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했다 하면 지는 '미생' 야당… 트랜스포머 왜 못되나
22일 새정치민주연합은 전병헌 최고위원을 위원장으로 한 창당60주년 기념사업회 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갈등만 부각되는 당의 현실을 딛고 단합의 계기를 만들겠다는 뜻이다. 이를 위해 1955년 창당한 민주당까지 거슬러가며 '족보'를 찾았다.
하지만 이날 아침 열린 최고위원회의는 지난 5월에 이어 또 다시 볼썽 사나운 격돌이 일었다. 유승희 최고위원이 공개회의는 물론, 이어진 비공개 자리에서 정봉주 전 의원 사면을 거듭 주장하자 이용득 최고위원이 발끈, 고성을 주고받았다. 유 최고위원이 회의시간을 너무 많이 차지한다는 볼멘소리였지만 전부터 쌓인 갈등이 폭발한 결과다. 유 최고위원은 최근 문 대표에 반발해 회의에 20여일 불참했고 복귀하는 날도 문 대표를 공개비판했다. 이 최고위원은 이를 해당행위로 규정하는 등 두 사람 사이엔 냉기가 감돌았다.
이날 벌어진 두가지 상반된 장면은 대한민국 제1야당이 처한 최악의 상황을 보여준다.
선거마다 연전연패로 국민에게 외면받는 것은 물론, 총선을 앞두고 내부갈등 악화로 신당창당이나 분당설도 고조된다. 박근혜정부와 집권 새누리당을 대신할 마땅한 비전도 보여주지 못했다.
특단의 개혁이나 쇄신이 없으면 영원히 '완생'이 되지 못하는 미생 정당으로 남을 것이란 회의감이 당 내부에서도 강하게 제기된다. 2016년 총선 승리로 국회 다수당이 되거나 2017년 대선승리로 집권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뒤처진 정당, 유권자 변화 못읽어
새정치민주연합의 최대 약점은 실력부족, 또는 실력부족으로 비치는 이미지다. 최근 선거에서 연전연패하면서 이런 점이 부각됐다. 2010년 지방선거 승리 이후 2012년 총선과 대선, 2014년 국회의원 재보선(7.30), 올해 재보선(4.29)도 연거푸 패했다. 특히 4.29 선거에선 4곳 중 '0석'이라는 굴욕을 맛봤다. 이 때문에 "재보선은 여당의 무덤"이란 정치권 공식도 달라졌다.
한국갤럽의 정례조사에서 새정치연합 정당지지율은 올해 1월 첫주 24%이던 것이 7월 셋째주 22%를 나타냈다. 연초와 비슷하지만 2월 문재인 대표 취임 후 컨벤션효과로 29%까지 올랐던 데 비하면 '기대감'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셈이다. 특히 4월 넷째주 29%에서 5월 둘째주 22%로 하락, 4.29 재보선 패배 후 지지가 급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선거에서 이기지 못하는 정당이란 현실을 다시 드러냄으로써 대안정당으로 위상을 잃은 것이다.
시대변화에 뒤처진 정당구조와 인적구성, 경제 등 국민생활에 밀착한 공약개발 실패, '호남'이라는 지역기반에 대한 딜레마 등이 겹친 결과다.
소셜네트워크(SNS)에 '올인'하다시피 하는 뉴미디어 선거를 강조하면서도 여전히 온라인으로 당원에 가입할 수 없을 정도로 당 운영은 시대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기존 당원도 호남 중심, 장년층 위주다. 각종 선거에선 야당으로 정권심판론을 외치는 도그마에 빠져 오로지 민주·반민주, 부패한 보수에 맞선 진보 결집 구호만으로 승리를 기대해 왔다. 새누리당에 비해 효과적인 캠페인이나 공약을 펴지 못했다. 특히 경제분야에 무능하다는 인식은 선거마다 발목을 잡았다.
