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압조절위원장 정몽준, 온도조절위원장 원혜영, 수질검사위원장 강기정…"
2009년 봄, 국회에'목욕당'이 창당(?)됐다.
국회 구내 목욕탕을 이용하는 여야 의원들이 친목 도모 차원에서 만든 것이다. 뜻이야 좋았지만 따가운 시선도 있었다. 이때만 해도 동물국회라 불릴 만큼 여야 극한대치와 몸싸움이 잦았다. 의원목욕탕의 존재 자체가 특권으로 비치기도 했다.
"재미있는 직책이 즐비했지만 국회의원들이 국회에서 싸움질이나 하다 목욕탕에선 웃고 즐기는 것 아닌가 국민들이 생각할 것 같았다."
2015년 새정치연합 정책위의장을 맡고 있는 강기정 의원의 당시 고백이다. 이때 목욕당 탈당까지 고민했다고. 물론 탈당은 생각에 그쳤다. 지금도 새벽녘 목욕탕에서 몸과 마음을 다잡고 있다. 그 덕분일까, 아무리 뜻이 달라도 새누리당 의원들과 인간적인 친분은 두텁게 유지한다.
'여의도 수질검사위원장' 강 의원은 문재인 대표가 정책위의장에 낙점한 뒤 정책의 바다에 풍덩 빠졌다. 문 대표의 핵심과제인 소득주도성장론 등 굵직한 숙제가 강 의원 손에 있다. 특히 공무원연금개혁이 2015년 정치권 핵심화두로 부상하면서 협상 전면에 선 그에게 카메라 플래시가 쏟아진다. 이와 관련 국회특위 간사, 국민대타협기구 공동위원장도 맡았다.
[그는…]
강기정(姜琪正) 의원은 새정치민주연합 내 '86그룹'(80년대 학번·60년대 출생)이자 복지분야 정책통이다. 전남 고흥 출신으로 전남대 전기공학과 시절 학생운동에 투신, 5.18 진상규명을 요구하며 미국 문화원 점거농성을 벌였다. 이 일로 8년의 실형을 받고 3년 7개월 복역했다. 광주에서 시민사회운동을 벌이다 17대 국회부터 내리 3선 했다. 개혁국민정당(개혁당)을 주도했고 이는 열린우리당 창당으로 이어졌다.
국회 보건복지위·안전행정위에서 활동했고 19대 국회엔 4년내내 정무위원회 소속이다. 특히 정무위에선 5.18 기념식과 공식 지정곡을 둘러싼 논란에 당 대표선수를 자임하고 있다. 강경한 보수주의자로 통하는 육사 출신 박승춘 국가보훈처장과 정무위에서 수차례 양보없는 설전도 벌였다.
정책위의장 발탁은 우선 문재인 대표의 탕평인사로 해석됐다. 강 의원은 정세균 상임고문과 가까운 정세균계로 분류됐기 때문이다. 정세균 대표 시절 민주당이 2010년 6.2 지방선거에서 승리할 때 대표비서실장이었다.
정작 본인은 중복계파란 말에 유연한 입장.
"386그룹으로 분류하는 것은 두말 할 필요가 없다. 개혁당 그룹도 틀림없는 분석이다. 재야파로 불리는 것 역시 정확한 분석이다."
계파안배보다 그가 보건복지분야 정책을 꿰고 있는 정책전문가란 점이 주목된다. 초선 때는 보건복지위 여당 간사로 활동했다. 2007년 국민연금법 개정안, 기초노령연금법 제정안 처리에 주역이었다. 그런 강 의원이 2015년 공무원연금개혁 협상을 이끄는 것은 묘한 인연이다. 국민연금·군인연금 등 공적연금 전체를 자신의 화두로 삼고 있다. 복지정책에 관심을 가진 건 자신의 지역구에 노년층 등 복지수혜계층이 많다는 점도 한 배경이다.
[키워드① 다윗]
총선때 거물 정치인을 잇따라 꺾으면서 다윗으로 불린다. 16대 총선 탈락 뒤 17대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으로 배지를 달았다. 탄핵 역풍에 힘입어 6선의 김상현 후보를 꺾어 화제를 뿌렸다.
거기에 그쳤으면 '탄돌이' 정도로 치부됐겠지만 2008년 18대 총선에선 한화갑 전 의원을 눌렀다. 동교동계 핵심인 한 전 의원은 당시 민주당 공천에서 배제되자 고심 끝에 광주북갑에 출마했지만 강 의원에게 밀렸다. 이렇게 되자 '골리앗'을 잇따라 물리친 '다윗'으로 통하게 됐다.
