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 태운다고 회사가 더 버나?"…자사주 소각의 '착시'

조철희 기자
2026.09.28 16:20

[자사주 소각의 역설] ②"주주환원 늘리면 회사 현금은 감소, 소각만으로 새로운 가치 안생겨"

[편집자주] 자사주 의무소각 시대가 열렸지만 주식을 태우는 것만으로 기업의 이익과 성장성이 높아지는 것은 아니다. 실제 주요 기업은 자사주 소각 이후 주가가 크게 엇갈렸다. 자사주 소각의 효과와 한계를 짚고, 기업가치를 결정하는 진짜 밸류업의 조건을 살펴봤다.
자사주 소각 후 주가 추이/그래픽=윤선정

자사주를 소각하면 주식 수는 줄지만 회사가 벌어들이는 돈이 늘어나지는 않는다. 배당이나 자사주 매입에 돈을 쓰면 주주에게 돌아가는 몫은 커지는 대신 회사가 가진 현금은 그만큼 줄어든다. 결국 기업가치를 높이는 핵심은 주식을 얼마나 많이 태우느냐보다 회사가 번 돈을 어디에 쓰느냐에 달렸다는 지적이다.

대규모 자사주 소각만으로 지속적 주가상승 기대 어려워

28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SK스퀘어는 자사주 의무소각 시행 이후인 지난 7월 약 430억원 규모의 자사주 소각을 결정했지만 당일 주가는 1.84% 떨어졌다. 이날 종가는 110만원으로, 소각 결정 직전일보다 13.9% 낮다.

의무소각 시행 전인 지난해 2월 KB금융은 상반기 5200억원 규모의 자사주 매입·소각 계획을 내놨지만 계획 발표 다음 날 주가는 6.7% 급락했다. 신한지주는 지난해 상반기에만 6500억원 규모의 자사주 매입·소각을 추진했다. 적극적인 주주환원은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지만 비은행 계열사 실적과 자본비율 등을 함께 살펴야 한다는 목소리가 뒤따랐다. 자사주를 많이 소각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꾸준히 이익을 내는 힘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얘기다.

주가는 실적 전망과 업황, 금리, 시장 상황 등 수많은 변수에 따라 움직인다. 이 같은 사례는 자사주 소각이 주가를 결정하는 여러 요인 가운데 하나일 뿐이며, 특히 대규모 소각만으로는 지속적인 주가 상승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점을 보여준다.

자사주 소각이 곧바로 기업가치 상승을 뜻하지 않는 이유는 단순하다. 이미 보유한 자사주를 소각한다고 회사에 새로운 현금이 들어오거나 매출과 영업이익이 늘지는 않는다. 전체 주식 수는 줄지만 공장과 기술, 현금 등 회사의 자산이나 사업 수익성이 달라지는 것도 아니다.

배당을 하거나 자사주를 새로 사들여 소각하면 회사 현금이 실제로 줄어든다. 기업이 1000억원을 벌어 그대로 갖고 있으면 회사에 현금 1000억원이 남는다. 반대로 이 돈을 배당하거나 자사주를 사들이는 데 쓰면 주주에게 돈이 돌아가는 대신 회사 현금은 그만큼 줄어든다. 돈이 회사 안에 남느냐, 주주에게 넘어가느냐의 차이일 뿐이다.

자사주 소각, 배당, 투자시 기대효과/그래픽=이지혜
얼마나 태우나보다 번 돈 어디에 쓰나가 중요

최동준 충남대 교수는 최근 공개한 논문에서 자사주 소각 자체와 기업가치 상승을 구분했다. 최 교수는 자사주를 소각해도 회사가 보유한 자산이나 벌어들이는 이익이 달라지지 않는 만큼 소각 자체는 원칙적으로 기업가치에 중립적이라고 분석했다.

금융투자업계에서는 기업의 성장 단계와 투자 기회에 따라 적정한 주주환원 수준도 달라질 수 있다고 본다. R&D(연구개발)나 설비투자, M&A(인수·합병)로 높은 수익을 낼 수 있는 기업은 이익을 재투자하는 편이 기업가치 제고에 도움이 될 수 있다. 반면 투자 기회가 부족한 기업은 현금을 과도하게 쌓아두기보다 배당이나 자사주 매입·소각을 늘리는 게 자본효율성을 높이는 방법이 될 수 있다.

이에 배당이나 자사주 소각 규모뿐 아니라 기업의 '자본배분' 정책을 함께 살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업에서 번 돈을 성장투자와 M&A, 부채 상환, 주주환원 등에 어떻게 배분하고, 이를 통해 얼마나 수익을 내는지가 기업가치를 좌우하기 때문이다.

금융투자업계 한 관계자는 "기업이 돈을 잘 벌어 좋은 투자처에 재투자하고 더 많은 이익을 만들어낼 수 있다면 그것 역시 주주가치를 높이는 방법"이라며 "반대로 투자를 해도 충분한 수익을 내기 어렵다면 주주에게 돌려주는 게 낫다"고 말했다. 그는 "진짜 밸류업은 무조건 많이 배당하거나 자사주를 많이 태우는 것이 아니라 기업이 가진 돈을 가장 가치 있게 쓰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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