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자산운용사들이 인공지능(AI)과 반도체 관련 ETF(상장지수펀드)를 잇달아 선보이고 있지만 정작 투자자들의 자금은 MMF(머니마켓펀드) 등 파킹형 상품으로 향하고 있다. 반도체 산업의 성장 기대감은 여전하지만 증시 변동성이 다시 확대되면서 공격적인 투자보다 현금성 자산 확보에 무게를 두는 모습이다.
14일 금융투자업계와 ETF체크 등에 따르면 지난 8월 이후 한국거래소(KRX)에 신규 상장된 ETF 29개 중 AI·반도체 관련 상품은 17개로 약 59%를 차지했다. 신규 상장 상품 10개 중 6개가 관련 ETF인 셈이다.
이달에도 신규 상장된 5개 상품 가운데 KODEX 미국AI에이전트액티브, DS AI반도체액티브, SOL 글로벌DRAM반도체플러스 등 3개가 AI·반도체와 관련됐다. 최근에는 반도체 업종 전반에 투자하는 상품을 넘어 HBM(고대역폭메모리), D램, 낸드플래시 등 세부 산업에 집중하는 ETF까지 등장하며 상품 구성도 다양해지고 있다.
그러나 실제 자금 흐름은 다르다. 최근 증시 변동성이 확대되면서 주식형 ETF보다 단기자금을 운용할 수 있는 파킹형 ETF에 자금이 몰린다. 파킹형 ETF는 단기채권이나 금융상품 등에 투자해 비교적 안정적인 수익을 추구하는 상품으로, 투자 대기자금을 일시적으로 운용하는 데 활용된다.
최근 1개월간 자금 순유입 1위는 KODEX 머니마켓액티브로 2조5278억원이 들어왔다. 2위인 KODEX 미국나스닥100(7439억원)의 3배가 넘는다. ACE 머니마켓액티브(5178억원), KODEX 단기채권(3945억원), KODEX CD금리액티브(합성)(2672억원), MIDAS 머니마켓액티브(1849억원) 등에도 자금이 유입됐다.
반면 조회 기간을 6개월로 확대하면 자금 순유입 상위 20개 상품 중 파킹형 ETF는 KODEX 머니마켓액티브 한 개뿐이다. 파킹형 상품에 대한 관심이 최근 들어 상대적으로 높아졌다는 의미다.
이 같은 흐름은 최근 국내 증시의 불확실성과 무관하지 않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주요 반도체 기업의 실적 성장 기대감에도 외국인 매도세와 글로벌 지정학적 위험이 맞물리면서 시장 변동성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반도체 산업의 중장기 성장성에는 공감하면서도 당장의 주가 상승에는 확신하지 못하는 투자자들이 늘고 있다는 분석이다.
한수진 삼성증권 연구원은 "지난 한 주간 국내 설정액 증가 상위 10개 ETF 중 5개가 파킹형 상품이었다"며 "국내 증시의 방향성에 대한 불확실성이 파킹형 ETF로의 자금 유입을 지속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관건은 파킹형 ETF에 유입된 자금이 다시 주식시장으로 이동할지 여부다. 이달 코스피 일평균 거래대금은 21조원으로 지난 4월과 5월 약 50조원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투자 대기성 자금인 투자자예탁금도 상반기 한때 130조원대 후반까지 늘었지만 최근에는 100조원 안팎에 머물고 있다.
증권업계 한 관계자는 "시장 불확실성이 장기화하면 신규 상품 출시와 관계없이 현금성 ETF에 자금이 머무는 현상이 지속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