총선을 앞두고 당이 요동치는 바탕에도 이대로는 당의 집권도, 소속 국회의원 각자의 총선 당선도 장담하기 어렵다는 불안감이 도사리고 있다. 여기에 혁신안과 공천쇄신을 통해 자칫 공천조차 어려울 것이란 일부 의원들의 공포가 겹쳤다. 새정치연합에 대한 민심이반이 심각한 호남의 중진의원들이 연일 신당 가능성을 거론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호남을 중심으로 한 새정치연합 분당과 무소속 천정배 의원의 신당 창당은 변수가 아니라 상수로 여겨질 정도다.
◇벼락치기 안돼..노력의 '양과 질' 다 바꿔야
정당의 존재이유가 선거승리와 집권이란 점에서 새정치연합은 이길 수 있는 정당으로 탈바꿈해야 한다. '수권정당' 면모가 약한 새정치연합은 벼락치기 선거운동보다는 정권을 잡고 정부를 운영할 능력이 있다는 면을 평소에 보여줘야 한다는 지적이다.
새정치연합의 화두가 되고 있는 '혁신'의 요체는 바로 이 지점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경제분야 전문가를 영입하고 유권자 지형 변화를 반영한 공약을 개발해야 한다.
특히 상황과 이슈별로 필요한 대응을 해낼 수 있는 유연성이 요구된다. 영화 '트랜스포머'의 변신로봇처럼 달려야 할 때는 자동차로, 싸울 때는 로봇으로 변신할 만큼 국회의원들과 당 조직이 유기적으로 움직여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에 수시로 분출하는 이견을 조율하고 때로는 규율을 세울 수 있는 리더십도 요구된다.
정한울 동아시아연구원 사무국장은 "유권자는 더이상 진보·보수만으로 가를 수 없는데 새정치연합은 이념과 선명성을 강조하다보니 현실을 바로 보지 못했다"며 "현 지도부는 큰 그림을 봐야 하고, 이른바 '비노'는 일종의 피해의식이 있을 수 있지만 스스로의 책임도 자성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야당이 분당한다면 일본 자민당처럼 새누리당이 장기집권할 수 도 있다"고 지적했다.
'유능한 경제정당' 내건 제1야당, '집권엔진' 정책은?
"민생정당으로 가기 위해서는 대표성을 변경해야 한다. 당원에 대한 대표성 뿐 아니라 부문별 대표성이 반영된다면 설령 내부에서 권력적 욕심이 있어 갈등하는 모습이 보여도 정책을 중심으로 이뤄질 수밖에 없다. 당내갈등도 정책을 두고 해야 국민들이 이해한다"
지난 8일, 정채웅 새정치민주연합 혁신위원회 대변인이 2차 혁신안을 발표한 후 기자들과 따로 만나 최고위원회와 사무총장을 폐지하는 이유에 대해 설명하며 한 말이다.
계파 정치 청산을 주 목적으로 구성된 혁신위지만 계파 청산 이후 집권을 위한 미래정당의 모습은 결국 '정책정당'이 아니겠느냐는 고민이 밴 발언이다.
새정치연합은 지난달 30일 문재인 대표가 ‘당의 집권 엔진’이라고까지 추켜세운 ‘유능한 경제정당 위원회’를 출범시켰다. 새정치연합 ‘브레인’으로 불리는 민주정책연구원은 최근 ‘여권 파워게임 상황인식 및 대응’이라는 보고서를 통해 ‘정책’을 전면에 내세운 ‘민생 구하기’로 총선이슈를 미리 선점하는 승부수를 던지라고 지도부에 제언했다.
◇‘정책정당’ 새정치의 뼈대…소득주도성장
‘정책정당’으로 발돋움하고자 몸부림치는 새정치민주연합이 내세우는 정책 뼈대는 ‘소득주도성장’이다. 수출 대기업 중심의 경제 성장 전략에서 벗어나 임금과 가계 소득을 높여 내수를 튼튼히 함으로써 성장을 촉진하는 방향으로 경제정책 기조를 바꿔야 한다는 내용이다.
