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소설가 유재연씨가 제주 숲길을 운전할 때였다. 차창 밖 숲에 무언가 허연 게 보였다.
나무 밑에 하얀 개가 묶여 있었다. 근처에 주인이 있었다. 60대 남성이었다.
유씨가 다가가 만져보면 안 되겠느냐고 물었다. 주인이 "안 됩니다. 가세요"라고 거절했다. 개는 배가 불룩했다. 어딘가 아픈 게 분명했다. 신경이 쓰였다.
컴컴한 밤, 불빛 하나 없는 숲을 유씨가 다시 찾았다. 후레쉬 불빛으로 개를 비추었고 눈을 마주쳤다. 고독과 두려움에 짓눌린 눈이었다.
군고구마와 개껌을 들고 열흘 동안 밤마다 그 개를 찾았다. 개는 순순히 받아먹었다. 머릴 쓰다듬자 얼어붙었다. 유씨는 개에게 이름도 지어 주었다. '몽몽이'라고 지었다.
제주 동물권행동 '나우' 김란영 대표에게 개를 구하고 싶다고 했다. 김 대표는 견주에게 "개가 병이 들었다. 당장 동물 병원에 가야 한다"고 설명했다. 견주는 그러라고 허락했다. 5살이 안 되었을 거라고, 어린 강아지 때부터 숲에서 키웠단 말과 함께.
"몽몽아, 가자!"
착한 개였다. 동물병원에 데려갔는데 처음 보는 친구들에게도 꼬릴 흔들었다. 피를 뽑을 때도 얌전히 있었다. 검사 결과가 나왔다. 심장사상충이 심각하게 진행돼 있었다.
그리고 그날 밤 몽몽이가 죽었다. 처음으로 풀려난 날, 마음을 이제 놓았다는 듯이. 유씨가 당시 일을 담담히 털어놓다가 울먹이며 말했다.
"몽몽이가 이름 그대로 꿈 같은 삶을 살았어요. 악몽 같은 삶을요."
유씨는 8년 전 제주 서귀포로 왔다. 돌담을 따라 마을을 천천히 걸으며 아름답다고 생각할 무렵, 귤밭에서 개집 하나를 발견했다. 근처에 흰 개가 가만히 누워 있었다. 그 개는 차갑게 굳어 있었다. 짧은 목줄에 묶인 채로.
갈비뼈가 드러나 있었다. 굶어 죽은 것 같았다. 오지 않는 주인을, 밥과 물을 기다리다 죽었을 거라 짐작했다. 유씨는 아름다운 제주 풍경에 '작은 지옥'들이 숨어 있단 걸 알았다.
귤밭에 짧은 목줄로 묶어둔 개. 제주 사람들은 이를 '밭지킴견'이라 불렀다. 유씨는 개들을 그냥 바라보지 않았다. 다가가 개 주인을 설득하고 마을을 산책시켜 주었다. 1m 안팎이던 개들의 세상이 작은 선의로, 행복하게 확장되는 걸 봤다.
온 마을의 '묶멍이(묶여 사는 개)'들을 산책해주며 남긴 글을 모아 '귤밭의 개들'이란 책으로 냈다. 그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개들 이야기가 세상에 나가니 마음이 벅차더라고요. 책으로 나와 사람들에게 기억될 수 있다는 게. 그렇지 않았다면 돌담 속에서 평생 웅크리고 있었겠지요."
이름도 없이 짧은 목줄에 묶여 살다 심장사상충에 감염돼 죽은 개들. 그런 개들의 얼굴을 보여주고 싶었다. 이런 개들이 정말 있다고. 어둠에 파묻혀 있던 '몽몽이'를 후레쉬로 비추었듯이.
묶여 있는 동네 개들을 산책시키는 일은 쉽지 않았다. 우선 주인을 설득해야 했다. 유씨는 "사실 심약한 사람이라 견주에게 다가가는 것도 떨리는데, 그 사소한 용기로 개들의 세상이 넓어지는 거니까"라고 했다.
밤비는 3개월밖에 안 된 강아지였는데 묶여 있었다. 유씨가 다가가면 개집과 철조망 사이로 숨었다. 한 달 동안 매일 밤비를 찾아갔다. 그러던 어느 날, 밤비는 꼬리를 흔들며 마음을 열었다.
주인아저씨에게 산책해도 좋단 허락을 받았다. 밤비는 처음에 머뭇거리다 이내 신이 나서 따라왔다.
넓은 들판에 풀어놓자 밤비는 환희에 차서 뛰어다녔다. 눈이 별처럼 빛났고 네 다리는 하늘로 뛰어오를 것 같았다. - 귤밭의 개들 中
어느 날은 밤비와 바다를 갔다. 파도 소리에 당황했지만 이내 모래 위에서 춤추듯 뛰었다. 해초 내음을 맡고 도망가는 파도를 쫓아 달리기도 했다.
