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인신매매 방지 의정서 비준동의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음에도 '인신매매법'은 19대 국회에서 처리되기 어려울 전망이다. 성별이나 혼인여부, 임신, 용모로 인한 차별을 법으로 금지하는 법안 처리도 불발됐다.
국회 여성가족위원회는 16일 법안심사소위원회를 열고 새정치민주연합 남인순·김춘진 의원이 각각 대표발의한 '인신매매등에 의한 피해자보호에 관한 법률안'과 '인신매매방지 및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안'을 심의했지만 보류됐다.
두 제정안은 UN 인신매매방지의정서 비준을 위한 국내 이행입법조치의 일환으로 2013년 발의됐으며, 여성이나 아동 등의 인신매매 피해의 예방과 보호를 강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2013년 형법에 인신매매죄가 신설됐지만 실제 여성이나 미성년자를 납치해 유흥업소 등에 매매하거나 노동력 착취를 하는 경우 범죄목적 입증이 어려워 처벌이 안 돼 유명무실하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이 법안은 그간 3차례 법안소위에 오르고 공청회까지 거쳤으나 여성가족부는 '범죄피해자 보호법'과 중복되고 법무부 등과의 협의가 어렵다는 이유로 시종일관 신중검토 의견을 피력해왔다.
이날 법안소위에 출석한 권용현 여가부 차관은 "비슷한 취지로 세 번째 말씀드리는 것 같아 송구스럽다. 여가부가 독자적으로 결정하기 어려운 문제"라며 "인신매매의 정의 구성부터 범죄피해자 기본법이 존재하는데 별도로 인신매매법을 만들 것이냐의 문제까지 다른 입장을 지닌 부처가 있다. 제정안의 취지는 깊이 공감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에 이 법안을 대표발의한 남인순 의원은 "이주노동자와 강제노동 목적으로 인신매매돼 입국하는 여성들 등 문제가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고 국제적으로 인신매매 피해자에 대한 보호를 제도화하는 게 흐름인데 몇 년째 법무부에 제대로 대응도 하지 못해 유감"이라고 밝혔다.
남 의원은 "범죄피해자보호법과 인신매매보호법 피해자 개념이 다르다. 법무부에서는 법적 판결이 난 이후에야 국가가 개입하는 것인데, 인신매매 피해자는 성격상 식별될 때부터 보호 지원이 들어가지 않으면 안 된다"며 "법무부가 모르면 설득을 해야지 여성과 아동 보호를 해야 할 주무부처인 여가부가 인신매매 식별을 법무부에서 한다고 이것까지 법무부 소관이라고 의견을 내는 건 말도 안 된다"고 지적했다.
남 의원이 "여가부는 이 법안에 대해 대안을 제시한 적도 한 번도 없다"고 질타하자 권 차관은 "현재의 성매매방지법 중 인신매매방지 의정서 취지에 못 미치는 것이 무엇인지 찾고 정부입법 발의는 검토해보겠다"고 밝혔다.
여가부는 이날 새정치민주연합 유승희·김상희 의원이 각각 대표발의한 '성차별·성희롱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안'에도 사실상 반대 의견을 냈다.
이 법안은 △성차별의 인정 범위를 '국가인권위원회법'의 구제영역(고용, 교육 등)까지 확대하고 △성희롱의 인정 범위를 구체화·확대하고 △피해자 불이익 조치 금지 및 처벌 규정 도입 △여가부 장관의 시정명령 제도 도입 등의 내용을 골자로 한다.
그러나 여가부는 이 법안의 기본 골격 자체를 수용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권 차관은 "인권위법과 남녀고용평등법 개정이 동시에 필요한 부분이 있어 축조심사를 이곳에서 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밝혔다.
이에 남 의원은 "이 법안 공청회를 한 지 1년 6개월이 지났는데 19대 말에 와서 다른 틀의 입법을 얘기하는 것은 의원발의를 무시했다는 얘기밖에 안 된다"며 "이 법안과 관련해 어떠한 검토와 용역을 했나"라고 질타했다.
한편 이날 성매매 '대상 아동·청소년'을 ‘피해자 아동·청소년'으로 변경하고 이들에게 체계적인 상담·지원·보호를 제공하는 내용의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도 보류됐다. 자발적으로 성매매에 유입된 아동과 청소년들을 모두 피해자에 포함하면 성매매가 범죄가 아니라는 왜곡된 인식을 줄 수 있다고 여가부가 반대 의견을 냈기 때문이다.
권 차관은 "실제 성매매에 유입된 아동·청소년'에 대한 수사과정에서 성인 피해자처럼 수사하지 않고 보호될 수 있도록 가이드라인 등을 보강하겠다"고 밝혔다.
이날 법안소위에서는 청소년의 정보제공 동의 없이도 학교 밖 청소년의 정보를 학교 밖 청소년 지원센터에 제공할 수 있도록 하는 '학교 밖 청소년 지원에 관한 일부개정법률안'도 불발됐다.
여당은 청소년의 경우 개인정보보호가 일부 훼손되더라도 기관에서 이들의 정보를 갖고 있는 것이 잠재적 학교 밖 청소년 보호에 도움이 된다고 주장했으나 야당에서는 청소년의 자기결정권이 존중돼야 하며 청소년들이 학교에 있을 때 동의 하에 정보를 수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맞서 법안이 통과되지 못했다.
한편 일본군 위안부 기림일을 법정 기념일로 정하는 '일제하 일본군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생활안정지원 및 기념사업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은 외교적 마찰을 우려하는 여당의 반대로 법안소위 안건에 상정되지 못했다.
여가위 야당 간사인 남인순 의원은 "지난 6월 국회에서도 한일 정상간 논의가 있을 것 같다고 해서 미뤘는데 회담도 끝났고 실무협의가 있었지만 일본측의 공식 사죄는 없었다"며 "올해 연말까지 한일간 위안부 협상 진전이 있을지도 불투명하고 그것과 별개로 위안부 기림일을 국내적으로 지정하는 것은 여가위가 관여해야 할 일"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