소득주도성장은 문재인 대표가 취임 이후 선언적으로만 주창되다 지난 4월 진행된 국회 본회의 교섭단체 대표연설을 통해 보다 구체화 됐다. △임금소득의 실질적 상승과 노동시장의 양극화 해결 △580만 자영업자 종사자 대책 마련 △국민 필수수요 생활비 감소 대책 △공정한 세금 등을 내용으로 한다.
문 대표는 당시 “국민의 지갑이 두툼해져야 소비가 늘고 내수가 살아나서 결국 혜택이 기업에게 돌아간다”며 “소득을 국민들에게 돌려주는 것은 어려운 길이지만 그것이 대한민국의 살 길이고, 국민들이 잘 사는 길”이라고 말했었다.
◇조세정책에도 화력집중…‘법인세 감세철회 3대 법안’
4년 연속 세수 결손과 국가 채무 증대라는 상황을 헤쳐나가기 위해 가계소득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는 법인세 인상을 통해 나라 곳간을 채워나가겠다는게 새정치민주연합의 조세정책이다.
지난해 말부터 주장해 온 ‘법인세 감세철회 3대 법안’인 △대기업 비과세 감면 지원제도 폐지(홍종학 의원 발의) △법인세 최저한세율 인상(최재성 의원 발의) △법인세율 인상(이낙연 전 의원 발의)이 뼈대를 이루고 있다. 야당은 이를 통해 약 10조원의 추가 재원을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으며 해당 상임위인 국회 기획재정위원회를 중심으로 3대 법안 중 법인세율을 이명박 정부 이전 수준으로 높이는 방안이 집중적으로 논의되고 있다.
◇‘유능한경제정당위’서 정책역량 강화…5개 분과서 아젠다 발굴
야당의 집권플랜을 위한 경제 정책 방향은 문 대표가 “집권하는 순간까지 경제분야 ‘섀도 캐비닛’ 역할을 해 달라”고 당부한 ‘유능한경제정당위원회’에서 보다 다듬어질 것으로 보인다.
위원회는 지난 7일 첫 번째 전체회의를 열고 향후 운영방안 및 경제정책안 등을 정리했다. △소득주도성장 거시분과 △공정한 조세·재정 분과 △혁신신산업·산업분과 △모두를 위한 금융분과 △지역상생경제 분과 등 5개 분과를 두고 정책 역량 강화 및 입체적인 선거 공약과 아젠다를 발굴할 계획이다.
특히 소득주도성장 분과와 공정한 조세·재정분과에서의 얼마나 국민을 설득할 수 있는 결과를 내놓을 수 있느냐에 주목하고 있다는 것이 당 관계자의 설명이다.
아울러 지난 4월 진행된 정책엑스포 당시 검토됐던 △대기업-중소기업 상생 협력 경제생태계 조성 △서민 중산층 생활 가처분 높이기 △공공부문 지속업무자 정규직 전환 △최저임금 높이기 등의 방안도 위원회 차원에서 논의할 예정이다.
위원회는 5개 분과의 논의 성과를 통합·조정하는 새경제기획위원회를 별도로 둘 예정이며, 새경제기획위원회에서 협의 조정 후 전체회의에 토의안건을 상정해 확정된 정책을 발표한다. 전체회의는 매월 1회, 분과와 새경제 기획위원회는 수시로 열리게 된다.
'제왕적 대표' 의구심 극복 과제…'김상곤 혁신안
계파갈등으로 얼룩진 새정치연합을 수술하기 위해 문재인 지도부가 꺼낸 키워드는 '혁신'이었다.
새정치연합의 발목을 잡아온 계파 간 갈등은 4·29 재·보궐선거 참패, 정청래 의원 막말파문 등으로 극에 달했다.
문 대표는 혁신위원장으로 김상곤 전 경기도교육감을 임명하고 혁신의 전권을 부여했다. 지난 5월27일 선임된 김 위원장은 우원식 의원, 조국 서울대 교수 등 10명의 혁신위원과 함께 계파 정치를 타파할 수 있는 혁신안 마련에 나섰다.
