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마지막 왕이 직접 쓴 현판과 조선 후기의 명필이 남긴 글씨가 일본에서 한국으로 돌아왔다. 18~19세기 제작돼 학술 가치가 높은 유산이지만 소재를 파악하지 못하다가 한 형제의 노력으로 환수에 성공했다.
국가유산청과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은 8일 서울 종로구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순종예제예필현판'과 '백자청화이진검묘지'의 합동 기증식을 열었다. 캐나다 밴쿠버에 거주하는 김창원씨(53)와 일본 도쿄에서 거주 중인 김강원씨(52)의 문화유산 기증을 기념해 열렸다. 형제인 두 사람은 이 유산들을 구입해 소장하다가 고국으로 돌려주기로 결정했다.
동생 강원씨가 기증한 현판은 조선의 마지막 왕인 순종이 세자 시절 직접 글을 쓴(예제예필) 나무 현판이다. 1892년 경복궁에서 열린 연회 당시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며, 먹색 바탕에 녹색 글씨가 쓰였다. 재단 관계자는 "글씨를 녹색으로 칠한 것은 흔치 않은 사례"라며 "(현판의) 글씨가 귀하다는 상징성을 반영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현판은 궁궐에서 보관 중이다가 일본으로 건너가 곳곳을 떠돌았다. 구체적인 유출 경위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2024년 일본의 경매에 출품됐고, 현지에서 고미술 거래업체 '청고당'을 운영 중인 강원씨가 낙찰받아 재단에 기증했다.
형 창원씨가 기증한 '백자 묘지'는 고인의 생애나 업적을 적어 무덤에 묻는 돌이나 판인 '묘지'다. 푸른색 안료를 썼으며 총 10점이다. 조선 후기 예조판서를 지낸 문신 이진검을 기리는 것으로 1745년경 제작됐다. 이진검의 아들이자 조선 후기의 명필로 꼽히는 이광사가 글을 쓰고, 이조판서를 지낸 문신 이덕수가 글귀를 지었다.
이광사의 글씨가 대부분 행초서(획을 흘려 쓰거나 생략하는 서체)에 집중돼 있지만 예서(편리한 서체)로 쓰였다는 점에서 가치가 높다. 창원씨는 일본의 고미술 가게를 둘러보다 이 묘지를 발견했고, 구입한 뒤 동생과 함께 기증했다.
유산재단은 형제가 동시에 우리 문화유산의 환수를 위해 힘썼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남다르다고 설명했다. 특히 동생 강원씨는 이번 현판 기증을 합쳐 4차례나 우리 문화유산을 기증했다. 강원씨는 이날 기증 이유를 묻는 말에 "조선 왕실의 유물인 현판은 경복궁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답했다. 형 창원씨도 "문화유산은 제자리에 있을 때 가치를 온전히 드러낼 수 있다고 봤다"고 말했다.
두 형제는 이날 기증식에서 허민 국가유산청장으로부터 감사패를 전달받았다. 박정혜 재단 이사장은 "기증자들의 소중한 뜻이 국외문화유산의 연구와 보존·활용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