한 전 의원이 밀려날 정도로 치열했던 당시 경선도 흥미진진했다. 기획예산처 장관을 지낸 장병완 의원, 김동신 전 국방부 장관 등 12명이 공천을 신청했고 현역의원인 강 의원이 공천장을 따냈다. 장병완 의원과는 정책위의장 선후배이기도 하다.
(※장병완 의원은 2010년 광주시장에 출마한 강운태 의원 사퇴로 보궐선거를 치른 광주 남구에서 18대 국회의원이 됐다.)
[키워드② 목욕당/목욕탕]
국회 부대시설 가운데 의원 목욕탕이 있다.
전국 각지에서 상경한 지역구 의원들은 서울에 마땅한 기반이 없어 자취 또는 오피스텔 생활을 하는 경우가 있다. 강 의원도 2004년 초선 때 집을 구하기 전까지 의원실에서 며칠간 숙식한 적도 있다.
이때부터 단골이 됐다. 그것도 오전 6시부터 이용하는 새벽형이다.
정책위의장이 되고는 새벽 구상을 오래할 수 없어 늘 아쉽다.
"원래 6시면 국회로 나와 1시간 목욕탕에서 사색에 잠기는 게 최고의 즐거움이었죠. 요즘은 목욕탕 출근을 오전 5시30분으로 당기고, 목욕시간도 30분으로 줄였어요."
목욕탕 일화에서 그의 또다른 면도 엿볼 수 있다. 틈틈이 일기로 생각을 정리하는 습관 덕에 '강기정의 목욕탕 이야기'란 책을 두 권 냈을 정도다. 해외출장 땐 공항 대합실, 비행기 기내를 가리지 않고 그때그때 소감을 썼다. 최근엔 비록 '독수리 타법'이라도 노트북 컴퓨터를 들고다니며 회의마다 내용을 정리하는 학습열의가 눈에 띈다.
[대표법안= 기초노령연금법]
정치좌우명은 도전정신이다.
"1999년 시작한 정당개혁운동때부터 화두다. 하지만 그런 거대담론만이 아니라 모든 문제에서 도전해야 창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2007년 통과된 기초노령연금법이 대표적인 강기정법이다. 당시에도 적게 내고 많이 받는 구조 때문에 악화되는 연금재정 개혁이 숙제였다. '도전정신'을 발휘한 결과일까. 강 의원은 국민연금제도개선특위를 주도하는 등 노인 60%에 월 10만원 가량 기초노령연금을 지급하는 법안 통과에 앞장섰다. 당시 여당과 야당인 한나라당·민주노동당, 정부간 합의가 진통을 겪었다. 강 의원은 "연금 역사에 획을 긋는 사건이었다"고 말했다.
'1호 법안'은 2004년 제출한 전염병예방법 개정안이다. 지방자치 확대를 위해 그때까지 시도 관할이던 전염병예방시설 설치, 소독업 신고 등을 시장·군수·구청장으로 넘기는 내용이다. 19대 국회 들어 정무위 소속으로 신용정보보호법, 국가유공자예우법, 재향군인회법 개정안 등을 발의했다.
[사람들= 유시민 vs 김성회]
강 의원은 김대중정부때 정당개혁과 신당 운동에 뛰어들었다. 2002년 개혁국민정당 창당으로 이어졌다.그보다 5살 많은 유시민 전 장관은 창당 동지다. 2007년 국민연금법-기초노령연금법 통과 땐 여당 의원과 보건복지부 장관으로 호흡을 맞췄다.
17대 국회엔 여당의 개혁당 그룹인 참여정치연구회에 참여했다. 강 의원은 연구회에 대해선 "유시민 의원이 주도했다고 '유시민 그룹'으로 불렸지만 정확한 명칭은 아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김성회 전 의원은 대표적인 강 의원 연관 검색어다. 18대 국회이던 2010년 12월 한나라당(현 새누리당)이 예산안을 강행처리했고 야당이 강력 반발하는 상황에서 김성회 당시 한나라당 의원과 '유혈 충돌'을 빚었다.
정세균 의원은 강 의원이 '멘토'로 꼽는다. 특히 낙수경제에 반대하는 분수경제를 주창한 정 의원은 강 의원이 당의 소득주도성장론을 가다듬는 데 적잖은 조언을 주고 있다. 한편 올해 탈당해 광주 보궐선거에 출마한 천정배 전 장관이 원내대표 시절엔 원내부대표로 호흡을 맞췄다. 미 문화원 점거사건 당시 동료가 나주시장을 지낸 신정훈 의원이다.
