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눈이 향한 곳, 전부 다 찍혔다...성관계까지 '몰카', AI 안경 부작용

김소영 기자
2026.09.26 07:45
AI 글라스 시장이 빠르게 확대되면서 부작용이 잇따르고 있다. 기사 이해를 돕기 위한 참고 사진. /사진=클립아트코리아

인공지능(AI)과 카메라가 탑재된 스마트안경, 'AI 글라스' 시장이 빠르게 확대되면서 시험장 부정행위와 불법 촬영 등 관련 부작용도 잇따르고 있다. 그러나 교육은 물론 수사 현장에서조차 AI 글라스 사용을 규제할 일관된 지침이 없어 제도가 기술 발전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시장조사업체 옴디아에 따르면 지난해 세계 AI 글라스 출하량은 870만대로 전년 대비 322% 증가했다. 레이밴·오클리 등 안경 브랜드와 손잡고 패션성을 부각한 AI 글라스를 출시한 메타는 이 중 740만대를 출하해 85.2% 점유율로 시장을 주도했다. 옴디아는 AI 글라스 출하량이 올해 1500만대로 뛰고, 오는 2030년엔 3500만대까지 늘어날 것으로 내다봤다.

SK텔레콤·KT·LG유플러스 등 이동통신 3사는 지난 7월부터 메타의 '레이밴 메타'를 일부 대리점과 온라인몰에서 판매하고 있다. 삼성전자도 구글·퀄컴과 공동 개발 중인 차세대 AI 글라스를 올해 안에 내놓을 전망이다.

국가시험 이어 텝스·토익서도 AI 글라스 부정행위 적발
'구글 I/O 2026'에서 공개된 AI 글라스 2종 이미지. /사진=머니투데이DB

이처럼 AI 글라스 유입이 개인 해외직구를 넘어 기업의 국내 유통망 공급으로 확대된 가운데 일반 안경과 구분이 어렵다는 AI 글라스 특성을 악용해 시험에서 부정행위를 저지르거나 타인을 무단 촬영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지난 4월 서울대가 주관한 텝스(TEPS) 시험에서 생성형 AI 기능이 탑재된 스마트안경을 착용한 20대 수험생이 적발됐다. 해당 응시자가 시험 도중 안경을 여러 차례 만지는 점을 수상히 여긴 감독관이 종료 후 안경을 확인한 결과 AI 글라스로 드러났다. 이 수험생은 4년간 텝스에 응시할 수 없게 됐다.

다만 서울대 텝스관리위원회는 해당 응시자를 수사기관에 고발하진 않았다. 현행 부정행위 기준에 스마트안경이 포함돼 있지 않아 유사한 항목인 '전자·통신기기를 이용해 답을 주고받는 행위'를 적용, 최고 수위 징계인 4년간 응시제한 조치를 결정했다는 게 텝스관리위 설명이다.

기사 이해를 돕기 위한 참고 사진. /사진=클립아트코리아

국가기술자격 시험에서도 스마트안경을 이용한 부정행위가 잇따랐다. 지난 5~6월 치러진 소방설비기사와 정보처리기사, 전기산업기사, 가스기능사 등 시험에서 AI 글라스를 착용·사용하다가 무효나 부정행위로 처리된 사례는 총 5건이다. 이 가운데 소방설비기사 시험에서 적발된 40대 수험생은 국가기술자격법 위반 혐의로 약식기소 돼 국내에서 처음으로 사법처리를 받게 됐다.

토익(TOEIC) 시험에서도 5월 2명, 6월 1명이 연달아 적발됐다. 한 응시자는 AI 글라스를 착용한 채 시험지를 촬영해 외부와 통신하는 수법으로 부정행위를 저지르다 현장에서 덜미를 잡혔다. 지난해 한국어능력시험(TOPIK)에서도 스마트안경을 이용한 부정행위자 3명이 적발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불법 촬영 범죄도 발생했다. 지난 7월 상대방 동의 없이 성관계 장면을 AI 글라스로 찍은 남성은 현재 경찰에 입건돼 조사받고 있다. 항공기 안에서 한 남성 승객이 스마트안경으로 승무원의 특정 신체 부위를 몰래 촬영하는 일도 있었다. 하이브 소속 걸그룹 아일릿 매니저는 공항에 따라온 팬들을 식별할 목적으로 레이밴 메타 AI 글라스를 착용한 사실이 알려져 논란이 됐다.

