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분이라도 불안하게 여기신다면 저희의 불찰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송미령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은 지난 8일 '농지 전수조사 후속조치'를 발표하며 농업인들의 불안을 충분히 해소하지 못한 점을 인정했다.
투기를 근절하고 농지를 농업인에게 돌려주겠다는 조사가, 농민들이 자신의 땅을 잃을까 걱정하는 상황으로 번진 뒤 나온 말이다.
정부는 명백한 투기가 아닌 일반적인 사안의 경우 이번 조사 결과를 근거로 처분 절차가 진행되지 않도록 특별조치법 제정을 추진하기로 했다.
올해 농지 전수조사의 추진 과정과 송 장관의 주요 발언을 따라가면, 투기 근절을 강조하던 설명에서 농촌 현실과 맞지 않는 법을 정비해야 한다는 메시지로 무게중심이 옮겨가는 흐름이 읽힌다.
농업인에게 제시한 구제 조건도 달라졌다. 그 사이 현장에서는 임차농의 경작권과 고령농의 노후 자산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커졌고, 국회에서는 정책 배경과 준비 수준을 따지는 질문이 쏟아졌다.
◇투기 잡겠다는 조사, 농민은 자신의 땅을 걱정했다
출발점은 지난 2월 24일 국무회의였다. 이재명 대통령은 농지가 투기 대상이 됐다고 지적하며 전수조사와 강제 매각명령 검토를 지시했다.
농식품부는 4월 조사계획을 발표하고 5월 18일부터 지방정부와 함께 조사에 들어갔다. 농식품부가 제시한 목표는 투기 근절과 농지 데이터베이스 구축이었다.
소유·경작·이용 실태를 폭넓게 확인하고, 위반이 의심되는 농지를 선별해 심층조사를 진행하는 방식이었다.
6월 11일 경기 화성을 찾은 송 장관은 투기 근절과 농업인을 위한 농지 활용을 강조했다. 현장과 긴밀하게 소통하며 조사를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조사가 진행되면서 법의 기준과 농촌의 생활이 부딪혔다. 나이가 들어 이웃에게 농사를 맡긴 농민, 부모에게 물려받은 논을 직접 경작하지 못하는 상속인, 구두 약속으로 오랫동안 같은 땅을 일군 임차농에게 농지 이용은 단순한 적법·위법의 문제가 아니었다.
일부 지역에서는 부재지주가 정부의 조사를 피하려 임대차 관계를 일방적으로 종료하려는 시도도 나타났다.
농식품부는 서면 계약 전환과 농지은행 위탁을 유도하고 임차농 보호 신고센터를 운영하겠다고 했다. 투기를 가려내는 과정에서 실제 농사짓는 사람의 경작 기반이 흔들릴 가능성을 정부도 알고 있었던 셈이다.
7월 말까지 진행한 기본조사에서는 약 27%, 284만 필지가 위반 의심으로 분류됐다. 위법이나 처분이 확정된 수치가 아니었지만 농촌에서는 오랫동안 이어온 농지 이용까지 처분 대상이 되는 것 아니냐는 불안이 커졌다.
◇'농지 이용자의 위반'에서 '현실 못 따라간 법'으로
9월 들어 송 장관의 발언에서도 제도의 문제가 더 선명해졌다. 지난달 23일 민주당 공식 유튜브 방송에 출연한 그는 위반 의심 사례가 많이 나오는 것은 30년 된 농지법이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조사 결과를 활용해 현실에 맞는 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설명이었다.
같은 달 30일 전북 남원에서 마을 이장들을 만났을 때도 농업인을 적발하거나 처분하기 위한 조사가 아니라, 소유·이용 실태를 파악해 농지 관리와 제도를 개선하기 위한 조사라고 설득했다.
정부의 농지전수조사는 처음부터 데이터베이스 구축과 현장 지원이라는 목표가 있었던 만큼 조사 목적이 완전히 뒤집혔다고 보기는 어렵다.
