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일이 안 풀려" 이때 2030이 찾는 건...'운테리어'에 지갑 연다

이은 기자
2026.09.29 07:00
지난 5월 28일 서울 양재동 aT센터에서 열린 2026 운세박람회에서 관람객들이 타로점을 보고 있다. /사진=뉴시스

"너는 30년 경력의 명리학 전문가야. 내 사주를 객관적으로 분석해줘."

30대 직장인 A씨는 일이 잘 풀리지 않거나 불안할 때마다 생성형 인공지능(AI) 앱을 열어 이렇게 묻는다. 생년월일과 태어난 시간, 지역을 넣어 만든 만세력을 첨부하고 SNS(소셜미디어)에서 찾은 장문의 사주 분석 명령어를 붙여넣은 뒤 결과를 받아본다.

더 궁금한 내용이 있을 때는 '지금 이렇게 선택해도 되는 걸까?' '요즘 일이 잘 안 풀리는데 운이 막혀 있는 걸까?'라고 묻기도 한다.

A씨는 "생각이 많아지는 늦은 밤이나 새벽에도 언제든지 물어볼 수 있고, 눈치 보지 않고 솔직하게 상담할 수 있어서 좋다"며 "결과를 무조건 믿는 건 아니다. 답답한 상황을 분석하고 생각을 정리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최근 20·30세대를 중심으로 사주와 타로 등 '운'을 일상에서 가볍게 소비하는 문화가 확산하고 있다. 생성형 AI로 사주를 보거나 운세 앱을 이용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좋은 기운을 준다는 장소를 찾아가거나 행운을 상징하는 소품을 구입하기도 한다. 막연히 행운을 기다리기보다 적극적으로 자신의 운을 관리하고 만들어간다는 이른바 '럭키 맥싱'(Lucky Maxing) 문화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모니터가 전국 만 13~69세 남녀 12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2026 점술 관련 인식 조사'에 따르면 '사주나 타로에 관심이 있다'는 응답은 10대가 71.5%로 가장 높았고, 20대 68%, 30대 67.5% 순으로 나타났다. 최근 1년 내 점술을 경험한 비율도 20대 70%, 30대 72%로 높은 수준을 보였다.

이러한 '운'에 대한 관심에 힘입어 지난 5월에는 국내 최초로 '운세 박람회'가 열리기도 했다. 첫날부터 500여명이 행사장을 찾아 대기 줄이 생겼고, 나흘간 약 1만3000명이 방문했다.

"좋은 기운 받자"…관악산·호텔 라운지 '우르르'

좋은 운을 얻기 위해 이른바 '개운(開運) 명당'을 직접 찾아가는 이들도 있다.

역술가 박성준이 지난 1월 tvN 예능 프로그램 '유 퀴즈 온 더 블럭'에 출연해 운이 트이는 장소로 관악산 연주대를 언급한 뒤 SNS와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관악산 방문 인증 게시물이 잇따랐다.

서울 용산구의 그랜드 하얏트 서울도 SNS에서 '화(火) 기운이 가득한 일복 명당'이라는 입소문을 타면서 '기운을 받기 위해 왔다'는 방문객들의 인증 사진과 영상이 올라왔다. 누리꾼들은 "다녀온 뒤 대기업과의 계약을 따냈다" "다녀와서 이직 면접이 두 개나 잡혔다" 등의 후기를 남겼다.

서울 종로구의 한 빌딩을 '출세빌딩'으로 소개한 영상도 26만회가 넘는 조회수를 기록했다. 한 누리꾼은 해당 영상에 "이 빌딩에 입주한 회사에 2년 다니면서 빚도 다 갚고 승진도 했다"는 후기를 남기기도 했다.

액막이 명태 걸고 달항아리 두고…'운테리어'까지
지난 5월 28일 서울 양재동 aT센터에서 열린 2026 운세박람회에서 관람객들이 십이지신 키링과 부적을 고르고 있다./사진=뉴시스

행운을 좇는 방식은 소비 영역으로도 확장되고 있다.

개인이나 가정에 닥치는 질병·고난·불행 등 액운을 막는다는 '액막이 명태', 재물운을 부른다는 해바라기 액자 등 행운을 상징하는 소품을 생활 공간에 두는 이른바 '운테리어'(운과 인테리어를 합친 말)도 등장했다.

방송인 겸 카이스트 AI 연구원인 허성범은 AI로 사주를 본 결과 오행 가운데 목(木)이 부족하다는 분석을 받고 이를 보완하기 위해 집안을 나무와 초록색 물건 등으로 꾸몄다고 방송을 통해 밝힌 바 있다.

최근 네일숍을 연 30대 여성 B씨도 휴대전화에 작은 거북이 장식을 달았다. B씨는 "개업 이후 행운을 기원하는 의미로 거북이 장식을 달아봤다"며 "가게를 찾는 손님에게도 작은 거북이를 선물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러한 관심은 실제 소비에서도 나타난다. 패션·생활용품 온라인 플랫폼 29CM에 따르면 9월1일부터 27일까지 '액막이 명태' 검색량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9배 이상 증가했다. 해당 검색어와 관련된 상품 거래액도 3배 이상 늘었고 '달항아리' 상품 거래액은 같은 기간 3.7배 이상 증가했다.

왜 MZ들은 다시 '운'을 찾을까
2030세대를 중심으로 생성형 인공지능(AI)와 운세 앱 등을 활용해 사주, 타로, 점성술 등 운세를 보는 문화가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사진=구글 제미나이(Gemini)

젊은 세대가 다시 '운'을 찾는 배경에는 미래에 대한 불안뿐 아니라 자기 자신을 이해하고 이를 놀이처럼 소비하려는 성향도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대학내일20대연구소가 Z세대를 중심으로 12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는 10·20세대의 43%가 자신의 성향을 파악하기 위해 운세를 본다고 답했다.

엠브레인 트렌드모니터 조사에서도 절반 이상의 20·30대가 점·사주·타로를 MBTI처럼 자신을 분석하는 콘텐츠의 연장선으로 바라봤으며, 친구들과 운세를 보는 것을 하나의 놀이문화로 받아들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SNS에서 공유되는 다양한 명령어를 이용해 AI로 사주 분석을 받아봤다는 20대 여성 C씨는 "맞는 것도 있고 안 맞는 것도 있지만, 어렴풋이 알고만 있던 내 모습을 자세하게 글로 풀어주니 누군가 내 캐릭터를 분석해주는 것 같아서 재미있다"고 말했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MZ세대가 불확실한 상황 속에서 놀이문화로 운세를 즐기고 있다"며 "무속인을 직접 찾아가고 신봉하던 전통적인 형태에서 AI의 등장으로 직접 자신의 미래를 점쳐보는 주체적인 형태로 바뀐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불안한 상황에서 사주를 보거나 재미있는 풍수지리 관련 소품을 구입하는 식으로 나름대로 대응하는 것은 오히려 긍정적으로 볼 수 있다"며 "과거처럼 무속신앙에 깊이 빠지지 않고 놀이 수준에서 소비하는 균형점을 찾게 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구 교수는 "운세의 인기는 최근 유행했던 MBTI(16가지로 나뉘는 성격 유형)의 유행과 유사하다"며 자신을 이해하고 타인과 대화를 나누기 위한 하나의 놀이 콘텐츠로 소비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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