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희대 대법원장의 대법관 후보자 재제청 거부 사태가 추석 연휴를 앞둔 정국의 '블랙홀'로 떠올랐다. 대법관 인선을 둘러싼 대통령과 대법원장의 갈등이 여야의 정치적 공방으로 번지면서 사법부와 행정부 간 유례없는 충돌로 확대되는 양상이다. 인사 논란과 지지율 하락 등으로 고심해온 여권은 이번 사태를 사법개혁의 계기로 삼겠다는 입장인 반면 야권은 대통령의 대법관 인사 개입에 제동을 건 것이라며 조 대법원장을 엄호하고 나섰다.
김민석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23일 국회 최고위원회의에서 조 대법원장의 재제청 거부를 강하게 비판하며 "국회의 모든 권한을 다 활용해 법적 책임을 묻겠다"고 밝혔다. 김 대표는 특히 이번 사태를 '희대의 난'으로 규정하고 국정감사 등을 통한 진상 규명과 사법개혁 필요성을 거듭 강조했다.
앞서 조 대법원장은 전날 대법관 후보자 재제청 요구를 거부하는 입장을 발표했다. 지난달 28일 청와대가 노태악 전 대법관 후임으로 조 대법원장이 제청한 손봉기 대구지법 부장판사의 임명동의안을 국회에 보내지 않고 후보자를 다시 제청해달라고 요구한 데 대한 답변이었다. 이 대통령이 유엔총회 참석차 해외 순방 중인 상황에서 25일 만에 거부 입장을 내놓은 것이다.
조 대법원장은 재제청 요구 문서에 구체적인 사유와 헌법적 근거가 담겨 있지 않다며 거부 이유를 밝혔다. 헌법 104조 2항은 대법관을 대법원장의 제청으로 국회의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하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대통령이 대법원장에게 대법관 후보자를 다시 제청하도록 요구할 수 있는 절차를 명시적으로 규정하고 있지는 않다. '재제청' 자체가 헌법에 규정된 권한인지 여부가 이번 사태의 핵심 쟁점으로 떠오른 이유다.
반면 청와대는 조 대법원장의 주장이 대통령의 임명권을 무력화하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청와대는 대통령의 임명권을 전제로 한 대법관 인사 절차를 조 대법원장이 거부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다. 청와대와 대법원이 각각 대통령의 임명권과 대법원장의 제청권을 근거로 맞서면서 헌법기관 간 권한 충돌 양상으로 번지고 있다.
정치권의 대립도 격화하고 있다. 민주당은 조 대법원장의 거부를 사법개혁의 필요성을 보여주는 사례로 규정하며 국회 차원의 대응을 예고했다. 민주당 내부에선 조 대법원장의 자진 사퇴와 탄핵 가능성까지 거론하고 있다. 국정감사에서 조 대법원장을 직접 불러 재제청 거부의 근거와 경위를 따져보겠다는 입장이다. 국민의힘은 조 대법원장의 판단을 지지하면서 청와대의 재제청 요구 자체에 문제가 있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특히 이번 사태가 추석 연휴를 앞두고 불거졌다는 점에서 여론에 미치는 영향 등 정치적 파장이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 민주당은 인사 논란과 국정 지지율 하락의 반전 기회를 사법개혁과 헌법기관 간 권한 문제의 핵심 의제 부각에서 찾겠다는 입장이다. 한편, 청와대는 헌법재판소에 권한쟁의심판 청구를 검토하고 있다는 언론 보도를 이날 부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