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40층 상공 외줄서 '휘청'…"바람 어떡해" 아찔한 묘기에 숨죽인 27분

민수정 기자
2026.10.01 14:49

점심 거른 직장인·일찍 온 어르신…도심 속 '아찔한 27분'

1일 오후 서울 중구 청계광장 상공에서 슬랙라인 세계 챔피언 '얀 루스(34·에스토니아)'가 외줄타기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사진=민수정 기자.

"바람이 너무 분다. 어떡해."

1일 오후 서울 중구 청계광장. 광장을 빼곡히 채운 시민들의 시선이 일제히 하늘로 향했다. 강한 바람이 불 때마다 코리아나호텔과 동아미디어센터 사이 설치된 폭 2㎝의 가느다란 줄이 흔들렸다. 한 남성이 줄 위에 모습을 드러내자 곳곳에서 환호성이 터졌다. 흔들리는 줄 위에서 이 남성이 중심을 잡고 일어서자 시민들은 숨을 죽이고 그를 올려다봤다.

이날 광화문 도심 120m 상공에서는 슬랙라인(Slackline) 세계 챔피언 얀 루스(34)의 고공 퍼포먼스가 펼쳐졌다. 고공 슬랙라인 퍼포먼스는 이번이 국내 최초다. 에스토니아 출신인 루스는 슬랙라인 세계 챔피언을 세 차례 지낸 선수다. 과거 이탈리아 본토와 시칠리아 사이에 설치된 약 3.6㎞ 길이의 슬랙라인 횡단에도 세계 최초로 성공했다.

루스는 이날 오후 1시쯤 코리아나 호텔 옥상에서 줄 위로 올라섰다. 양팔을 벌려 중심을 잡고 한 걸음씩 나아갔다. 줄 위에 몸을 눕히거나 아래로 매달리는 묘기도 선보였다. 관중을 향해 손을 흔들 때마다 휘파람과 박수가 쏟아졌다.

거센 바람에 몸이 휘청이는 아찔한 순간도 있었지만, 루스는 약 27분 만에 두 건물 사이 320m를 왕복 횡단했다.

시민들은 퍼포먼스를 보기 위해 간식과 망원경, 카메라를 챙겨 거리를 메웠다. 인근 직장인들도 점심시간을 이용해 한 손에 커피를 든 채 동료들과 광장을 찾았다. 국내에서도 이 같은 익스트림 스포츠를 직접 볼 기회가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는 반응이 나왔다.

직장인 김명빈씨(28)는 "평소 보기 힘든 행사라 인근 회사에서 점심도 먹지 않고 왔다"며 "별도 장비 없이 중심을 잡는 모습이 너무 신기하고, 선수가 두려움을 이겨내고 끝까지 도전하는 모습도 인상적이었다"고 말했다.

자전거를 타고 현장을 찾은 김현우씨(37)는 "평소 익스트림 스포츠 영상을 많이 봐서 직접 보려고 왔다"며 "앞으로도 이런 행사가 많이 열렸으면 좋겠다"고 했다.

1일 오후 서울 중구 청계광장 일대에서 시민들이 외줄타기를 하는 선수를 지켜보는 모습./사진=민수정 기자.

행사 시작 2~3시간 전부터 광장을 찾아 자리를 잡은 시민들도 있었다. 백철기씨(75)는 "신문에서 행사를 보고 나는 분당에서, 친구는 김포에서 오기로 했다"며 "우리나라 전통 줄타기와는 또 다른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안전사고 위험도 있을 텐데 어떻게 승인이 났는지 궁금하기도 하다"고 말했다.

경찰과 소방 등은 안전관리 인력 210여명을 현장에 배치했다. 경찰은 청계광장 일대 도로의 교통을 통제하고 시민들의 통행로를 확보하는 등 안전 관리에 나섰다.

슬랙라인은 폭이 좁은 줄 위에서 균형을 잡아 걷거나 점프·회전 등 다양한 기술을 선보이는 익스트림 스포츠다. 낮은 높이에서 즐기는 형태부터 산과 협곡, 고층 건물 사이에 줄을 설치하는 고공 슬랙라인(하이라인)까지 형태가 다양하다. 세계적으로 저변이 확대되면서 국제슬랙라인협회(ISA)를 중심으로 국제 대회도 열리고 있다.

다만 고공에서 이뤄지는 만큼 사고 위험도 뒤따른다. 협회에 따르면 지난 20년간 슬랙라인을 하다 숨진 사람은 총 18명이다. 지난해 브라질에서는 20대 남성이 고가교에서 별도의 안전장치 없이 슬랙라인을 타다 약 50m 아래로 추락해 숨졌다. 지난 1월 미국에서는 헬리콥터가 공중에 설치된 슬랙라인과 충돌한 뒤 추락해 일가족 4명이 숨지는 사고도 발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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