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2017년은 지배구조 재편의 해로도 꼽힌다. 대통령 선거부터 '재벌 개혁'을 공약으로 강조한 만큼 상장사 지분요건 강화와 일감 몰아주기 제한 등이 화두로 떠올랐다.
새 정부 경제 정책은 증시에서 인적분할 및 지주회사 출범으로 이어졌다. 한국 증시의 고질적 약점으로 평가받던 지배구조 재편 작업은 기업 가치 재평가로 이어져 6년 만의 박스피 탈출에 한 몫 했다.
이 가운데 현대중공업그룹은 이색 사례로 꼽힌다. 현대중공업은 지난해 5월 지주사 현대로보틱스와 사업회사 현대중공업, 현대건설기계, 현대일렉트릭 체제로 재편했다.
통상 인적분할에 따른 기대감이 재상장 직전까지만 이어지는 다른 기업과 달리 이번 분할은 6개월여 만에 그룹 기업가치를 30% 넘게 끌어올렸다. 특히 주력 계열사인 현대중공업과 '맏형' 자리를 맞바꾼 지주회사현대로보틱스의 존재감이 두드러졌다.
◇로봇? 정유? 지주? 현대로보틱스는 어떤 회사인가=현대로보틱스는 지난해 4월 현대중공업에서 사업지주회사로 독립, 5월 코스피 시장에 상장했다. 사업지주회사는 계열사의 지분보유로 지배만 하는 순수 지주회사와 달리 독자적인 사업도 영위하는 형태의 지주사를 말한다.
현대로보틱스는 계열사를 통한 지분법 이익, 배당 수익과 더불어 현대중공업그룹의 로봇사업을 수익원으로 삼고 있다. 비상장 계열사 현대오일뱅크에서 나오는 정유 실적과 로봇 부문 자체 사업실적, 현대건설기계·현대일렉트릭 등 사업 회사 지분법 평가이익이 실적이 된다. 현대중공업은 자회사이지만 지분율 27.84%로 지분법 평가대상에서 제외됐다.
증권업계는 현대중공업그룹 인적분할 윤곽이 나왔을 때부터 현대로보틱스를 '톱픽(최우선추천주)'으로 꼽았다. 오랜 시간 저가수주 영향으로 불황을 겪고 있는 조선업(현대중공업)이나 매출규모가 적은 나머지 사업 자회사에 비해, 현대오일뱅크를 통한 안정적 수익창출이 매력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아울러 국내 증시의 고질적인 약점이던 지배구조를 개선했다는 점과 향후 4차 산업혁명시대를 맞은 로봇산업 성장성에서 가산점을 받았다.
지난해 5월 재상장 당시 현대로보틱스 시가총액은 4조6956억원. 현대중공업(10조2280억원)에 뒤졌지만 연말에는 6조2052억원으로 늘어 맏형으로 올라선 것도 지배구조의 강점과 성장성을 인정받은 덕이다.
다만 지나치게 현대오일뱅크에 의존하는 실적은 기업가치 상승의 걸림돌로 평가받는다. 현대로보틱스 분기보고서를 살펴보면 지난해 3분기 기준 정유 부문(현대오일뱅크) 매출은 7조3994억원, 영업이익은 4905억원이다. 현대로보틱스 매출의 85.9%가 정유 부문에서 나온다. 나머지는 자체 로봇사업과 계열사 2곳에서 각각 3~4%씩 담당했다.
지난해 3분기부터 사업 자회사 2곳의 지분법평가이익을 반영하기 시작했고 로봇 부문 매출이 646억원에서 3205억원으로 5배가량 증가했다. 그 결과 현대오일뱅크 매출비중이 전 분기 97.4%에서 80%대로 줄어들긴 했지만, 여저노히 지주회사라기보다는 사실상 정유회사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특히 지난해 정유·화학업계 호황과 경쟁 정유업체의 40%대 주가 상승을 고려하면 현대로보틱스 주가는 상대적으로 저평가를 받아 아쉬움을 남겼다.
