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이 유럽연합(EU) 탈퇴에 대한 부작용을 공식적으로 인정하면서 EU 재가입 가능성을 열어뒀다. 브렉시트 결정 이후 10년만에 이를 다시 국가적 토론 테이블에 올린 것이다.
30일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앤디 버넘 영국 총리는 지난 29일(현지시간) 리버풀에서 열린 노동당 전당대회 연설에서 "브렉시트는 득보다 실이 더 컸다"고 지적했다. 이어 경제 성장과 번영을 도모하기 위한 다음 단계로 오는 11월 EU와의 정상회담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버넘 총리는 예정된 EU 회담을 언급하며 "이번 정상회담을 계기로 영국과 EU 파트너 국 간의 장기적인 관계 설정을 위한 다양한 선택지를 국민 여러분께 제시하고자 한다"며 "함께 모아갈 수 있는 공통의 합의점이 있는지 확인해보겠다"고 말했다. 버넘 총리는 연설에서 구체적인 선택지를 설명하지 않았지만 노동당 내에서는 EU 단일시장 참여, 관세동맹 가입, EU 전면 재가입 등이 거론된다.
이번 발언은 영국이 EU 탈퇴를 결정한 지 10년 만에 나온 것이다. 앞서 버넘 총리는 EU 재가입에 찬성하는 의견을 드러낸 적이 있지만, 올해 5월 차기 총리로 유력하게 거론되기 시작한 이후로는 '2016년 국민투표 결과를 존중한다'면서 재가입을 추진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입장을 보였다.
국민적 공감대도 작지 않다. 지난 6월 실시된 유고브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55%가 EU 재가입을 지지한 반면, 반대는 34%에 그쳤다. 동일한 조사에서 EU 완전 재가입이나 단일시장·관세동맹 복귀는 아니더라도 EU와의 관계를 한층 강화하는 방안에 대해서는 59%가 찬성 의사를 표명했다.
외신들은 버넘 총리가 영국의 EU 탈퇴 이후 가장 야심 찬 브렉시트 재검토에 나섰다고 평가했다. 로이터 통신은 버넘 총리의 이날 발언은 브렉시트를 둘러싼 쓰라린 분열을 다시 불러올 위험을 감수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영국의 이번 EU 관계 강화 추진은 유럽 내 전면전 위협이 고조되는 동시에 전 세계 지정학적 영향력이 기존 우방 관계를 재편하고 있는 시점과 맞물려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유럽 국가들이 대(對)러시아 억제력을 높이기 위해 스스로 국방비를 부담해야 한다고 압박하는 한편, 미국 경제 보호 및 강화를 위해 관세를 적극적인 수단으로 활용해왔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영국은 유럽 공동 방위 투자 프로그램 참여를 시도했으나 실패했다. 브렉시트 이후 EU측에 범유럽 제조 지원 프로그램인 '메이드 인 유럽'에 영국을 포함해줄 것을 지속적으로 요청해오고 있다.
이날 버넘 총리는 사회복지 제도 개편과 선거 제도 개편 추진도 발표했다. 국민보건서비스(NHS)와 같이 무상으로 제공되는 '국가 돌봄 서비스' 구상을 제시했다. 재원 마련을 위해 2030년부터 현행 국가 연금 지급액 결정 방식을 폐지하겠다고 말했다. 연금 지급액 인상을 보장하던 제도를 폐지함으로써 노인 돌봄 재원을 마련하겠다는 뜻이다. 또 차기 총선부터 도입할 선거제도 개편 방식을 연구하기 위한 국가 위원회를 설립하겠다고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