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들어 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 국내 주식시장 TOP2 주가가 급등하자 유럽 자산운용사들이 분주해졌다. 국가·종목별 투자비중 상한선에 도달하면서 리밸런싱이 불가피한 포트폴리오가 속출했기 때문이다. 일부 대형 운용사·연기금은 관련주로 우회투자를 시도했지만 이마저도 시가총액 등 내규 문턱에 걸리자 아쉬움을 표출했다는 후문이다.
국내 증권사들의 발길은 오랜 미개척지로 여겨지던 유럽에서도 탄력이 붙고 있다. 유럽은 40여년 전 초기 해외진출지 중 하나였지만 큰 성과를 거두진 못한 터다. 그러나 철옹성으로 여겨지던 현지 시장도 코스피 랠리 바람을 타고 최근 진입로가 열리는 분위기다.
30일 금융감독원 등에 따르면 영국·룩셈부르크·아일랜드·네덜란드 등 유럽권 9개국령 외국인 투자자의 한국 상장주식 합산 보유액은 지난달 말 기준 702조원으로 전년 동시점 대비 137.2% 늘었다. 코스피 상승률(114.1%)을 웃돈다.
최근 한국을 향한 유럽 금융가의 관심은 현지에 진출한 국내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들은 쉽게 느끼고 있다고 한 목소리로 말했다. 한중석 한국거래소 런던사무소장은 "지난해까지만 하더라도 한국에 대해 '좀 더 지켜보자'는 시각이 존재했지만, 올 들어선 외면할 수 없는 시장으로 여기는 듯 하다"며 "현지 투자은행(IB)과 개최한 투자설명회(IR)는 지난해 대비 참여도가 매우 높았고 질문의 수준도 깊어졌다"고 했다.
그간 유럽은 한국 증권업계의 험지로 통했다. 초기 현지 기관투자자들에 한국물을 중개하는 사업을 주로 영위했지만 큰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투자자산이 연금·보험·펀드에 집중돼 기관 영향력이 큰 시장 특성 상 시장 진입이 쉽지 않은데다 길게는 100년 이상 뿌리내린 글로벌 금융사들의 업력이 이중 문턱으로 작용해서다. 2010년대 초엔 현대증권·신한금융투자 등이 잇따라 유럽법인을 철수하기도 했다.
최근 한국 증시에 대한 인식 개선 흐름에 따라 런던에 잔류한 한국 증권사들은 각자 특화한 생존전략을 중심으로 유럽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고삐를 죄고 있다. 한국투자증권·삼성증권은 유럽 내 기관을 겨냥한 한국물 브로커리지, NH투자증권은 현지 인프라·기업금융 딜 발굴에 주력한다. 미래에셋증권은 브로커리지·IB·자기자본(PI) 등 업무를 병행하던 현지법인에 더해 상장지수펀드(ETF) 시장조성사를 인수하고 PI 투자용 법인을 신설하는 등 저변 확대에 나섰다.
증권사 해외 순익이 전체 순이익의 8.7% 수준(지난해 기준)으로 높지 않은데다 유럽 지역 비중은 전체 해외법인 순익의 5%도 채 되지 않을만큼 미미하다. 각 증권사 별로도 유럽 지역 수익은 크지 않은 상황이다. 각사 반기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한국투자증권·삼성증권·NH투자증권 런던법인의 순영업이익은 각각 20억원 안팎에 그친다. 해외법인 실적을 합산 공시하는 미래에셋증권은 2분기 런던에서 세전이익 1096억원을 거둔 것으로 추산되지만, 국가별 이익비중은 18%로 미국(37%)·홍콩(35%)에 밀렸다.
다만 유럽은 자금이 풍부한 선진 자본시장에 교두보를 유지, 동향을 파악하며 얻는 전략적 중요성 측면에서 소홀히 할 수 없는 지역이라는 지적이다. 금융당국과 주요 증권사들이 현지 IR 등을 수차례 개최하는 이유다. 금융감독원은 이달 초 런던에서 이찬진 원장 주재로 현지 기관 고위관계자 초청 비공개 IR행사를 개최한 바 있다. 골드만삭스·모건스탠리·핌코 등 글로벌 대형 IB 7곳과 자산운용사 15곳 등 총 22개사가 참석했고 신한금융지주·우리금융지주·한국투자증권·NH투자증권 등 국내 금융사들도 함께 했다.
한국의 기업가치 제고(밸류업) 노력 역시 기업 내재가치를 중시하는 유럽 기관의 호응을 얻는 추세다. 기민석 한국투자증권 런던법인장은 "초기 2~3년간 무반응으로 일관하고도 막상 거래를 시작하면 10~20년씩 지속하는 게 유럽"이라며 "현재는 유럽의 패밀리오피스와 관계를 구축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새 고객을 확보할 때 얻는 희열이 있다"고 했다.
한국 내 정책·시장이 급변하는 가운데서도 지역 전문성을 바탕으로 전망과 대응방안을 발빠르게 제공하는 우리 증권사의 가교 역할 역시 브로커리지·IB 등 업종을 불문하고 현지에서 조명받는 추세다. 글로벌 증권사와 차별화한 유연함과 맞춤형 서비스로 새 먹거리를 노린다.
이용성 NH투자증권 런던법인장은 "글로벌 증권사나 대비 몸집이 작지만, 그만큼 현지 네트워크 구축·유지에 집중할 수 있다"며 "서울과 여타 금융거점과 협력해 '원팀'으로 딜을 발굴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