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기상씨(41·가명)와 박희진씨(65·가명)는 애틋한 모자 사이였다. 강씨의 아버지는 세상을 떠났고 어머니인 박씨는 형제자매와 사이가 좋지 않았다. 모자가 서로에게 유일한 가족이었다. 13년전 까지 모자는 평범한 삶을 살았다.
상황이 달라진 건 박씨가 건강을 잃으면서다. 심장수술을 받은 상황에서 허리에 인공뼈를 넣는 수술도 했다. 강씨가 어머니를 모시고 살게 됐다. 처음 3~4년은 그래도 버틸만 했다고 했다. 생활이 급격히 나빠지기 시작한 것은 강씨의 허리마저 망가지면서다. 강씨는 "8~9년 전부터는 허리 때문에 일을 할 수 없어 기초생활 수급자가 됐다"며 "한달에 160만원을 받아 지하방 월세로 80만원을 내고 나머지 80만원으로 어머니를 모시고 살았다"고 했다.
지난해 박씨가 기침을 하기 시작했다. 한달 가까이 감기약을 먹었지만 차도가 없었다고 한다. 병원에서 독감 검사를 권유했으나 검사비 3만원을 선뜻 지불하기 어려운 상태였다. 기침이 끊이지 않던 박씨는 어느날 갑자기 입에 거품을 물고 쓰러졌다. 박씨는 바로 중환자실로 입원했고 세달만에 폐렴으로 세상을 떠났다. 강씨는 "그때 검사를 받았으면 어머니가 살 수 있지 않았을까"라고 말했다.
박씨가 남긴 병원비는 2000만원이었다. 강씨는 사회복지사의 도움으로 병원비 상당부분을 해결했으나 끝내 수백만원의 병원비가 남았다. 강씨 혼자서는 장례를 치를 수도, 남은 병원비를 정리할 수도 없었다. 강씨는 박씨의 형제자매에게 도움을 요청했으나 답을 받지 못했다. 그렇게 영안실에 박씨의 시신이 보관된 채 8개월의 시간이 흘렀다. 병원에서 더는 기다릴 수 없다는 최후 통첩이 날아왔다. 강씨는 지자체 등의 도움을 받는 무연고 장례를 선택했다. 아들과 형제자매도 있는 박씨는 떠날 때 '가족이 없는' 사람이 됐다.
박씨처럼 가족이 있는데도 무연고 사망자로 분류되는 이들은 부지기수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권칠승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보건복지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무연고 시신 처리 인원은 7171명이다. 이 중 연고자가 시신 인수를 거부하거나 기피한 경우가 5370명에 달한다. 전체의 74.9%로, 무연고 사망자 4명 중 3명은 연고자가 있는 경우다. 연고자의 시신 인수 거부·기피는 2021년 2551명이었으나 지난해엔 2배 이상(110.5%)으로 늘었다. 같은 기간 전체 무연고 사망자는 3568명 늘었는데 이 가운데 2819명(79%)이 시신 인수 거부·기피에 따른 경우였다.
이들이 왜 무연고 사망자가 됐는지를 정확하게 파악할 데이터도 충분하지 않다. 현재 정부가 관리하는 정보는 사망일과 성별, 국적, 연고자의 시신 인수 거부·기피 사유, 사망의 종류와 장소, 국가유공자·수급자 여부 등에 그친다. 박종찬 서로이음상조 대표는 "무연고 장례는 가족과의 관계단절이나 경제적인 이유가 대부분"이라며 "최근 빈소 없는 장례가 늘어나는 것도 같은 이유"라고 분석했다.
어머니를 무연고 장례로 보낸 강씨는 3년 전부터 암을 앓고 있다. 어려운 경제사정에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강씨는 자신도 무연고 사망자가 될 것이라고 했다. 강씨는 "무연고 사망자는 그래도 장례에 도움을 받는다"며 "어머니가 살아 있을 때 다른 방식으로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수명은 늘어나는데 자녀들은 경제적으로 독립하기 힘들어지고 가족주의는 해체되고 있습니다. 자녀들이 받을 것 없는 부모들과 연을 끊는 현상이 벌어지는 것도 이상하지 않죠. 상속받을 재산이 있는 자녀들만 돌아가시기 직전에 부모를 찾는 경우가 많습니다."
무연고 사망자 증가와 관련한 서이종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의 진단이다. 초고령화와 1인 가구 증가에 따른 자연스런 현상으로만 보기는 어렵다는 얘기다. 서 교수는 경제적 어려움 등으로 생활이 여의치 않고 부모를 돌볼 여력이 줄면서 과거처럼 효 문화를 중심으로 한 가족 간 유대가 부양으로 이어지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22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권칠승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보건복지부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65세 이상 무연고 사망자는 2021년 1845명에서 지난해 4310명으로 4년 만에 133.6% 증가했다. 지난해 전체 무연고 사망자 중 65세 이상은 60.1%였고, 50세 이상으로 범위를 넓히면 91.6%에 달했다.
65세 이상 무연고 사망자가 4년만에 두배 넘게 늘어난 것은 고령화가 가장 큰 배경으로 꼽힌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그 이면에 자리한 '경제적 문제'와 '가족관계 단절'에 더 주목한다. 윤인진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대부분 경제력이 없는 부모를 자녀가 돌보지 못하거나 방치하는 경우가 단절로 이어진다"며 "과거 가족과 개인이 맡았던 돌봄이 더 이상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이 됐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장례 비용 감당이 어려워 어머니를 무연고 장례로 떠나 보낸 강기상씨의 사례는 그나마 모자간 가족관계가 사망 전까지 이어진 경우다. 하지만 무연고 사망자 중에는 죽기 한참 전부터 가족관계가 단절돼 마지막 순간까지 혼자였던 노인이 많다. 서 교수는 "기대수명은 늘고 있지만 노인 빈곤율은 더 높아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고령층이 많다"며 "결국 이들은 마지막에 무연고 사망자가 된다"라고 했다.
전문가들은 무연고 사망 증가는 경제적 원인 외에도 △지역공동체 약화 △가족 간 갈등 △재혼·이혼 등 다양한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고 말한다. 윤 교수는 "과거엔 부모 부양을 당연한 도리로 여겼지만, 전통적·집단적 가치가 약해지고 개인주의와 물질주의가 강해지면서 이러한 인식도 달라졌다"고 했다.
가족이 있는데도 경제적 어려움 등에 따른 관계 단절로 무연고 사망자가 되는 사례는 앞으로 더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 서 교수는 "사회공동체 약화와 구조적 원인을 고려하면 이런 현상은 더욱 심화할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윤 교수 역시 "국가적인 차원에서 대처하지 않으면 무연고 사망은 계속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윤 교수는 "무연고 사망이라고 하는 것은 가장 비극적이고 비참한 상태"라며 "다만 이는 최종적인 결과로 나타나는 것으로 무연고 사망을 줄이려고 가족을 찾는 노력보다는 고위험군에 있는 노인이 인간으로서의 존엄한 삶을 살고 이를 마무리 할 수 있느냐를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