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가 희끗희끗한 어르신이 만원 지하철을 탔다. 지난 8일 서울 지하철 1호선 전동차 안이었다. 한 여성이 어르신을 보고 자릴 양보했다. 할아버지는 감사해하며 자신의 이야기를 꺼냈다. 귀가 어두운지 비교적 큰 소리로 대화했다.
당시 대학생 이다현씨(21)는 학교에 가고 있었다. 할아버지 맞은편에 앉아 있었는데, 대화 내용을 자연스레 듣게 됐다. 그리고 할아버지가 참전용사라는 걸 알게 됐다.
이를 안 뒤 이씨는 감사 인사를 전하고 싶었다. 할아버지가 어디서 내릴지 몰라 시간이 많지 않았다. 한편으론 고민이 되기도 했다. 이씨는 "제가 갑자기 다가가 말씀을 드리는 게 실례가 되지 않을까 싶어서 짧은 시간 동안 꽤 고민했다"고 회상했다.
그때 할아버지 옆자리가 비게 됐다. 이씨는 용기를 내었다. "마침 제 생일이라 없던 용기도 생겼던 것 같다"고 했다. 이씨가 다가가 그의 옆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물었다.
"혹시 참전용사, 참전용사이신가요?"
할아버지는 그렇다고 답했다. 이씨는 참전해주셔서 감사하다고, 할아버지에게 인사를 전했다. 할아버지는 "예, 너무 고맙습니다"라고 화답했다.
둘은 대화를 나눴다. 할아버지는 80대라고 했다. 베트남전 참전용사란 걸 알게 됐다. 한국 전쟁 때 6살이었는데 피난을 왔다고 했다. 할아버지의 과거, 가족과 삶. 이씨는 그가 태어나기도 한참 전에 있었던 이야기를 들었다.
이야기를 들으며 감사 인사를 전하길 잘했단 생각이 들었단다. 이씨는 "인사 하나로 어르신께서 생기를 되찾으신 것 같았다"며 "대화를 이어 가시려는 모습을 봤고, 함께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고 했다.
청춘에 노고를 들여 우리나라에 헌신해준 게 감사했다고. 이씨는 "그에 비하면 제가 한 건 선행이 아니라 어쩌면 너무 당연한 게 아녔나 싶었다"고 했다.
'프로젝트 솔져' 라미 작가는 한국전쟁 참전용사를 찾아다닌다. 13년 동안이나 전 세계를 누비며 참전용사를 만나 사진으로 남기고 있다. 그리고 감사하다고 전한다.
"참전용사에게 '감사합니다'라고 하는 건 단순한 인사가 아닙니다. '당신이 그때 무얼 했는지 우리가 알고 있고, 아직 기억하고 있습니다'라는 뜻이지요."
실제 미국에 가서 한국 전쟁 참전용사를 찾아가 감사 인사를 전하면, 70년이 넘었음에도 눈물을 보이는 이들이 많았단다. 라미 작가는 "자신들이 아직 잊히지 않았다는 사실을 큰 위로로 받아들인다"고 이유를 짐작했다.
미국에서는 이런 게 꽤 자연스러운 일이라 했다. 라미 작가의 아버지도 베트남전 참전 용사다. 라미 작가의 아버지가 베트남전 참전 모자를 쓰고 다니자 가는 곳마다 미국인들이 "당신의 헌신에 감사드립니다(Thank you for your service)"라고 먼저 인사를 건넸다.
라미 작가는 "거창한 기념식이 아니더라도 누군가 먼저 알아봐 주고 "기억하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라고 말하는 것. 그런 작은 인사를 통해 참전용사에 대한 기억이 다음 세대로 이어진다고 믿는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