혁신위원회는 4차례에 걸쳐 혁신안을 발표했고 혁신안 중 일부 내용이 지난 13일 당무위원회, 20일 중앙위원회에서 통과돼 효력을 발휘하게 됐다.
통과된 혁신안의 핵심은 사무총장제 폐지다. 사무총장은 당내 인사, 예산, 조직관리 등의 당무를 담당하고 선거 때 공천심사위원회에 당연직 위원으로 참여해 막강한 권력을 가지고 있었다. 당내 계파가 서로 줄을 대 차지하려던 자리여서 혁신위가 계파싸움의 온상으로 지목했다.
혁신안은 조직관리를 담당하는 조직본부장과 예산·인사를 담당하는 총무본부장을 신설해 사무총장의 역할을 대신하게 했다. 사무총장을 둘러싼 계파 간 갈등을 완화시키기 위한 조치다. 당 지도부도 22일 총무본부장에 친노 최재성 의원, 비노 이윤석 의원을 선임해 혁신위의 취지에 맞는 인선을 마쳤다.
이밖에도 △당무감사원 설립과 당원소환제 도입 △부정부패 등으로 직위 상실시 재·보궐선거 무공천 △부정부패 연루 당직자의 당직 박탈 등의 혁신안도 효력을 가지게 됐다.
하지만 김상곤표 혁신이 완성되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산이 많다. 격렬한 논란이 예상되는 민감한 안건들의 상정은 오는 9월 중앙위로 미뤄놨다.
혁신위는 사무총장에 이어 최고위원회도 폐지할 방침이다. 전국대의원 선거를 통해 뽑히는 현재의 최고위원회가 계파 정치를 심화시킨다는 판단에서다. 최고위원이 모호한 전국 대표성만 갖기 때문에 계파에 의존하고, 계파를 확장하려는 정치가 반복된다는 진단이다.
혁신위는 권역별, 시·도당별, 세대별로 최고위원을 뽑는 안을 구상하고 있다. 혁신위원들은 외국 정당 구조 사례 등을 참조해 모델을 만드는 중이다. 최고위원들에게 명확한 대표성이 생기면 갈등의 기본 척도가 계파가 아닌 정책으로 넘어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이같은 혁신안으로 인해 오히려 당 대표의 권한이 지나치게 막강해질 것으로 보는 이들이 적지 않다. 최고위원이 전국대의원선거를 통해 뽑히지 않는다면 당 대표가 전국적인 지지를 받는 유일한 지도부 인사가 된다. 이에 비주류는 '제왕적 대표'가 탄생하는 것을 우려하고 있다.
무(無)계파 중립인사로 꼽히는 이석현 부의장 조차 "최고위원제 폐지는 당대표에게 권한을 몰아주려는 것"이라며 "혁신과 함께 당내 화합이 중요하기 때문에 최고위원제 폐지는 총선 이후로 논의하는 게 좋다"고 제안하기도 했다.
격렬한 논쟁이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또 하나의 안건은 역시 공천개혁이다. 기득권 타파를 위해 마련된 공천개혁의 중심에는 신설 '선출직공직자 평가위원회'가 있다. 100% 외부인사로 구성된 평가위는 현역활동, 공약이행률 등의 정성·정량 평가를 통해 교체지수를 산정한다.
'점수'가 낮으면 공천을 받을 수 없기 때문에 일각에서는 '공천 물갈이 도구'로 불린다. 문재인 대표가 "평가위 구성을 움켜쥘 생각이 없다"고 강조했지만 비노 입장에서는 '공천 학살'이 일어나지 않을까 전전긍긍하고 있다.
새정치연합의 혁신안은 '재탕' 논란에 시달리기도 했다. 사무총장제 폐지는 2004년 열린우리당 시절 이미 실험했었지만 실패했던 적이 있다. 공천 개혁과 관련한 교체지수 도입도 2010년 '천정배 혁신안' 등에서 논의됐었던 안건이다.