이상우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정유주 주가상승에도 불구하고 현대로보틱스는 지주사라는 관점에서 할인을 받아 주가가 부진했다"며 "비상장사 가치추정과정이 달라 충분한 가치를 받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2017년 두 번의 유상증자 결정, 2018년은 지배구조 완성의 해=현대중공업그룹은 지난해 두 차례 유상증자를 결정했다. 7월 현대로보틱스가 사업회사와의 지분교환을 위한 1조7264억원대 유상증자를 진행했고, 12월 말에는 현대중공업이 무차입경영을 위해 1조2785억원원대 증자를 결정했다.
7월 유상증자는 성공적으로 마무리됐다. 유상증자 후 신주와 계열사 주식을 교환하는 방식으로 사업 3사에 대한 현대로보틱스 지분율은 24~28%까지 상승했다.
이후 증손자회사 현대미포조선이 보유한 현대일렉트릭과 현대건설기계 지분을 사들여 30%대 지분율을 확보했다. 지주회사로서 면모를 갖춘 셈이다. 지분 교환 이후 현대로보틱스 주가는 상장 후 최고가인 48만9000원까지 치솟았다.
반대로 지난달 26일 결정한 현대중공업 유상증자는 '충격'으로 작용했다. 현대중공업은 일감 절벽과 약달러 등 경영환경 악화에 대응하기 위해 1조2785억원대 구주주배정 유상증자를 결정했다. 우리사주조합에 20%를 우선 배정한 뒤, 기존 주주에게 우선권을 주고 청약 미달물량에 대해선 일반공모를 하는 방식이다.
지주회사인 현대로보틱스는 이번 유상증자에 120% 청약하기로 결정했다. 그룹 경영방침에 대한 책임 차원이자 현대중공업 지분율 감소를 막기 위해서다. 120% 전부 청약 받을 경우 새로 찍어내는 주식 1250만주 가운데 344만주를 추가로 확보하게 돼 지분율은 현재 27.84%에서 27.64%로 소폭 감소한다.
유상증자 결정 발표 이튿날 현대로보틱스와 당사자 현대중공업 주가는 급락세로 거래를 시작했다. 현대중공업은 조선업 불황과 빅 배스(Big Bath, 이후 실적 개선을 위해 적자를 미리 반영하는 것) 현실화, 주가 희석 전망에 하한가 근처까지 하락했고 현대로보틱스도 증자 참여 부담에 따라 10%대 약세로 개장을 맞았다.
이후 주가 향방을 가른 것은 현대오일뱅크 IPO(기업공개)가 부각되면서다. 현대중공업그룹은 유상증자 결정과 함께 올해 안으로 현대오일뱅크 상장방침을 공식화했다. 장외시장에서 8조원까지 평가받는 알짜 자회사의 상장으로 현대로보틱스에 들어오는 자금은 2조원에서 최대 3조원으로 추정된다.
IPO에 따른 현금 유동성 확보와 그를 바탕으로 한 지주체제 완성 기대감 반영에 따라 2017년 증시를 마감하는 지난달 28일, 현대로보틱스 주가는 5.69% 상승해 반등에 성공했다.
현대중공업 증자에 참여하는 비용도 최대 3444억원으로 지난해 3분기 말 기준 현대로보틱스의 보유현금(4327억원)을 고려하면 큰 부담은 아니라는 게 증권업계 평가다.
양지환 대신증권 연구원은 "4000억원대에 달하는 현대로보틱스의 현금성 자산과 현대오일뱅크 배당금 3000억원을 감안하면 유상증자 참여는 부담되지 않는 수준"이라고 밝혔다. 그는 "현대오일뱅크 상장으로 보유 지분에 대한 시가 평가가 이뤄지는 만큼 현대로보틱스의 가치가 재평가될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