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여대 이소민(21)은 조금 특별한 세터다. 177㎝의 장신에 공격 경험까지 갖췄다. 무엇보다 한 번 놓쳤던 세터의 꿈을 대학에서 다시 붙잡았다.
초등학교 2학년 때 배구를 시작한 이소민은 중학교까지 줄곧 세터였다. 그러나 강릉여고 진학 후 팀 사정으로 공격수로 전향했고 전주 근영여고로 전학, 다시 우석대로 진학해서도 세터를 꿈꿨지만, 공격수로 뛰었다. 기본적으로 강한 서브와 스파이크를 갖춘 이소민의 공격력을 포기하지 못한 탓이다.
결국 2학년을 마친 뒤 배구를 그만두는 것까지 고민했다. 그때 손을 내민 곳이 광주여대였다. 이소민은 최근 광주여대에서 스타뉴스와 만나 "최성우 감독님께서 세터로 키워주시겠다고 했고, 기회가 왔을 때 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돌고 돌아 다시 세터를 하게 된 과정이 쉽지만은 않았다. 이소민은 "공백이 너무 컸다. 토스를 하러 뛰어 들어가야 하는데 공격하려고 빠질 때도 있었다. 대학생이면 그만큼 레벨이 올라가 있는데 나는 중학교 때까지만 세터를 했다. 내가 아직 중학교 수준에서 토스하고 있다는 걸 인정하고 따라잡는 게 힘들었다"라고 솔직한 심정을 밝혔다.
그래서 더 매달렸다. 야간 훈련이 끝난 뒤에도 그날 호흡이 맞지 않았던 공격수를 붙잡고 다시 공을 맞췄다. 다른 선수에게 공을 던져달라고 부탁하며 토스를 반복했다.
노력은 결과로 나타났다. 광주여대는 지난 7월 경남 고성군 실내체육관에서 열린 '2026 대한항공배 전국대학배구 고성대회'에서 예선부터 결승까지 단 한 세트도 내주지 않고 정상에 올랐다. 결승에서도 강호 우석대를 3-0(25-17, 25-21, 25-16)으로 완파하며 대회 2연패를 달성했다.
과정은 더욱 특별했다. 최성우(34) 감독이 지난 6월 U-리그에서 받은 징계로 벤치에 설 수 없는 상황이었다. 선수들 스스로 답을 찾아야 했다. 이소민은 "첫 경기부터 경기가 잘 안 풀렸다. 그래서 선수들끼리 '우리가 우승하려면 이렇게 하면 안 된다'고 정말 많은 이야기를 했다"며 "기합을 넣는 것보다 서로 대화를 훨씬 많이 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4학년 김민주(22)를 중심으로 선수들이 똘똘 뭉쳤고 결국 '무실세트 우승'이라는 결과를 만들었다.
지난달 단양대회에서는 전혀 다른 역할이 기다리고 있었다. 현대건설 출신이자 고성대회 MVP 김민채(20)가 수원시청으로 향했고 4학년 선수들도 취업 준비로 빠졌다. 주축 선수들의 부상까지 이어졌다. 결국 세터였던 이소민은 다시 아웃사이드히터로 코트에 섰다.
3일 연속 5세트 경기를 치르는 강행군 속에서도 광주여대는 준우승을 일궈냈다. 이소민은 "공격을 못 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보여줄 만큼은 보여줬다고 생각한다"면서도 "다친 선수들이 많다 보니 빨리 끝내야 한다는 조급함이 있었고 체력적인 부담도 컸다"고 돌아봤다.
최성우 감독이 이소민의 가능성을 높게 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최 감독은 "운영 능력이 있는 세터"라면서도 "공격 파워도 좋고 리시브도 된다. 특히 서브가 굉장히 강하다. 세터로도, 공격수로도 활용할 수 있는 선수"라고 평가했다. 이어 "의지와 투지가 좋다. 본인이 무언가 하나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으면 어떻게든 해내려고 애쓰는 선수"라며 "프로에서도 충분히 활용할 수 있는 자원이 있다고 본다"고 강조했다.
선수 본인도 공격수 경험이 세터로서 약점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소민은 "공격을 해봤으니까 어떤 상황에서 어떤 공을 올려줘야 공격수가 편하게 때릴 수 있는지 안다. 키도 있는 편이라 높은 곳에서 토스를 할 수 있고 넘어가는 공을 잡을 수 있는 것도 내 장점"이라고 자신감을 드러냈다.
세터로서 그리고 싶은 배구도 확실하다. 빠르고 힘 있는 토스를 공격수의 타점까지 정확하게 전달해 상대 미들블로커가 따라오지 못하게 만드는 배구다. 롤모델도 태국 국가대표 출신이자 IBK 기업은행에서 활약했던 폰푼 게드파르드(33·등록명 폰푼)다.
이소민은 "세터는 팀 전체를 움직이는 것이 매력이다. 세터가 토스를 어떻게 해주느냐에 따라 공격수가 편하게 득점할 수 있다"라며 "폰푼 선수가 V리그 왔을 때 토스를 정말 잘한다 싶었는데, 지난 아시안게임 때도 너무 잘해서 그렇게 되고 싶었다. 볼 컨트롤이 너무 좋았다"고 감탄했다.
한때는 배구를 그만두고 스포츠 마케팅을 공부하는 길까지 고민했다. 실제로 지금도 광주여대 배구부 SNS를 직접 운영할 만큼 스포츠 홍보에 관심이 많다. 쉴 때면 집 근처 수원월드컵경기장에 가 프로축구 수원 삼성을 응원한다.
이소민은 "평소엔 먹고 자면서 스트레스를 푼다. 축구를 좋아해서 축구도 많이 본다. 20살 때 빅버드에 많이 갔고 올해는 한 번 갔다. 가끔 보다가 스트레스도 받는다"라며 "우석대 시절에도 배구부 계정을 운영해봤는데 그러면서 스포츠 마케팅에 관심이 생겼다"고 말했다.
그래도 결국 가장 하고 싶은 일은 코트에 서는 것이다. 고교 졸업 당시 프로로 직행하지 못했고, 대학에서도 포지션을 여러 번 오고 가다 이번 2026 한국배구연맹(KOVO) 신인드래프트에서 다시 프로의 문을 두드린다. 돌고 돌아온 시간은 어쩌면 이소민에게 가장 큰 무기가 됐다.
이소민은 프로에서 어떤 포지션을 원하는지 묻자 망설이지 않았다. 그는 "나는 어떤 포지션으로 가도 괜찮다. 일단 뽑힌다는 것 자체로 기분 좋을 것 같다"고 미소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