혁신위원인 조국 서울대 교수는 "이번 혁신위의 역할은 완전히 새로운 안의 제출이 아니라 실천 확보"라고 강조했다. 흐지부지됐던 과거의 시도와 달리 반드시 혁신안을 관철시켜 계파 정치를 청산하겠다는 의지다.
물갈이·용퇴론…'위기의 486', 이대로 소멸하나
지난 15일.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 올라온 '586 전상서'라는 글이 야당을 발칵 뒤집어놨다. 33살의 젊은 이동학 새정치민주연합 혁신위원이 '4(5)86세대'(40~50대·80년대 학번·60년대생)의 리더격인 이인영 의원을 향해 "당의 활로가 되어 달라"며 '적진'에 출마할 것을 요청했다.
'민주화 주역'이라는 훈장을 받으며 정치권에 발을 디뎠지만 이제는 기득권 세력이 돼버린 486그룹은 이제 청산대상 1호로 거론될 만큼 위기에 처했다.
전문가들은 486세대가 정책대안과 비전을 제시해 당의 외연을 넓히고 민생정당으로 변모시키지 않으면 더이상 설 자리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민주화 주역에서 '486' 정치인으로
출발은 '386'이었다. 30대의 나이로 80년대의 학번인 60년대생을 지칭하는 말이다. 이들이 나이가 들어 40대가 됐으니 486세대로 칭한다. 이제 대부분 50대인 '586세대'가 되면서 '86세대'로도 불린다. '전대협(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 출신이 주를 이룬다.
지금의 새정치연합은 동교동계(김대중 전 대통령을 따르던 정치집단), 노무현 전 대통령 세력의 원조 친노를 비롯한 386 운동권이 합쳐진 정당이다.
민주주의를 지향하고 독재를 경계하는 민주당 정신을 잇는 새정치연합의 정신은 운동권 세대로부터 나온다.
1997년 대선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이 정권교체에 성공한 이후 새 피 수혈을 위해 운동권 출신을 대거 발탁했다. 정부여당을 견제하기에는 운동권 출신이 적격이라는 판단에 이들을 등용했다.
2000년 16대 총선에서 당시 386세대의 대표주자라고 하는 고려대 총학생회장 출신의 이인영·오영식, 연세대·한양대 총학생회장 출신인 우상호·임종석 등이 새천년민주당에 입당함으로써 386의 현실정치 참여가 시작됐다.
386이 486으로 바뀌면서 당 핵심요직을 맡는 등 무시할 수 없는 한 축의 정치세력으로 성장해 왔다. 국회의원뿐만 아니라 광역·기초단체장, 지방의원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네트워크까지 형성해 왔다.
세대적·이념적 카테고리로서 '486'을 하나로 묶어주는 정치·사상적 중심은 '반독재 민주화(PD·민중민주파)'와 '조국통일'(NL·민족해방)였다.
◇세대교체 주체 아닌 대상...계파 싸움의 당사자
하지만 10년 동안 집권 여당으로 지내면서 486의 창끝은 무뎌졌다. 기득권화 되면서 '투쟁'과 '열정'은 옅어졌다.
2000년 중반부터는 DJ와 노무현이 사라지면서 486 정치는 당내 이해찬, 김근태, 정세균, 신계륜, 김부겸 등 운동권 선후배에 치여 '하청정치', '계파·계보 정치'에 매몰되기 시작했다.
결국 2013년 민주통합당 내 486세대 정치인 모임인 '진보행동'이 공식해체를 선언하면서 위기가 찾아왔다. '486정치'의 실패를 선언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모임을 이끌었던 우상호 의원은 당시 "기존의 정치문법을 배웠고 기존의 관행을 혁파하는 데 주저했다"며 "더 이상 486이라는 인연으로 모임을 만들지 않겠다"고 말했다.
당 안팎에서는 동교동계, 친노(친노무현)계의 전위대인 이들이 정파 이익에 따라 좌충우돌 하면서 당내 분열의 핵으로 작용했다는 비판이 끊이질 않는다. 선거 때가 되면 후보단일화, 합종연횡과 같은 정치공학을 앞세운 것은 항상 거론되는 문제점이었다.
