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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업자들은 자신과 제품을 너무 잘 압니다. 그러다 보니 고객에 대한 집중도가 떨어지고 경쟁사 분석도 약해집니다. 제품은 좋은데 마케팅과 프로모션 역량이 부족한 경우도 많습니다."
권영수 전 LG 부회장은 지난 13일 경기 성남시 판교 기업지원허브 창업존에서 열린 초청 특강에서 기술 중심 창업자들이 빠지기 쉬운 함정에 대해 이같이 짚었다.
이날 행사는 KAIST(한국과학기술원) 동문 기반 혁신창업생태계 모임인 'KOC(KAIST One Club)'와 경기창조경제혁신센터가 마련하고 경기혁신센터 및 배민스타트업스퀘어 입주기업, KOC 회원 등 50여명이 참석했다.
권 전 부회장은 LG디스플레이와 LG화학 전지사업본부, LG유플러스, LG, LG에너지솔루션 등 서로 다른 산업군에서 경영 전문가로 활약했다. 2023년 말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뒤에는 후배 경영자와 창업가를 위한 멘토링에 힘쓰고 있다.
그는 이날 자신의 저서와 같은 '당신이 잘되길 바랍니다'를 주제로 강연하며 사업 전략과 조직관리, 실패와 위기 대응 과정에서 체득한 경영 원칙을 공유했다.
"3C 중 '나'만 보고 4P 중 '제품'에만 매몰"
권 전 부회장은 스타트업이 전략을 수립할 때 3C와 4P의 불균형부터 점검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3C는 △자사(Company) △고객(Customer) △경쟁사(Competitor), 4P는 △제품(Product) △가격(Price) △유통(Place) △프로모션(Promotion)을 뜻한다.
그는 "창업자들은 본인이 만든 제품을 누구보다 잘 알고 기술에 대한 자신감도 강하다"며 "하지만 고객이 실제로 무엇을 원하는지, 경쟁사가 어떤 방식으로 움직이는지에 대한 집중도는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이어 "사업을 실제로 굴리려면 제품뿐 아니라 가격을 정하고 유통망을 확보하며 프로모션도 해야 한다"며 "제품에는 강하지만 마케팅과 프로모션을 맡을 경험이나 네트워크가 부족한 창업자가 많다"고 진단했다.
특히 대학 졸업 후 바로 창업하거나 한 분야의 기술 경력만으로 사업에 뛰어드는 사례가 늘면서 협업 네트워크가 상대적으로 좁아졌다고 봤다. 자신의 부족한 역량을 인정하고 외부 어드바이저나 파트너의 도움을 받아들이는 능력도 경영 역량이라는 설명이다.
그는 "제품을 만드는 것보다 판로를 개척하고 파는 일이 더 어려울 수 있다"며 "마케팅과 영업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을 계속 연구하고 여러 사람에게 도움을 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투자유치를 사업의 전제조건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고 경계했다. 권 전 부회장은 "투자를 받아야만 회사를 일으킬 수 있다는 생각부터 버려야 한다"며 "투자를 받더라도 '받지 못해도 내가 이 회사를 일으키겠다'는 각오가 먼저 있어야 한다"고 했다.
"AI가 기술을 대체할수록 사람을 엮는 힘이 중요"
권 전 부회장은 AI 시대에 기술의 중요성이 커질수록 역설적으로 리더십의 비중도 높아진다고 강조했다. AI를 도입하는 것과 AI가 조직 안에서 실제 성과를 내도록 만드는 것은 다른 문제라는 이유에서다.
그는 "앞으로 모든 사업은 시차가 있을 뿐 AI 기술과 융합돼야 한다"며 "그 기술이 회사에 들어와 성공하려면 무엇보다 리더십이 좋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수많은 기술과 기술 인재를 어떻게 잘 엮고, 존중하고, 배려해서 역량을 발휘하도록 만들 것인가가 중요하다"며 "기술을 보유했다고 사업이 성공하는 것이 아니라 그 기술을 가진 사람의 마음을 얻어야 한다"고 말했다.
권 전 부회장은 새로운 산업이나 낯선 조직을 맡았을 때 가장 먼저 했던 일이 '일대일 면담'이었다고 전했다. 여러 사람이 함께하는 회의에서는 구성원이 속내를 충분히 드러내지 않는 만큼, 한 사람씩 만나 진정성 있게 질문하고 듣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그는 "실력 있는 사람은 질문을 이어가면 더 좋은 지식을 내놓지만, 잘 모르거나 의도가 불순한 사람은 계속 경청하고 질문할수록 초조해진다"며 "경청은 좋은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가려내는 강력한 방법"이라고 했다.
"월요일을 남의 계획으로 시작하지 말라"
권 전 부회장은 거창한 경영기법을 찾기보다 장기간 반복하는 작은 습관이 경영자의 격차를 만든다고 진단했다. 자신의 경력에서 가장 큰 효과를 낸 습관으로는 메모와 주간계획을 꼽았다.
그는 "머리가 좋아도 잊어버리면 일을 하지 않은 것과 같다"며 "기록하기 시작하면 지시받은 일을 빠뜨릴 수 없고, 머리는 암기보다 판단하는 데 사용할 수 있다"고 했다. 권 전 부회장의 경우 신입 2년간 대학노트 약 40권을 채울 만큼 지시사항과 업무 내용을 기록했다고 한다.
매주 일요일에는 한 시간 정도를 들여 다음 주에 해야 할 일을 선제적으로 정리했다. 월요일 아침 조직의 일정과 다른 사람의 요구에 끌려다니지 않고, 자신이 정한 우선순위로 한 주를 시작하기 위해서다.
권 전 부회장은 이를 등산에 비유했다. 선두에서 속도를 정하는 사람과 뒤에서 다른 사람의 속도를 따라가는 사람은 같은 길을 걸어도 피로도가 다르다는 설명이다. 그는 "미리 준비하지 않으면 월요일부터 남이 하는 일을 따라가게 된다"고 말했다.
외부 컨설팅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태도도 경계했다. 가격을 올리고 원가와 비용을 낮추면 이익이 늘어난다는 당연한 내용을 복잡한 용어로 포장한 컨설팅 보고서에 조직 전체가 의존하면 내부의 사고력이 약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권 전 부회장은 "어려움은 잠시지만 그 과정에서 쌓은 실력은 오래 남는다"며 "외부의 답을 받아 적기보다 스스로 문제를 파고들어 자기 실력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창업가 리더십의 출발점으로 자기성찰을 꼽았다. 조언을 구하기 전에 자신이 무엇을 잘못하고 있는지부터 찾아야 외부의 도움도 제대로 활용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그는 "자신이 잘못한 것이 무엇인지 계속 생각하고 고치려는 의지가 없다면 다른 사람이 도와줄 수 없다"며 "리더의 역할은 불확실성을 감추거나 근거 없는 낙관론을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부족한 자원으로도 조직이 함께 싸워야 할 이유를 보여주는 데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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