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가상자산 과세를 2년 유예하기로 입장을 정한 배경에는 과세 인프라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다는 판단이 자리 잡고 있다.
특히 해외 가상자산 거래정보를 국가 간 공유하는 '암호화자산 자동정보교환체계'(CARF)의 정보교환 시차가 유예 결정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가상자산 투자에 적극적인 청년층의 반발도 무시할 수 없는 변수였다.
가상자산 과세는 가상자산 양도·대여 소득을 기타소득으로 분류해 연간 250만원을 기본공제한 뒤 초과분에 20%(지방소득세 포함 22%)의 세율을 적용하는 제도다. 당초 2022년 시행할 예정이었으나 세 차례 유예를 거쳐 시행 시기가 2027년으로 미뤄졌다.
이번 추가 유예 결정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은 과세 인프라의 미비다. 가상자산 과세의 핵심은 과세 대상 소득을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다. 국내 거래소와 달리 해외 거래소를 통한 거래는 과세자료 확보가 상대적으로 어렵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해외 가상자산 거래정보를 국가 간 공유하는 CARF가 도입된다. 하지만 캐나다·싱가포르·홍콩 등 29개국은 2028년, 미국은 2029년에 첫 정보교환을 시작하는 등 시차가 있다.
재정경제부가 미국과의 정보교환 시점을 고려해 과세를 2년 유예하기로 입장을 정한 것도 이 때문이다.
정부의 입장 변화는 지난달 6일 재경부 국정감사에서 감지됐다. 이형일 부총리 겸 재경부 장관은 당시 "다양한 이해관계를 폭넓게 수렴해 나가겠다"며 과세 강행 입장에서 한발 물러섰다.
재경부는 국정감사 전까지만 해도 '소득 있는 곳에 과세' 원칙을 내세우며 예정대로 내년 1월부터 과세한다는 입장을 유지했다. 지난 9월 초 국회에 제출한 세제개편안에도 같은 방침을 담았다.
이미 세 차례 유예한 과세를 다시 미룰 경우 정책 신뢰도가 훼손될 수 있다는 부담도 컸다.
하지만 정치권을 중심으로 유예 요구가 확산됐다. 야당이 과세 강행에 반대 의사를 밝힌 데 이어 여당 내부에서도 과세 인프라와 제도적 미비점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지난달 28일에는 당정협의회가 별도로 열려 유예 여부를 논의했다.
정부는 과세 유예와 함께 제도 정비도 추진한다. 대표적인 것이 손실 이월공제다. 현행 제도에서는 가상자산 소득을 기타소득으로 분류하기 때문에 과거 손실을 다음 해 수익에서 공제할 수 없다.
가령 올해 1000만원의 손실을 보고 내년에 500만원의 수익을 올렸다면 2년간 합산 손실은 500만원이다. 하지만 현행 제도에서는 내년 수익 500만원에서 기본공제 250만원을 제외한 250만원에 세금이 부과된다.
재경부는 미국·영국 등 주요국에서 인정하는 손실 이월공제의 기간을 3년간 허용하는 방안을 추진할 계획이다. 과세 유예 기간에 제도적 미비점을 보완해 과세 형평성을 높이겠다는 취지다.
이번 유예 결정은 여당의 요청을 정부가 수용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김민석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지난 4일 가상자산 과세 유예를 공식 제안했다. 여당 입장에선 청년층의 반발도 무시할 수 없는 변수였다.
정부가 유예 방침을 정했더라도 실제 시행 시기를 변경하려면 소득세법 개정 절차를 거쳐야 한다. 다만 여야와 정부가 모두 유예 필요성에 공감하고 있는 만큼 이달 국회 심사 과정에서도 과세 유예 자체에는 큰 이견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