기성정치에 편승해 후배를 양성하지 못하고 혜택만 누렸다거나 스스로 계파가 되어버렸다는 점, 당내 역할과 존재감이 미미했다는 점 등도 지적된다. 복지와 경제 등 이들이 추구하는 분야에서의 정책 전문가도 찾아보기 힘들다.
지난 2월 세대교체론을 내세우고 새정치연합 당 대표 후보로 나선 이인영 의원이 완패하면서 당내 486세대들의 한계를 다시 한번 확인했다.
보좌관들의 모임인 새정치민주연합보좌진협의회(민보협) 관계자는 "486세대는 세대교체의 주체가 아니라 세대교체의 대상이 아니냐"고 말했다. 이어 "486정치인들이 김대중 전 대통령의 배려로 쉽게 뱃지를 달았고 쉽게 기성 주류세력에 편승했다"고 지적했다.
◇정책 비전, 차별화 모색해야
전문가들은 486세대가 정책적인 비전을 제시하며 기존 정치와 차별화를 시도하는 등 새로운 활로를 모색해야 한다고 말한다. 시대는 빠르게 변화하는데 486세대는 과거 운동권 시절에서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신율 명지대 교수는 "486세대는 이분법적 사고에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과거의 프레임틀에 갇혀있다"며 "민주화시대에서 정보화시대로 넘어왔는데 이들은 고인물이 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또 "운동권 조직이 오히려 권위의식이 더 강하다"면서 "권위주의에서 탈피하고 486세대가 자기 역할을 이어줄 수 있는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는 정치 세력을 만들어내야하는데 그렇게 하고 있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야당의 취약한 부분으로 꼽히는 경제 분야를 서민 뿐 아니라 중산층까지 포용하는 정책으로 계속 연구하고 당의 핵심인 노동 분야에 집중해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조언도 이어진다.
박상철 경기대 교수는 "이들 세대도 이제 친노나 호남이 아닌 정책쇄신의 하나의 축으로 성장할 필요성을 느낄 것"이라고 말했다.
위기의 야당, 분열과 통합 60년 역사
올해로 창립 60년 주년을 맞는 야당의 역사는 분열과 통합으로 점철돼있다. 야권 개편과 정권 교체라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실질적으로 정권을 획득한 세월은 단 10년에 불과하다.
◇1987년 동교동-상도동계 분열... 평화민주당 창당
현재 제1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의 뿌리는 1987년 탄생한 평화민주당(평민당)이다. 그해 상도동계의 통일민주당이 YS(김영삼)을 대통령 후보로 추대하자 동교동계가 DJ(김대중)을 대선후보로 추대하면서 평화민주당을 창당했다. DJ는 그해 대선에서 노태우 전 대통령(민정당), YS(통일민주당)에어 3위에 그쳤다.
대권 도전에 실패한 YS의 통일민주당은 1990년 JP(김종필)의 신민주공화당과 여당인 민주정의당과 3당 합당해 민주자유당을 만들었다. 이에 DJ는 재야 운동가를 영입해 1991년 4월 ‘신민주연합당’으로 야권을 재편성했다. 3당 합당에 반대해 통일민주당을 나온 ‘꼬마 민주당’과 그해 9월 합당하며 ‘민주당’을 탄생시켰다. 이로써 여당인 민자당과 야당인 민주당 체제가 된다.
1992년 민주당은 DJ를 대선후보로 내세웠지만 YS에게 패했다. 낙선한 DJ는 ‘정계은퇴’를 선언하고 민주당은 이기택 체제로 돌입한다. 이기택 대표는 지방선거에서 동교동계와 공천문제로 충돌하면서 갈등을 겪었다.
