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이제 나도 돈 벌잖아" 명절에 돈봉투 '스윽'...어른 다 됐다

박효주 기자
2026.09.22 07:07
취업이 명절 용돈의 기준이 되고 있다. 학생이나 취업준비생일 때까지 용돈을 '받는 사람'이었다가 취업해 월급을 받기 시작하면서 부모·조부모에게 용돈을 '주는 사람'으로 역할이 뒤바뀌는 것이다. 실제 조사에서도 '취업'은 명절 용돈을 받는 사람에서 주는 사람으로 바뀌는 가장 뚜렷한 기준으로 나타났다. 사진은 기사와 무관함.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취업했으니까 용돈 드리는 게 낫겠지?"

취업 후 첫 명절을 앞두고 외할머니에게 용돈을 드려야 할지 고민하던 글쓴이는 "취업을 늦게 한 편이고 명절 때밖에 찾아뵙지 못한다"며 이렇게 물었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선 비슷한 고민이 심심치 않게 등장한다. 한 직장인은 취업 후 첫 명절을 맞아 부모와 친·외할머니에게 각각 20만원씩, 모두 80만원을 드리는 게 적당한지 물었다. 또 다른 이는 3년간의 취업 준비 끝에 입사했다며 부모에게 각각 75만원씩 드리고 싶다면서도 학자금 대출과 결혼자금 마련 때문에 망설여진다고 토로했다.

취업은 명절 용돈에서도 일종의 경계선이 되는 모습이다. 학생이나 취업준비생일 때까지 용돈을 '받는 사람'이었다가 취업해 월급을 받기 시작하면서 부모·조부모에게 용돈을 '주는 사람'으로 역할이 뒤바뀌는 것이다.

실제 조사에서도 '취업'은 명절 용돈을 받는 사람에서 주는 사람으로 바뀌는 가장 뚜렷한 기준으로 나타났다.

최근 유진그룹이 유진기업·유진투자증권·동양 등 계열사 임직원 1008명을 대상으로 올해 추석 명절 계획을 조사한 결과, 부모에게 명절 용돈을 드리기 시작하는 시점으로 '취업 이후'를 꼽은 응답자가 65.6%로 가장 많았다. '결혼한 이후'는 15.8%, '성인이 된 이후' 8.7%, '집에서 독립한 이후'는 7.1%에 그쳤다.

반대로 어른에게 용돈을 받아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시기는 '학생 신분까지'가 49.0%로 가장 많았다. '성인이 되기 전까지'가 22.2%, '취업하기 전까지'가 20.2%로 뒤를 이었다.

취업 여부에 따라 실제 명절 용돈을 주고받는 입장이 달라진다는 조사도 있다.

2024년 구인·구직 플랫폼 알바천국이 성인 남녀 3441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에서 20대의 83.2%는 세뱃돈이나 명절 용돈을 주로 '받는 편'이라고 답했다.

같은 20대라도 처지에 따라 차이가 컸다. 대학생은 92.4%가 용돈을 받는 편이라고 답했고 취업준비생은 68.2%였다. 직장인은 40.3%로 절반 아래로 떨어졌다. 나이는 비슷해도 취업 여부에 따라 명절 용돈을 주고받는 입장이 달라지는 셈이다.

이는 '어른이 됐다'고 판단하는 사회적 기준과도 맞닿아 있다.

한국리서치가 지난해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성인 자녀의 독립에 대한 인식을 조사한 결과, 자녀가 독립하기 적절한 시점은 '취업했을 때'라는 응답이 36%로 가장 많았다. '경제적으로 준비가 됐을 때'가 20%, '대학교를 졸업했을 때' 18% 등이 뒤를 이었다.

특히 부모로부터 독립했는지를 판단하는 가장 큰 기준으로는 '경제적 독립'이 65%를 차지했다. 주거 독립은 21%, 정서적 독립은 14%였다. 경제적 독립을 하기 적절한 시점을 별도로 묻자 '취업했을 때'가 47%로 가장 많았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취업이 이처럼 경제적 책임을 지는 기준으로 자리 잡은 배경 중 하나로 부모 세대의 경제적 여건이 과거보다 나아진 점을 꼽았다.

이 교수는 "과거에는 형편이 어려웠기 때문에 자녀가 성인이 되면 바로 책임감이 주어졌지만 지금은 부모 세대가 경제적으로 여유가 생기면서 자녀에게 책임을 지우는 것도 여유 있게 한다"고 말했다.

부모가 성인이 된 자녀를 취업할 때까지 지원할 여력이 생기면서 경제적 책임을 요구하는 시점도 달라졌다는 설명이다. 법적으로 성인이 됐거나 부모와 따로 사는 것보다 실제 돈벌이를 시작하는 '취업'이 가족 안에서 경제적 역할이 달라지는 계기가 된 셈이다.

취업 후 첫 명절에 부모에게 용돈을 드리는 것 역시 가족 안에서 자녀의 경제적 역할이 달라졌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행위로 볼 수 있다.

이 교수는 "부모의 가장 큰 고민은 자녀가 취업해서 자기 돈벌이를 하고 경제적으로 자립하는 것"이라며 "취직해서 첫 명절에 뭔가를 드린다는 것 자체가 부모에게는 기분 좋은 일"이라고 말했다.

<저작권자 © ‘돈이 보이는 리얼타임 뉴스’ 머니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