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걸려온 구조 요청…243억 '노쇼사기' 조직 잡은 베테랑 경찰

인천=민수정 기자
2026.09.27 07:00

[베테랑] 최재황 인천연수경찰서 지능범죄수사팀 경감

[편집자주] 한 번 걸리면 끝까지 간다. 한국에서 한 해 검거되는 범죄 사건은 161만건(2025년 기준). 사라진 범죄자를 잡기 위해 물불 가리지 않는 이 시대의 진정한 경찰 베테랑을 만났다.
지난 18일 인천 연수경찰서에서 만난 최재황 지능범죄수사팀장(경감)./사진=민수정 기자.

#. 지난 2월 새벽 베트남의 한 빌라. 모두가 잠든 틈을 타 40대 남성 A씨가 조심스레 휴대전화를 꺼내 들었다. 평소 알고 지내던 경찰에게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서였다. '고액 아르바이트' 광고를 보고 지인들과 베트남으로 건너간 A씨는 현지에서 수상한 업무를 지시받았다. 관공서에 전화를 걸어 실무자 이름을 파악하고 이를 토대로 명함을 만드는 일이었다. 범죄에 연루됐음을 직감한 A씨는 탈출을 결심했다.

연락을 받은 경찰이 최재황 인천 연수경찰서 지능범죄수사팀장이다. 최 팀장은 A씨가 이른바 '노쇼사기' 조직에 걸려들었다고 판단했다. 곧바로 국가정보원에 공조를 요청하는 동시에 A씨에게 조직의 범행을 입증할 영상과 자료를 최대한 확보해 달라고 당부했다. 약 3시간 뒤 A씨 일행은 현지에서 구조됐다.

A씨 신고는 대규모 노쇼사기 조직의 실체를 드러내는 단서가 됐다. 경찰이 확보한 증거물을 분석한 결과 이 조직에 피해를 본 국내 소상공인만 631명에 달했다. 피해액은 총 243억원으로, 피해자 1명이 8억원 가까이 잃은 사례도 있었다.

집중수사관서로 지정된 연수서는 베트남 현지 경찰 등과 공조해 수사에 착수했다. 약 한 달 만에 현지에서 총괄 지부장 등 조직원 8명의 신병을 확보했고, 지난달 이 가운데 7명을 국내로 송환해 구속했다. 최 팀장은 "송환할 때 조직원들의 옷가지를 수색하다 USB를 발견했다"며 "상여금 지급과 범죄수익 배분 내역 등이 담겨 있어 범죄 사실을 입증하는 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조직원들은 캄보디아를 거쳐 베트남으로 이동하며 범행을 이어온 것으로 조사됐다. 베트남 수용소에 머무는 동안 모두 초범인 것처럼 진술을 맞추는 등 수사를 지연시켰다.

피해자만 수백명에 달하는 데다 범행 규모가 커 수사 기록도 방대했다. 수사팀은 1만8000여쪽에 이르는 기록을 정리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수사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경찰은 현재 해외에 남아 있는 간부급 조직원을 추적 중이다. 동시에 피해 복구를 위해 피해자들에게 일일이 우편을 보내 배상명령신청제도를 안내하고, 범죄수익으로 추정되는 약 140억원을 몰수·추징 보전했다.

요리사에서 경찰로…세 차례 특진한 '베테랑 수사관'
베트남 거점 노쇼사기 조직원들이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국내 송환되고 있는 모습./사진=인천연수경찰서 제공.

최 팀장은 2006년 서른 살의 나이로 경찰에 입직했다. 이전에는 레스토랑을 운영하던 요리사였지만, 일제강점기 첩보 수집 활동을 한 독립운동가 할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경찰로 진로를 바꿨다. 늦깎이 경찰이었지만 지명수배자 87명을 검거하는 등 성과를 내며 세 차례 특진했다. 최근엔 공적을 인정받아 대통령 오찬에도 초대됐다.

최 팀장은 검찰 사칭 보이스피싱 수사에서도 성과를 냈다. 지난 7월에는 필리핀에 거점을 두고 검찰을 사칭해 약 13억원을 가로챈 보이스피싱 조직원 6명을 검찰에 넘겼다. 이들은 피해자에게 "본인 계좌가 성매매에 사용돼 수사가 필요하다"고 속여 공포감을 조성한 뒤 모텔에 스스로 머물도록 유도했다. 이후 1시간마다 상황을 보고하게 하는 등 피해자를 통제하며 돈을 가로챘다.

경찰은 아직 국내로 송환되지 않은 나머지 7명을 인터폴 적색수배하고 행방을 쫓고 있다. 최 팀장은 "처음 첩보를 입수했을 당시 조직원 전원이 해외에 있어 조직 전체를 추적하는 데 어려움이 컸다"고 했다.

범죄 조직의 활동 무대도 빠르게 넓어지고 있다. 과거 동남아시아 일부 국가에 집중됐던 피싱·스캠 조직이 여러 국가로 거점을 옮겨 다니고, 범행 수법 역시 협박이나 수사기관 사칭을 넘어 정교하게 진화하고 있다는 게 최 팀장의 설명이다.

최 팀장은 "더 이상 안타까운 피해가 생기지 않도록 '국경을 넘어 도망가더라도 언젠가는 잡힌다'는 메시지를 주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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