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여당이 '한국형 베어허그제' 도입을 위한 연내 입법을 추진하는 가운데 금융감독원 용역보고서에 공개매수에 대한 이사회 의견표명 의무화에 더해 인수자의 공개답변까지 요구하는 방안이 담긴 것으로 확인됐다. 현재 발의된 법안과 보고서 모두 이사회가 인수 제안을 검토하고 주주에게 입장을 밝히도록 한다는 점에서 방향이 같다. 보고서는 여기에 대상회사의 공개질문과 공개매수자의 답변, 일정한 경우 공개매수기간 변경·연장 요청까지 제안해 앞으로 입법 논의에 반영될지 주목된다.
14일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박홍배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을 통해 머니투데이가 입수한 금감원의 '최근 경영권 분쟁 관련 제도 개선방안' 용역보고서에는 이 같은 공개매수제 개선안이 포함돼 있다. 보고서는 자본시장연구원이 지난해 11월 금감원에 제출한 것으로, 총 142쪽 분량이다. 경영권 분쟁 관련 제도를 검토하면서 공개매수 과정의 정보공개와 이사회 역할을 다뤘다.
보고서의 제안은 오기형 더불어민주당 K자본시장특별위원장이 지난달 3일 대표발의한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과 직접 맞닿는다. 한국형 베어허그제 도입 법안으로 불리는 이 개정안은 공개매수에 대한 의견표명을 규정한 제138조를 고치는 내용을 담았다. 현행법은 의견표명을 대상회사의 선택에 맡기지만 개정안은 주주에게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공개매수 중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경우 이사회가 독립적·전문적 판단 절차를 거쳐 반드시 의견을 밝히도록 했다.
베어허그는 높은 인수가격을 제시해 대상회사 경영진을 압박하는 인수 전략이다. 인수자가 가격과 기간 등을 제시하고 주식을 사들이는 공개매수에 나서면 주주는 매각 여부를 선택해야 한다. 한국형 베어허그 입법은 이때 이사회가 침묵하지 않고 판단을 설명하도록 해 주주의 선택을 돕겠다는 취지다. 금감원 용역보고서 역시 공개매수에 대한 이사회의 설명책임을 강화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보고서는 현행 제도에서 공개매수에 관한 의견표명이 법적 의무가 아니어서 이사회의 역할과 책임이 충분히 정립되지 않았다고 진단했다. 이에 자본시장법이나 하위규정을 개정해 공개매수 상황에서 찬성·반대·중립 등 회사의 의견과 근거를 공시하도록 의무화하고, 의견표명에 앞서 이사회 결의를 거치도록 할 것을 제안했다.
특히 보고서는 이사회가 입장을 밝히는 데 필요한 정보를 인수자에게 요구하고 그 답변을 주주도 확인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까지 담았다. 대상회사가 공개매수자에게 일정한 질문을 공개적으로 하고 공개매수자도 공개적으로 답변하도록 하자는 것이다. 일정한 경우 대상회사가 공개매수기간 변경이나 연장을 요청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도 제시했다. 공개질문·답변과 기간 변경·연장 요청은 현재 오기형 의원안에는 없는 내용이다.
증권가에서는 에스엠 경영권 분쟁에서의 이사회 의견표명을 대표적 사례로 꼽는다. 에스엠 이사회가 2023년 하이브 공개매수에는 반대 의견을 표명한 반면 카카오의 공개매수에는 의견을 내지 않아 에스엠 주주들은 '회사(에스엠)가 카카오 손을 들어줬다'는 메시지를 읽어냈다.
올해 들어 공개매수에 관한 의견표명 공시도 늘었다. 금감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공개매수에 관한 의견표명은 2024년 3건, 2025년 2건에서 올해 들어 10건으로 늘었다. 골프존홀딩스 이사회는 에스제이투자홀딩스 주식회사의 공개매수 제안에 찬성한다는 의견을 지난 8월 공시했고, 더존비즈온은 지난 4월 도로니쿰 주식회사의 2차 공개매수에 찬성한다는 의견과 함께 주주에게 '공개매수 응모'를 권했다.
베어허그제 도입 법안을 대표발의한 오 위원장실도 입법 과정에서 금감원 용역보고서를 살펴볼 계획이다. 금융당국 역시 법안 의견수렴 과정에서 용역보고서를 참고해 의견을 낼 전망이다.
이사회의 주주 충실의무를 강조해온 여당은 의견표명 의무화에 힘을 싣고 있다. 박 의원은 "기업 인수·합병 과정에서 일반주주의 권익이 충분히 보호돼야 한다"며 "주주들이 합리적인 판단을 내릴 수 있도록 정보공개를 강화하고, 기업가치 제고와 자본시장의 신뢰를 높이는 방향으로 제도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