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바지.'
글로벌 패션 브랜드 자라(ZARA)의 '플로위 와이드 레그 팬츠'에 붙은 별명이다. 통이 넓고, 얇은 소재로 만들어져 편안한 분위기를 내는 이 바지가 미국 등에서 유행을 끌고 있는 가운데 보행 중 바짓단이 신발 밑으로 말려들어가 넘어지는 낙상 사고가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소비자들은 바짓단을 묶거나 수선하는 방법을 공유하는 등 이 바지 착용을 포기 하지 않고 있다.
18일(현지 시간) 워싱턴포스트 등에 따르면 자라가 만든 이 바지는 100% 폴리에스터 소재로 만들어졌으며 가격은 45.90달러(약 6만3000원)다. 색상은 6가지로 판매된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 사는 여성 콘텐츠 제작자 기슬렌 엥겔(29)은 키가 173㎝로, 평소 다리 길이에 맞는 바지를 찾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그는 자라 매장에서 이 제품을 발견한 뒤 '완벽한 바지'라고 생각해 갈색 제품을 구입했다.
그러나 여행지에서 처음 이 바지를 입은 엥겔은 외출한 지 10분도 되지 않아 세 차례나 넘어질 뻔했다고 한다. 넓고 긴 바짓단 안으로 반대쪽 발이 들어가면서 균형을 잃은 것이다. 결국 그는 바짓단을 양손으로 발목 위까지 들어 올린 채 걸어야 했다. 엥겔은 "발 전체가 바짓단 안에 갇힌다"며 자신이 갖고 있던 다른 와이드 팬츠와도 달랐다고 설명했다.
그는 장애물이 적을 것으로 생각해 해변에서 바지를 다시 입었다. 카페에서 돌아오는 길에는 양손으로 바짓단과 아이스커피를 동시에 들고 걸어야 했다. 이를 본 친구가 해당 모습을 촬영했고, 엥겔은 "46번이나 넘어 질 뻔했다"는 글과 함께 영상을 SNS에 올렸다.
엥겔은 처음에는 자신이 단순히 덜렁대서 생긴 일이라고 여겼다. 그러나 영상에는 같은 바지를 입고 넘어지거나 다쳤다는 여성들의 댓글이 수백 건 달렸다. 이후 온라인에서는 이 제품을 두고 '치명적인 바지', '자라 죽음의 바지'라는 별칭이 확산했다. 하지만 엥겔은 이 바지를 포기하지 않고 머리끈으로 양쪽 바짓단을 묶어 발목 위로 올려 입고 있다.
이와 관련해 자라 측은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이 같은 바지가 유행하는 데 대해선 다양한 해석이 있다. 이 바지와 같이 길이가 길어 발목에 물웅덩이 같은 주름이 생긴단 의미로 '퍼들(물웅덩이) 팬츠'로 불린다.
패션사학자 에마 매클렌던은 모든 유행에는 극단적인 형태가 나타난다며 이 제품이 '와이드 팬츠 유행'의 정점에 해당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넓은 통과 밴딩 허리가 코로나19(COVID-19) 대유행 당시 편안함을 강조한 옷차림의 흔적이라고 설명했다. 여기에 기온 상승으로 잠옷과 비슷하게 헐렁한 실루엣을 내세운 '루스 미니멀리스트' 스타일이 인기를 끌면서 이 같은 제품이 등장했다는 것이다.
의류 착용 시험이 주로 정지된 마네킹이나 피팅 모델을 통해 이뤄지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실제 낙상 사고는 스튜디오에 가만히 서 있을 때가 아니라 빠르게 걷거나 계단을 오르내릴 때 발생하기 때문이다. 매클렌던은 "소비자들이 계속 이 바지를 입는다는 사실은 실제 신체 활동보다 외관과 자세, 정적인 사진에 더 집착하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다만 자라 홈페이지의 제품 사진에서도 바짓단이 모델의 발 주변 바닥에 길게 늘어져 있다. 기성복이나 패스트패션 브랜드가 소비자가 직접 수선할 것을 예상하고 바지를 길게 제작하는 경우가 많다는 설명이다. 영국 런던에 사는 조디 매클래런(33)도 매장에서 바지가 다소 길다고 느꼈지만 "일단 입은 뒤 나중에 수선하면 된다"고 생각해 구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