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급률 1%대, 그래서 더 파고든다"…우리밀 지키는 연구자들

세종=이수현 기자
2026.09.21 08:37
최창현 농촌진흥청 국립식량과학원 기초식량작물부 맥류작물과 연구사(오른쪽)/사진=국립식량과학원 제공

'자급률 1%대' 우리밀을 지키는 건 농민만이 아니다. 누군가는 빵이 더 잘 부풀고 면발이 더 좋아지는 밀을 만들기 위해 유전자를 들여다보고, 누군가는 검은 밀알 하나에서 새로운 시장을 찾는다. 수익성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영역에서 우리밀을 붙들어온 힘은 연구자들의 신념과 책임감에 가깝다.

최창현 농촌진흥청 국립식량과학원 기초식량작물부 맥류작물과 연구사는 2018년부터 밀 육종을 맡았다. 최근에는 빵과 면처럼 용도에 맞는 품종을 만드는 데 집중하고 있다. 올해는 카스테라와 케이크 등에 활용할 수 있는 박력분용 밀 계통의 품종 출원을 앞두고 있다.

밀 육종은 소비자가 먹는 빵 한 조각과 국수 한 그릇에서 출발한다. 빵용 밀은 발효 과정에서 생긴 가스를 붙잡아둘 만큼 글루텐이 제대로 형성돼야 한다. 면용 밀은 면의 종류에 따라 필요한 글루텐 강도와 전분 특성이 달라진다.

최 연구사는 "글루텐을 형성하는 단백질의 유전자 조성에 따라 빵이 잘 되는 밀이 있고 국수가 잘 되는 밀이 있다"며 "그런 특성이 알려진 유전자를 새로운 품종에 도입해 용도에 맞는 밀을 만드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문제는 밀이 만만한 작물이 아니라는 점이다. 밀은 유전적으로 복잡한 6배체 작물이다. 다른 작물보다 유전체 정보를 활용한 육종이 까다롭고, 관련 정보 축적도 상대적으로 늦었다. 밀 연구를 일종의 '난제'처럼 받아들이는 이유다.

최 연구사는 "과학자라면 단순히 성과를 내는 것보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는 연구를 하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며 "밀 자급률을 1%라도 더 올리는 연구를 한다는 데 자부심이 있다"고 말했다.

김경훈 농촌진흥청 국립식량과학원 기초식량작물부 맥류작물과 연구관 /사진=국립식량과학원 제공

오랫동안 같은 문제와 씨름해온 선배 연구자들도 있다. 김경훈 국립식량과학원 기초식량작물부 맥류작물과 연구관은 국산 밀 품종을 만드는 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만든 밀을 어디에 쓸 것인가'를 고민해왔다. 김 연구관은 2014년부터 식용 밀 연구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대표적인 사례가 유색밀 '아리흑'이다. 출발은 단순한 호기심이었다. 국내 재래종 가운데 검은색을 띠는 밀에 주목해 기존 품종과 교배하고 개량을 이어갔다. 검은색을 띠는 밀기울에는 안토시아닌과 폴리페놀 등이 들어 있어 통밀빵과 쿠키, 통밀밥 등 새로운 활용 가능성도 보였다.

연구실에서 만든 품종이 실제 산업 현장에서 인정받는 순간도 찾아왔다. 과거에는 국산 밀로 만든 칼국수나 수제비가 쉽게 끊어진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품종과 가공기술이 개선되면서 식품업체에서도 국산 밀을 원료로 쓸 수 있다는 반응이 나오기 시작했다.

연구가 길어질수록 과제는 커졌다. 같은 품종도 어디에서 어떻게 재배하고 저장했는지, 어떻게 제분했는지에 따라 밀가루 품질이 달라졌다. 김 연구관은 "처음에는 품종만 잘 만들면 되는 줄 알았고, 그다음에는 재배만 잘하면 되는 줄 알았다"며 "그런데 밀가루를 제대로 제분하고 가공업체가 실제로 쓸 수 있는 수준까지 만들어줘야 산업이 돌아간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자급률 1%대의 작은 시장에서는 당장의 경제성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연구도 있다. 품종을 만들고 생산해도 시장이 충분히 크지 않으면 기업이 먼저 투자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김 연구관은 "밀 산업을 경제 논리만으로 보면 시작하기 어렵다"며 "품종 개발부터 품질 관리, 산업체가 사용할 수 있도록 연결하는 과정까지 기반이 갖춰질 때까지 정부와 연구기관이 함께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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