묶어 두며 키우지 않는 방법도 있단 것. 개들의 세상은 주인이 보여주는 만큼이라는 것. 유씨는 그리 개들의 행복한 표정으로, 주인을 가만히 설득하고 있었다.
밤비 주인에게도 권했다고 했다. 목줄을 늘려주시면 안 되느냐고. 주인은 "알아서 할게요"라고 무뚝뚝하게 거절했다. 그런데 그 다음 주에 가니 밤비 목줄이 5m 와이어 줄로 바뀌어 있었다.
다복이 할아버지는 초록색 새 산책 줄을 장만했다. 그걸 들고 처음 다복이와 함께 걸었다. 유씨가 어쩐 일인지 묻자 할아버지가 답했다.
"이놈이 산책을 이렇게나 좋아하는지 미처 몰랐지 뭐야."
할아버지는 천천히 좀 가라고 혼내면서도 다복이의 걸음에 맞춰주었다. 쇠사슬에 묶여 있었던 시간이 반짝이며 흘렀다.
그러지 못한 주인도 물론 있었다. 1년 반을 산책해주며 돌봤던 씽씽이는 돌연 사라졌다. 귤밭을 다 돌며 뒤졌다. 씽씽이 주인인 할아버지를 추궁하니 또 다른 귤밭에 두었다고 했다.
유씨는 "사람이 아무도 가지 않는 곳이었다. 그전에는 삼나무 그늘이라도 있었는데, 그마저도 없었다"며 "한여름 땡볕에 삶아져 죽으라는 것 같았다"고 했다.
파라솔을 세우겠다고 하니 알아서 하겠다며 할아버지는 거절했다. 그 뒤 씽씽이를 결국 구조했다.
단절된 존재들에게 관심을 품게 된 건, 그 역시 세상과 단절되어 본 적이 있어 그 마음을 잘 알기 때문이었다.
"집이 지붕도 없고 문도 없고 내리는 비도 눈도 그대로 맞는 곳이었어요."
유씨는 어릴 적 살았던 집을 그리 비유했다. 그의 아버지는 알코올 중독에 조울증이 있었다. 밤마다 욕하고 부수고 그를 때렸다. 한 번은 크리스마스 때 아버지를 위해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을 쳐주려 연습하다 잠들었었다. 잠에서 깼을 때 아버지는 뭔가를 부수며 욕하고 있었다.
방 안에 늘 숨어 있었다. 그 안에서 책을 봤다. 책 속 세상이 실재하는 것이고 현실이 가짜라는 관념이 생겼다. 좋아하던 책은 '아기 돼지 삼 형제'였다. 늑대가 계속 오는데 돼지가 이를 방어하는 이야기. 유씨는 "그런 방어막을 내내 원했던 것 같다"고 했다.
20대 때는 조울증 진단도 받았다. 몇 년 안에 자신이 죽을 거란 이상한 망상도 찾아왔다. 사람이 대체 마음이 있는 걸까, 기계 인간이란 생각이 들었다고. 인간은 무섭고 나를 해치는 존재라고, 아버지 영향이 있었던 거였다.
그 고립과 단절을 알기에, 그는 돌담 너머의 개들에게 눈길을 주고 나란히 걸어주는 이가 될 수 있었다. 그 역시 단절되는 게 더 좋다고 여긴 때가 있었다. 이젠 안다. 존재와 존재 사이의 이어짐이 더 소중하단 걸.
모든 개를 구할 수 없지만, 그가 할 수 있는 만큼은 세상을 넓혀주고 있다고. 그러면서도 여전히 떠돌이 개가 많다고, 차를 타고 가다 보면 그쪽으로 가지 말라 하고 싶다고, 그 끝에 죽음이 있단 걸 알기에 그렇다고 유씨는 말하던 도중 울었다.
더 널리 닿길 바라며 밭지킴견 '대봉이'로 릴스 영상까지 찍는 사람. 조회수 300만 명을 넘기는 콘텐츠로 만들어 밭지킴견 현실을 알리는 사람. 그리하여 티셔츠까지 만들어 그 수익금으로 심장사상충에 감염된 개들을 치료해주려는 사람. 유씨가 끝으로 그의 바람을 이야기했다.
"개의 세상은 사람이 펼쳐내는 만큼이에요. 모두 개성이 있다고 살아 숨 쉰다고 다 귀하다고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사람들에게도 말하고 싶었어요. 다들 뭔가에 매여 살거든요. 스스로 매고 있는 짧은 목줄을 벗어나 돌담 밖으로 나가달라고. 개들이 해낸 용기를 전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