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못지않게 한반도 안보에 중요한 나라가 중국과 일본, 러시아다. 한반도 주변 4강이자 6자회담 수석대표국이다. 자연스레 미국 못지않게 이들 나라에 거는 대사의 중요성도 크다. 북핵은 물론 안보·경제(중국), 위안부문제(일본), 경제협력(러시아) 등 현안도 많다. 대통령의 최측근이 기용되는 이유다. 대사직을 수행하기 까다로워 대사들의 '무덤'으로 통하는 주중대사를 거친 후엔 외교안보 전문가로 활약하는 경우가 많다. 정무적 감각이 중시되는 주일대사는 과거 거물급 실세가 주로 올랐으며, 정보원 업무와 연관성이 강한 것이 특징이다.
◇주중대사=1992년 8월 중국과 수교를 맺은 다음달 노재원 초대 주중대사가 부임했다. 외무부 차관과 주 베이징 무역대표부 대표를 지낸 노 대사는 한중관계가 생소했던 시기에 무난히 업무를 수행했단 평을 들었다.
정종욱 제3대 주중대사는 학자 출신으로서 대사직을 맡은 뒤 외교안보전문가로 입지를 굳힌 케이스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선거운동자문을 맡은 인연으로 1993년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에 발탁된 그는 외무부 본부대사를 거쳐 주중대사에 임명됐다. 그는 이후 최고의 '중국통'이란 평을 받으며 2014년 박근혜정부에서 통일준비위원회 부위원장에 올랐다. 정 전 대사는 특히 1997년 황장엽 망명 사건 당시 중국 외교부 부부장을 상대로 끈질긴 협상을 벌여 황씨의 한국행을 성사시킨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하중 제6대 주중대사는 2001년 10월부터 2008년 3월까지 6년4개월간 재임, 직업외교관 출신 '최장수 대사' 타이틀을 지니고 있다. 서울대 중문과를 졸업한 뒤 1973년 외무고시에 합격한 그는 외교통상부 주중국대사관 공사, 아태국장, 청와대 외교안보수석 등을 거쳐 주중대사에 올랐다.
그는 뛰어난 중국어 실력과 막강한 중국정부 인맥 구축을 토대로 중국 전문성을 인정받아 2008년 이명박정부에서 이례적으로 통일부 장관에 발탁되기도 했다. 당시 청와대는 '미국통'으로 치우친 외교안보라인의 균형을 고려해 김 전 대사를 기용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김대중정부에서 '햇볕정책'에 깊이 관여했던 그는 이명박정부의 대북강경파들의 영향력에 눌려 소신을 펴보지 못하다가 장관직에서 1년여만에 물러났다.
박근혜정부 첫 주중대사로 발탁된 권영세 전 대사는 검사 출신 정치인으로 대선기간 종합상황실장을 맡은 공을 인정받아 대사자리를 꿰찬 케이스다. 그는 이후 청와대 비서실장, 통일부 장관 발탁설, 총선출마설이 끊이지 않았으나 정치권에서 큰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다.
◇주일대사=1965년 부임한 김동조 초대 주일대사는 외교관 출신으로 이후 주미대사, 제16대 외무장관 등을 지냈다. 그는 특히 1951년부터 14년간 진행된 한일회담 교섭과정에서 수석대표로 교섭을 진두지휘하고, 박정희정부 때는 베트남전 파병 등 막후에서 대미외교를 주도하기도 했다.
제3대 주일대사인 이후락 전 대사는 군 출신으로 1963년부터 6년 가까이 박정희 전 대통령의 비서실장을 맡다가 1969년 3선 개헌 논란 속에 주일대사에 발탁됐다. 1년여간 대사직을 맡은 후 그는 1970년 말 중앙정보부장을 맡아 평양을 방문, 7·4남북공동성명을 주도하며 승승장구했다.
제8대 주일대사인 이규호 전 대사는 학자 출신으로 국토통일부 장관, 문교부 장관, 대통령 비서실장 등을 거쳐 주일대사에 올랐다. 그는 말년에 언어철학 책 집필에 투신했다.
김대중 정부는 2001년 민주당 상임고문을 지낸 '여권 실세'이자 언론인 출신인 조세형 전 의원을 주일대사로 발탁했다. 조 전 대사는 노무현 대통령 취임 이후에도 유임됐으나 2004년 1월 일본의 신사참배 당시 골프를 친 것으로 드러나 구설에 올랐다. 그는 대사직에서 물러난 후 곧바로 열린우리당에 입당, 선대위 상임고문을 맡았다.
노무현정부 말 주일대사를 지낸 유명환 전 대사는 35년 직업외교관 출신으로 2008년 이명박정부 출범 후 첫 외교장관으로 발탁됐다. 이명박정부의 첫 대사로는 권철현 전 의원이 기용됐다. 그는 친이계 인사이지만 일본 쓰꾸바대 대학원에서 도시사회학 박사학위를 받고 현재 한일의원연맹 부회장 겸 간사를 맡은 '일본통'으로 실력을 인정받았다.
2013년 6월 박근혜정부 첫 주일대사를 지난 이병기 전 대사는 2015년 비서실장에 오른 후 이후락 전 대사와 '닮은꼴'이란 평을 받았다. 이 전 대사는 주일대사와 국가정보원장, 비서실장을 맡으며 승승장구했다.
◇주러대사=초대 러시아 대사는 외교가의 산증으로 불리는 공로명 전 대사다. 그의 주일대사 시절에는 일본군 위안부의 동원에 군(軍)이 직간접적으로 관여한 사실을 인정하고 사과한 고노 요헤이 관방장관의 '고노 담화'가 나왔다. 또 외교장관 시절에는 아시아 침략 사실에 대해 사죄한 무라야마 도미이치 총리의 '무라야마 담화'가 발표됐다. 한일 간 중요한 역사적 발자취에는 공 대사의 흔적이 있다.
러시아 대사의 경우 주중, 주일 대사를 거친 이들도 있다. 공 대사와 제3대 김석규 대사가 주일 대사를 거쳤고, 제2대 홍순영, 제9대 이규형 대사가 주중대사를 역임한 바 있다. 공 대사는 이번 대선에서 전 외무부 장관 등 전직 외교관 97명과 함께 홍준표 후보 지지를 선언하기도 했다.
이들 중에 눈에 띄는 인물은 이재춘 전 러시아 대사다. 이 대사는 2001년 김대중 정부 때 러시아 대사 당시 부임 2년을 채우지 못하고 자리를 내놔야 했다. 이회창 한나라당(한국당 전신) 총재의 방러 때 '과잉 의전' 논란이 화근이었다. 이 대사는 당시 공관원 40명 가운데 25명을 동원해 이 총재 일행을 챙겼고, 이 총재 수행원들의 단란주점 안내에까지 참사관을 투입해 교민들로부터 비난을 산 것으로 알려졌다.
이밖에도 러시아의 정통한 외교관으로 꼽히는 위성락 전 대사의 경우 주미대사 물망에 오르고, 박노벽 현 러시아 대사는 한미원자력협정의 지난한 싸움을 우리 정부가 유리한 쪽으로 결과물을 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