이런 상황에서 동계동계의 요청을 받은 DJ는 정계에 복귀한다. DJ는 1995년 9월 ‘새정치국민회의’를 창당했다. 이때 동교동계 인사들이 집단 탈당해 새정치 국민회의로 넘어가면서 민주당은 제2야당으로 전락한다. 소수가 된 이기택 대표와 노무현 전 대통령 등 잔류 인사는 그해 12월 개혁신당과 통합해 통합민주당을 창당했다. 1996년 15대 총선에서 새정치국민회의는 제1야당이 됐다. 통합민주당은 또다시 나눠졌다. 이기택 조순 등은 1997년 민자당과 합당해 신한국당을 만들었다. 노무현 등 통합민주당 잔류파는 국민통합추진회의(통추)를 만든 뒤 1997년 대선 국면에서 DJ와 손을 잡았다.
◇2002년 대선 노무현 승리... 열린우리당 창당
1997년 DJ는 자민련을 창당한 JP(김종필)와 DJP 연대로 대선을 승리했다. 그러나 새정치국민회의로 16대 총선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고 판단한 DJ는 재야 세력 일부와 학생운동권 세력을 영입해 2000년 1월 ‘새천년 민주당’을 창당했다. 그리고 2002년 국민경선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이 새천년 민주당의 대선 후보가 됐다. 2002년 대선에서 노무현은 이회창을 누르고 승리했다. 같은 기간 DJ는 아들들의 비리연루와 각종 게이트 의혹으로 탈당을 선언했다.
2003년 새천년민주당과 한나라당 탈당파, 유시민계, 시민사회세력이 손을 잡고 ‘열린우리당’을 창당했다. 창당을 주도한 천신정 (천정배, 신기남, 정동영)과 한나라당 개혁파인 이우재, 이부영 김부겸, 안영근, 김영춘 등이 열린우리당에 동참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당내 기득권 세력의 저항이 만만치 않자 새천년민주당을 탈당해 열린우리당에 합류했다. ‘구민주계’만이 새천년민주당에 남았다.
‘뿔난’ 새천년민주당은 노 전 대통령이 2004년 총선 직전에 열린우리당을 지지한 것이 ‘선거 중립 위반’이라면 당시 한나라당과 대통령 탄핵 소추안을 발의했다. 그러나 오히려 국민 여론에 역풍을 맞아 새천년민주당은 2004년 총선 민주노동당에게 밀려 9석짜리 ‘미니당’으로 전락했다. 2005년에는 민주당으로 개명했다.
◇또 한 번 이합집산.... 대선 패배 뒤 안철수와 결합
‘지역주의 타파, 전국정당화’를 목표로 삼은 열린우리당은 오래가지 못했다. 초선 108명이 서로 다른 의견을 내면서 ‘108번뇌’라고 불릴 정도로 당내 내홍이 심했다. 2006년 지방선거 참패 하자 김한길 등 중도 개혁을 표방하는 인사들이 탈당해 민주당 탈당파와 손학규 세력과 함께 2007년 8월 대통합민주신당을 창당했다. 이어 열린우리당과 합당해 제1야당이 된다.
대통합민주신당은 2007년 정동영 전 의원을 대선 후보로 내세웠지만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에게 참패한다. 야당이 된 대통합민주신당은 2008년 잔류 민주당을 흡수해 통합 민주당이 됐다. 18대 총선에서 패하자 ‘도로’ 민주당이란 이름으로 돌아갔다.
민주당은 미국산 쇠고기 파동과 노 전 대통령 서거로 2010년 지방선거에서 완승한다. 2011년 당 밖의 친노와 시민사회세력, 한국노총과 구성된 ‘혁신과 통합’을 손잡고 민주통합당을 만들었다. 민주통합당은 2012년 19대 총선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이끈 새누리당에 고배를 마셨다. 총선 패배에도 불구하고 '친노계'가 주류로 급부상하며 문재인 대표를 대선 후보로 선출했지만 정권 교체에는 실패했다. 대선에서 패한 민주통합당은 2013년 5월 다시 ‘민주당’으로 돌아갔다. 이후 안철수 신당인 새정치연합과 손을 잡아 ‘새정치민주연합’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