스마트안경을 이용한 불법 촬영은 해외에서도 심각한 문제로 떠올랐다. 영국에선 AI 글라스로 몰래 찍은 여성의 영상을 SNS(소셜미디어)에 올려 4만회 넘는 조회수를 얻은 남성이 영상 삭제를 대가로 피해 여성에게 금전을 요구하는 일이 있었다. 미국과 호주에서도 호감 있는 척 접근한 여성들의 얼굴과 연락처를 AI 글라스를 통해 온라인으로 송출하면서 피해자들이 전화·메시지 폭탄에 시달렸다.

"AI 글라스 반입 시 부정행위 간주"…제조사 고발하기도
기사 이해를 돕기 위한 참고 사진. /사진=게티이미지뱅크

AI 글라스를 악용하는 사례가 늘자 각 기관은 대응책 마련에 나섰다.

고용노동부는 시험장에서 AI 글라스를 소지·사용하면 부정행위로 처리하도록 국가기술자격법 시행규칙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현행 시행규칙은 휴대전화와 디지털카메라, 카메라가 부착된 펜 등 전자·통신기기에 대해서만 사용을 금지하고 있을 뿐, 스마트안경은 명시돼 있지 않다. 노동부는 이 시행규칙을 개정해 스마트안경에 대한 규제를 보다 명확히 할 방침이다.

교육부는 전국 시도교육청에 AI 글라스를 시험장 반입 금지 물품에 포함하는 내용 공문을 보냈다. 특히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에서 AI 글라스를 이용해 부정행위를 할 경우 최소 2년간 수능 응시 자격을 박탈하는 등 강도 높은 제재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스마트안경 사용은 고의성·적극성에 있어 스마트폰 단순 소지 이상의 행위로 해석될 가능성이 크다는 취지다.

해외에서도 스마트안경 사용을 규제하는 개별 조치들이 쏟아지고 있다. 중국에선 대입 시험을 앞두고 응시자 전원의 안경 보안 검사를 의무화했고 미국 필라델피아 법원은 증인·배심원에 대한 불법 촬영과 협박을 막기 위해 법정 내 AI 글라스 반입을 전면 차단했다. 영국 일부 음식점·극장·공연장 등은 스마트안경 사용을 금지하고 있으며, 독일 한 시민단체는 AI 글라스로 인해 불법 촬영에 노출될 위험이 커졌다며 제조사와 유통사를 형사 고발했다.

뿔테 같은 AI 글라스, 촬영 표시는 무용지물…탐지 한계
기사 이해를 돕기 위한 참고 사진.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문제는 스마트안경이 일반 안경과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로 정교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출시되는 AI 글라스는 얇은 다리와 50g 안팎 무게로 일반 뿔테 안경과 외형이 비슷하다.

AI 글라스가 촬영 중인 사실을 알리는 LED 표시등을 스티커로 가리거나 아예 불이 켜지지 않도록 개조하는 등 우회 방법을 온라인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점도 문제다. 이에 따라 육안으로 스마트안경 착용 여부를 가리거나 금속탐지기를 운영하는 기존 검색 방식만으로는 탐지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호주 매쿼리대학교의 사이버보안허브 책임자인 달리 카파르 교수는 "아직 많은 국가에서 스마트안경 관련 법이 아직 확립되지 않는 등 제도가 기술 발전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며 "AI 글라스는 마치 스토커를 얼굴에 쓰고 있는 것과 같다. 정부 차원에서 사용을 규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카파르 교수는 메타 등 스마트안경 제조업체가 AI 글라스를 단순 웨어러블 카메라로 광고하는 등 문제의 심각성을 축소하고 있다고도 지적했다. 그는 "촬영 표시등은 허술한 안전장치일 뿐"이라며 더 강력한 안전장치를 기본 기능으로 탑재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메타는 최근 촬영 표시등을 물리적으로 훼손·변조한 수천 대의 AI 글라스를 확인한 뒤 해당 기기들의 카메라 기능을 영구적으로 비활성화 조치했다. 또 자사 플랫폼인 인스타그램에서 AI 글라스를 이용한 불법 촬영 영상을 삭제하고, 표시등 위변조 기술을 광고하는 계정을 차단한다는 방침이다. 다음달에는 카메라를 없앤 AI 글라스 '루나'를 출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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