다만 장관이 앞세우는 설명은 달라졌다. 투기 근절의 필요성을 설득하던 말에서, 법과 현실 사이의 간극을 해소하고 선의의 농업인을 보호하겠다는 약속이 전면에 등장했다.
정부는 지난달 21일 당정협의에서 관행적 위반의 정상화와 양성화를 내용으로 하는 특별조치법 추진을 발표했다.
하지만 관행적 임대차에 대한 구제는 농지은행에 위탁하면 처분을 유예하는 방식이었다. 농민에게는 농지은행을 이용할 수 있는지, 절차를 제대로 이행할 수 있는지가 새로운 걱정으로 남을 수 있는 구조였다.
◇"홍보 부족 아니다"…국감은 준비와 순서를 물었다
지난 7일 국정감사에서는 여야가 현장의 혼란을 질타했다. 비판은 조사 취지를 제대로 알렸느냐를 넘어, 정부가 농촌에 미칠 영향을 충분히 검토했느냐에 집중됐다.
신장식 조국혁신당 의원은 농지은행 매입 대기 지연과 농지연금 부담을 거론하며 홍보로 해결할 문제가 아니라고 지적했다.
조승환 국민의힘 의원은 "농민이 안심할 법적 대책을 먼저 마련한 뒤 조사해야 한다"며 중단을 요구했다.
같은 당 이상휘 의원도 대통령 지시 이전 협의 여부와 농지가격·담보대출 등 파급효과 검토를 추궁했다.
송 장관은 답변을 통해 비경작 농지와 수도권 투기용 농지 중심의 조사 대안을 살펴보겠다고 했다. 세심하게 챙기지 못한 부분도 인정했다.
잘못 알려진 정보 때문에 불안이 생겼다는 설명에 더해, 정부가 준비와 대응에서 부족했던 점을 돌아보는 발언이 나온 것이다.
◇맡기면 유예'에서 '위탁과 관계없이 처분 제외'로
8일 발표에서 가장 뚜렷하게 달라진 것은 구제 조건이었다.
정부는 상속농지, 고령농·관행 임대차 농지, 소유관계가 복잡한 농지, 맹지·영농곤란 농지, 농업용 창고 등 미허가 시설에 대해 이번 조사 결과에 따른 처분이나 원상회복을 진행하지 않는 방향을 제시했다. 다만 법령상 금지된 시설 등은 양성화 대상에서 제외했다.
농지은행 위탁 여부와 관계없이 일반적인 사안은 처분 절차가 진행되지 않도록 하고, 농지은행 이용은 소유자의 선택에 맡기겠다고 했다.
정상화 절차를 밟으면 처분을 미뤄주는 방식에서, 비투기성 사안의 처분 위험을 먼저 차단하는 방향으로 구제의 무게중심이 이동했다.
특별법이 국감 질타 이후 갑자기 등장한 것은 아니다. 지난달 21일 추진 방침이 발표됐고, 이달 6일 국회 토론회에서도 제정 방향이 논의됐다.
8일 발표는 그 흐름 속에서 구제 조건과 입법 계획을 구체화한 조치다. 아직 법 제정 전인 만큼 처분 제외가 법적으로 보장된 것도 아니다.
여야 공방속에서 정부는 일단 "투기를 엄정하게 다루겠다"는 원칙을 유지했다. 이제 남은 질문은 투기와 농촌의 관행을 현장에서 구분하고, 장관의 약속을 법과 행정으로 보장하는 일이다.
송미령 장관은 농업인의 불안을 두고 "저희의 불찰"이라고 말했다. 불찰을 인정한 정부가 무엇을 바꾸느냐가 이제 중요하다. 결국 농지 전수조사에 대한 신뢰는 농민의 경작권과 노후 자산을 지킬 구체적인 조치가 마련되고 실행될 때 회복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