더 민감하고 제한적인 정책을 유지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결과적으로 동유럽보다 중국에 대해 더 많은 품목이 금수 조치되었다. CHINCOM의 주요 초점은 1964년 중국의 첫 원자폭탄 실험 이후 중국이 자국의 핵 능력을 이용하는 것을 제한하는 것이었다. 미국은 일본·영국 같은 동맹국들이 무역 재개를 모색할 때 더 엄격한 금지 조치를 유지하도록 빈번하게 로비했다.
초기 냉전 전략에는 새로운 기술에 있어 서방의 우위를 보호하기 위한 금수 조치가 포함됐다. 아날로그 및 디지털 방식 모두를 포함한 모든 전자 컴퓨터에 대한 금수 조치가 여기에 포함된다.
1960년대 후반에 이르자 미국은 수출을 통제하기 위해 구체적인 지표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특정 처리 속도를 초과하는 중앙 처리 장치를 갖춘 어떠한 컴퓨터도 동구권으로 수출돼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서방은 소비에트가 컴퓨터 수학은 이해하나 생산 능력은 부족하다는 점을 인식하고 인쇄 회로, 트랜지스터, 고속 집적 회로, 그리고 메모리 장치를 만드는 데 사용되는 제조 장비를 특히 표적으로 삼았다. 이는 소비에트가 탄도미사일 방어 시스템에 필요한 하드웨어를 구축하는 것을 막기 위해 특별히 의도된 것이었다.
허용된 판매에 대해서는 서방이 엄격한 모니터링을 부과했다. 여기에는 불법 군사 프로그램이 실행되지 않도록 확인하기 위한 서방 과학자들의 컴퓨터 메모리 정기 검사, 전원이 꺼진 동안 승인되지 않은 사용을 방지하기 위한 조작 방지용 디지털 시계가 포함됐다. 이러한 접근 방식은 오늘날 대중국 수출 통제 하에 있는 가장 발전된 GPU 및 반도체 제조 장비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과 놀랍도록 유사하다.
한편 소비에트는 수출 통제를 우회하기 위해 중립국이나 우호국에 설립된 유령 회사와 위장 회사를 빈번하게 활용했다. 소비에트 요원들은 중개자 역할을 하는 작은 회사를 설립하기 위해 일본 및 서방 무역 회사들을 이용했다. 유령 회사가 장비를 획득하면, 이 장비가 소비에트 연방으로 선적됐고 발각을 막기 위해 회사는 흔히 해산됐다.
최종 목적지를 숨기기 위해 기술은 종종 여러 국가를 우회했다. 예를 들어 소비에트는 스위스에 유령 회사를 설립해 심해 연구용으로 설계된 캐나다산 소형 잠수함을 획득했다. 이 잠수함은 구매돼 분해된 후 소비에트 국영 항공사의 몇 차례 비행을 통해 부품 형태로 모스크바로 우회 배송됐다.
소비에트는 또한 종종 민간용을 가장하여 합법적으로 기술을 구매한 후, 결국 그 기술을 군사 생산으로 전용하기도 했다. 1972년에 소비에트는 대륙간 탄도 미사일(ICBM) 유도 시스템의 정확성을 향상시키는 데 필수적인 고속·정밀 볼 베어링을 제조하기 위해 민간용으로 제작된 미국 기계를 구매했다.
COCOM 제한에 대한 중대한 위반은 일본 무역 회사를 통한 도시바의 정교한 프로펠러 제조 기계의 불법 판매와 관련돼 있었다. 이 기술은 소비에트 잠수함이 훨씬 더 조용하게 운항할 수 있게 해 서방 군대가 이를 탐지하기 더 어렵게 만들었다. 미국은 소비에트의 새롭게 얻은 우위를 극복하기 위한 새로운 대응책을 개발하는 데 수십억 달러의 비용을 치러야 했다.
석유와 가스는 군대의 혈관으로 개념화됐다. 이를 통제하거나 차단하는 것은 국가의 전쟁 잠재력에 있어 주요 요소가 됐다. 소비에트에게 석유와 가스는 서방으로부터 더 많은 기술과 식량을 구매할 수 있게 해주는 경화(hard currency)의 주요 원천이자 외교 정책의 도구가 되기도 했다.