[요 주의! "기정아, 참아"]
비교적 깨끗한 정치활동을 펴왔지만 국회폭력 사례에 연루된 것은 약점이다. 국회선진화법에 따라 물리적충돌이 더이상 '야당 최후의 수단'으로 용인되지도 않고, 강 의원도 3선 중진급이니 그의 몸싸움 릴레이가 이어질 것 같지는 않아 보인다.
2010년 예산안 처리과정에서 여야 몸싸움이 극심했다. 강 의원은 김성회 당시 한나라당 의원과 충돌했다. 강 의원이 축구로 단련됐다지만 그에 못지않게 운동에 능한 김 의원(육군사관학교 럭비부 주장 출신)에게 얼굴을 맞아 입 안이 찢어지는 부상을 입었다. 강 의원이 다시 김 의원에게 달려가려 하자 정태근 한나라당 의원이 "기정아 참아"라고 싸움을 말려 화제가 됐다. 정태근 전 의원과는 비록 당은 달랐지만 운동권 시절 동료다.
강 의원은 2013년 11월 18일 박근혜 대통령의 2014년 예산안 시정연설이 끝난 직후 국회의사당에서 청와대 경호원과 몸싸움에 휘말렸다. 대통령 경호를 위해 국회의사당 앞에 세운 버스 3대가 연설이 끝난 뒤에도 이동하지 않은 것이 빌미가 됐다. 당시 경호실은 강 의원이 "(차를) 치워라"며 버스 문을 걷어찼고 경호원들과 실랑이가 벌어졌다고 밝혔다. 반면 강 의원은 "경호원 얼굴도 못 봤다"고 반박했다.
[이 한 장의 사진]
'한다면 한다'는 그의 성격을 보여주는 일화. 2013년 국회 국가정보원 국정조사 청문회에 증인으로 출석했다. 현역의원으로 국회 청문회에 증인 출석한 건 그가 처음이다.
김무성 대표, 권영세 전 주중대사 등 2012년 대선 당시 새누리당 핵심인사들의 증인 출석을 촉구하고, 새정치연합 보좌진의 방패가 되겠다는 이유를 내세웠다. 현재 여당의 수장인 김무성 대표와는 또하나의 악연(?)인 셈이다.
특히 8월19일 청문회에선 여당 청문위원인 이장우 의원이 강 의원 답변태도를 문제삼아 "폭력 의원"으로 부르자 분위기가 험해졌다. 강 의원은 청문회 정회때 이 의원 자리로 가 책상을 치면서 "동료의원 발언에 '폭력의원'이 뭐냐"고 항의했다. 이 의원은 "증인이 어디 와서 책상을 치고 그러느냐"고 맞섰고 두 사람은 고성을 주고 받았다.
[잠깐! 광주생각]
고교시절부터 광주에서 지냈다. 전남대 삼민투(민족통일·민주쟁취·민주해방 투쟁위) 위원장으로 활동하는 등 광주를 기반으로 민주화 운동을 했다. 속칭 '뼈를 묻는다'고 한다면 강 의원에겐 광주 말곤 선택지가 없는 셈이다. 젊은 편이어서 '호남중진'이란 수식어는 아직 어색하다.
의정활동도 광주와 연관된 일이 적지않다. '임을 위한 행진곡' 논란은 대표적이다. 이를 5.18 공식기념곡으로 지정해야 한다는 야당과 곤란하다는 국가보훈처가 맞선 상황이다. 강 의원은 이 노래 작곡자를 찾아가 만나는 등 '강기정이 전하는 임을 위한 행진곡 이야기'를 책으로 냈다.
지난해 12월 채용공고 웹사이트에 '전라도 출신은 안 된다'는 뜻으로 '전라도X'란 표현이 들어간 공고가 올라 논란이 됐다. 현대자동차 협력기업 남양공업이 주인공이다. 회사 측은 실무자 착오라고 해명했지만 강 의원은 강력 비판했다. 그해 12월 11일 남양공업 대표가 국회로 강 의원을 찾아와 사과했다. 지금도 강 의원 연관검색어에 '현대차'가 뜨는 이유다.
[프로필]
△전남 고흥(1964년) △전남대 전기공학과 △17·18·19대 국회의원(3선·광주 북갑) △국회 예산결산특별위 간사 △민주당 대표 비서실장 △통합민주당 원내대표 비서실장 △열린우리당 원내부대표 △열린정책연구원 이사 △민주통합당 최고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