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1000평 인삼밭 뿌리째 썩었는데 "농약 뿌려라" 100만원 보상

뉴스1 제공
2020.09.24 10:30

완주 농부 7년만에 7000만원 첫 수확 꿈, 여름 폭우에 물거품
군청 "조사땐 멀쩡" 대파비 거부…'NDMS' 열흘기한 책정 문제

(전북=뉴스1) 김동규 기자

8월 호우로 침수된 전북 완주군 용진읍 왕정열씨의 인삼이 최근 모두 죽어버렸다.2020.9.24 /뉴스1 © News1 김동규 기자

(전북=뉴스1) 김동규 기자 = 모두 썩어버린 인삼 줄기. 1000여 평의 인삼밭은 모두가 새까맣다. 여기저기 땅을 파보아도 튼실하게 크고 있어야 할 인삼은 보이지가 않는다. 애타는 마음으로 계속 곡괭이질을 해보지만 연이은 헛손질이다.

4년째 키운 인삼을 10월 수확해 몫돈 7000여만원을 만져볼 수 있을 것이란 왕정열씨(48·전북 완주군 봉동읍)의 꿈은 한순간에 물거품이 됐다. 맑게 갠 하늘을 쳐다보니 울화통이 터지고 한숨만 나온다.

정부가 지원해준다는 보상비는 농약대금으로 고작 100여만원. 모두 죽어버린 인삼에 농약을 뿌리라고 정부가 준다는 돈이다.

인삼이 모두 죽어 인삼밭을 철거해야 하는데 그 비용이 만만치 않다. 4년 농사가 하루아침에 망했는데 이제 이를 정리하려 하니 돈이 들어가야 하는 기가 막힌 상황이다.

왕씨는 7년전 첫 인삼농사에 도전했다. 인삼을 심기 위해 3년 동안 예정지 관리를 해왔다. 인삼은 많은 영향분이 필요하기 때문에 무엇보다 토질이 중요하다.

그래서 2~3년 동안 거름을 주고 땅 갈기를 반복한 후 인삼을 심어야 한다. 왕씨는 그렇게 3년을 관리한 후 4년 전 인삼을 심었다. 올해가 수확을 하는 시기다.

왕씨의 인삼이 모두 썩게 된 것은 지난 8월 내린 폭우 때문이다. 산에서 내려온 빗물이 인삼밭을 덮쳤다. 가까스로 복구를 했으나 때는 이미 늦었다. 인삼은 물에 잠기면 모두 썩어 몇 년간의 농사를 망치게 된다.

뉴스1 전북취재본부는 신인성 전북인삼농협조합장, 소완섭 완주군의원과 인삼밭을 찾아가 왕씨를 만나봤다.

◇7000만원 손실 났는데 보상비는 고작 100여만원

왕씨가 정부로부터 피해보상금으로 받게 된 금액은 '농약대금' 100여만원이다. 농작물에 대한 정부의 피해보상금은 대파비와 농약대금으로 나눌 수 있다. 대파비란 다시 농작물을 심을 수 있는 비용을 말한다.

인삼의 경우 24시간 동안 침수가 되고 70% 이상이 죽어야 대파비를 받을 수 있다. 조사당시 왕씨의 인삼밭은 24시간 침수가 되지 않았고 줄기가 많이 살아있었다는 게 완주군 담당 공무원의 설명이다.

그래서 담당공무원은 NDMS(자연재난시스템)에 이를 등록했고 이를 기준으로 피해보상금 ‘농약대금’이 지급되는 것이다. 왕씨가 농약대금이 아닌 대파비를 받게 되면 보상비는 500만~700만원이다.

왕정열씨는 "호우가 쏟아지고 며칠 후 인삼이 썩어가는 것을 보게 됐다"며 "7년간의 고생이 물거품이 되는 순간이었다. 아버지는 인삼밭을 보시고 눈물을 흘리셨다"고 말했다.

이어 "군청에서 조사할 당시는 줄기가 50% 정도 살아 있었는데 며칠이 지나자 모두 죽었다"며 "군청에서 '농약대금' 지원 대상자로 분류했다. 차라리 일찍 죽었으면 대파비라도 받았을 텐데 아쉽다"고 고개를 숙였다.

8월 호우로 침수된 전북 완주군 용진읍 왕정열씨의 인삼밭을 찾은 소완섭 전북 완주군의원(왼쪽 첫번째)와 신인성 전북인삼농협 조합장(가운데)..2020.9.24 /뉴스1 © News1 김동규 기자

◇신인성 조합장 “정부 NDMS 문제 있다”

신인성 전북인삼농협조합장은 인삼에 대한 피해조사와 정부의 NDMS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신 조합장은 “인삼이 침수되면 피해조사 당시는 줄기가 파랗게 살아 있는 경우가 많다”면서 “하지만 뿌리를 캐보면 모두 썩어 있다”고 설명했다.

뿌리가 모두 썩은 후 줄기가 말라 죽기 때문에 눈으로 확인까지는 며칠의 시간이 소요된다는 게 신 조합장의 설명이다.

그는 “왕씨의 인삼밭의 경우 호우로 침수되기 전 이미 계속된 장마로 인해 많은 습기를 머금고 있었다. 따라서 24시간 침수 기준을 적용하면 안된다”면서 “계속된 장마는 이미 인삼에 치명적 타격을 입혔고 침수가 결정적 영향을 미친 것이다”고 주장했다.

정부의 NDMS에 대한 문제점도 지적됐다.

완주군 담당 공무원에 따르면 수해가 발생되면 NDMS에 피해상황을 등록하게 되어 있다. 기간은 10일 이내다. 여기에서 10일은 피해조사와 보상금 결정까지 모두 합친 시간이다.

완주군 담당 공무원은 “10일 이내에 모든 것을 처리해야 하기 때문에 당시 상황에서 피해 정도를 기준으로 삼을 수밖에 없다”면서 “왕씨의 인삼밭은 당시 정부의 기준에서 ‘농약대금’ 지급 대상이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신인성 조합장은 “피해를 조사하는 공무원들이 농가와 충분히 소통하면서 피해 정도를 파악해야 한다”면서 “기간이 촉박하고 담당 공무원이 원칙에 벗어나지는 않았지만 아쉬움은 있다”고 말했다.

8월 호우로 침수된 전북 완주군 용진읍 왕정열씨의 인삼이 최근 모두 죽어버렸다.2020.9.24 /뉴스1 © News1 김동규 기자

◇ 침수됐던 뿌리·산림작물 썩는 줄 몰랐다

왕씨의 인삼밭처럼 뿌리작물과 산림작물을 재배하는 일부 농가들은 수해를 입고도 제때 신고를 하지 못해 보상금을 한 푼도 못 받는 사례가 많다.

실제 완주군 소양면에서는 수해를 입은 철쭉 재배농가들이 상당수 NDMS에 등록하지 못했다.

뿌리작물과 산림작물은 침수가 되더라도 바로 줄기가 죽는 것이 아니라 뿌리부터 상하기 시작하기 때문에 육안으로 확인하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소완섭 완주군의원은 “작물마다 NDMS에 등록할 수 있는 시간을 다르게 해야 한다”면서 “피해 조사에서부터 보상 확정까지 10일 이내에 등록하게 되면 육안으로 상태를 확인할 수 없는 뿌리작물과 산림작물은 등록을 하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완주군의회에서도 이러한 문제가 거론됐다”면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의회 차원에서 정부에 건의할 계획이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뉴스1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저작권자 © ‘돈이 보이는 리얼타임 뉴스’ 머니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