서방은 석유에 대한 사실상 전면적인 금수 조치를 조율함으로써 중국이 소비에트 연방에 전적으로 에너지를 의존하도록 강제했다. 이는 중국의 공급망을 전통적인 해상 경로에서 벗어나 이미 과부하가 걸린 러시아 시베리아 횡단 철도로 우회하게 만들었고, 공산권 전체에 막대한 물류 부담을 야기했다. 이는 철도 시스템에 엄청난 압박을 가했고, 중국과의 무역을 가장 수요가 많은 원자재인 석유로만 제한했다.
에너지 공급을 단일 육상 노선으로 강제해 동구권의 물류적 유연성을 감소시키기 위한 서방의 의도는 이뤄졌다. 이는 공급망을 특정한 물리적 병목 현상에 취약하게 만들었다. 1971년까지 미국은 중국의 무역 제한을 소련의 수준과 동등하게 맞추기 위해 이러한 다자간 통제를 완화할 것을 주장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전환은 베이징이 서방과의 관계를 열고 모스크바와 거리를 두도록 장려하기 위해 공급망을 정치적 지렛대로 사용하려는 의도였다.
소비에트 블록이 자본을 매우 필요로 했다는 점은 전략적 취약점이었다. 미국은 저리 신용 대출에 대한 소비에트의 필요를 정치적 레버리지용 도구로 사용했다. 그 목표는 모스크바가 소비에트 유전 및 정유소 개발에 필수적인 서방의 부품을 수입하는 데 필요한 자금 조달을 대가로 군사 및 정치적 협상에서 중요한 양보를 하도록 유도하는 것이었다.
1962년에서 1978년 사이의 기간은 수출 통제의 완화와 금융 신용의 제공이 미국으로부터의 소비에트 수입을 급격하게 상승시켰던 냉전의 데탕트 국면으로 여겨진다. 이는 향후 정치적 관계가 악화될 경우 소비에트를 금융 제한에 더 취약하게 만들었다. 데탕트 시대에 소비에트 수입의 급증은 의존성을 강화하는 순환을 만들어냈다.
통제의 완화와 신용의 제공은 기술 수입의 급격한 증가를 이끌었다. 이는 소비에트 미래 취약성을 증폭시켰다. 정치적 관계가 조금이라도 악화되면 신용 흐름이 갑작스럽게 차단 돼 소비에트 경제 전반에 혼란을 야기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냉전 시대 동안 서방의 공급망 무기화는 매우 효과적이었다. 서방은 경쟁자들과 달리 많은 산업에서 글로벌 생산 네트워크의 고부가가치 부문을 차지하고 있었고, 이는 공급망을 지배하던 국가들이 병목구간을 만들 수 있게 했기 때문이다.
차단의 효과는 서방 동맹국 전반에 걸쳐 수출 금지를 하도록 한 COCOM과 같은 다자 체제를 통해 증폭됐다. 준수를 보장하기 위해 미국은 경제적 지렛대를 빈번하게 사용했다. 마셜 플랜 원조를 동맹국의 금수 조치 목록 준수와 연계하는 등의 방식이다. 이는 공산권에 대해 더 관대한 정치적 견해를 가진 다른 선진 경제국으로부터 공산권 국가가 제한된 상품을 조달하는 것을 방지했다.
오늘날 과거 서방의 공급망 무기화를 그토록 효과적으로 만들었던 역학은 달라졌다. 고부가가치 생산 부문은 더 이상 동맹국 경제의 긴밀한 블록 내에 지리적으로 집중돼 있지 않다. 대신 제조 및 기술의 핵심 거점을 더 많은 국가가 차지하면서, 이 생산 부문이 더 다극화되고 상호 의존적인 글로벌 시스템에 걸쳐 널리 분산돼 있다.
대상 국가들이 종종 대체 공급자를 확보하거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더 쉽게 국내 대체재를 개발할 수 있기 때문에, 이러한 확산은 병목구간을 만드는 서방의 능력을 약화시킨다.
더욱이 동맹국 간 경제적 이해관계 분화와 디커플링에 따르는 높은 비용을 고려할 때, COCOM 체제와 같은 긴밀하게 조율된 다자간 수출 통제 체제는 오늘날 유지하기 더 어렵다. 그 결과 공급망 통제는 여전히 강력한 도구로 남아있지만, 냉전 시대에 비해 덜 효과적이며 우회에 더 취약해졌다.
*이 칼럼에서 표현된 견해와 의견은 전적으로 필자('배터리 전쟁' 저자) 개인의 것이며 소속회사의 것을 대변하지 않습니다. 필자와는 Twitter에서 @LithiumResearch를 팔로우하거나 hitechcolumn@gmail.com으로 연락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