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말할 기회를 원하지만, 사실은 이해받고 싶어 한다.'
2015년경, 그러니까 내가 기자에서 정책홍보 업무로 넘어가던 시절, 정부 기관을 포함한 많은 공공기관에서는 '소통'이라는 표현이 '홍보'라는 단어를 대신하기 시작했다. 홍보팀은 소통팀으로 이름을 바꾸었고, 기관들은 앞다투어 '쌍방향 커뮤니케이션'을 이야기했다. 일방적으로 알리는 시대는 끝났고, 이제는 국민과 함께 이야기해야 하는 시대라고 했다. 당시에는 그것이 더 진보적이고 민주적인 방향처럼 느껴졌다.
그런데 현장에서 홍보 업무를 10년 넘게 하면서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홍보'를 대신한 이 '소통'이라는 단어가, 과연 내가 알고 있는 그 소통이 맞을까. 어떤 이들은 여전히 '커뮤니케이션 부족'을 이야기하지만, 지금은 오히려 '커뮤니케이션 과잉 시대'에 가깝다. 사람들은 눈을 뜨는 순간부터 잠들기 직전까지 끊임없이 연결되어 있다. 그런데 연결의 방식이 많아진 만큼, 사람들은 서로를 이해하기보다 자신을 드러내는 데 더 익숙해지고 있다. 모두가 말하고 있지만, 정작 상대의 심정까지 도달하는 경우는 생각보다 드물다.
우리가 쓰는 표현의 형식도 함께 변하고 있다. '좋아요'는 한 번의 클릭으로 관심과 호감, 의례적 반응을 한꺼번에 대신한다. 이모지는 한 글자도 안 되는 자리에 기쁨과 분노, 공감과 거부를 압축한다. 우리는 더 많이 표현하지만, 더 짧고 단순하게 반응한다. 표현의 도구는 풍부해졌지만, 의미의 결은 오히려 얇아진다.
물론 이것을 단순히 퇴행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인류의 소통은 언제나 새로운 기호를 만들어왔다. 말로 다 할 수 없는 것을 그림으로 남겼고, 기억해야 할 것을 문자로 새겼으며, 멀리 있는 사람에게 마음을 전하기 위해 편지와 전신, 디지털 메시지를 만들어왔다. 문제는 새로운 표현 수단의 등장이 아니라, 그 표현이 무엇을 가능하게 하고 무엇을 생략하게 만드는가에 있다.
이모지가 감정을 압축한 기호라면, '좋아요'는 감정을 수치화한 반응 장치에 가깝다. 둘은 모두 오늘의 사람들이 의미를 주고받는 방식이지만, 동시에 의미를 단순화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좋아요'는 반응일 수는 있지만, 언제나 소통은 아니다. 소통은 누군가의 말에 표시를 남기는 일이 아니라, 그 말이 나온 마음의 자리까지 잠시라도 가보려는 일이기 때문이다. 조회 수와 '좋아요' 수는 반응의 크기를 보여주지만, 이해의 깊이를 보여주지는 못한다. 이것은 새로운 문제가 아니다. 인간 사이의 오래된 거리가 플랫폼이라는 새로운 형식으로 드러났을 뿐이다.
국립세계문자박물관에서 말하는 '문자'는 단순히 글자(letter)의 모양만을 뜻하지 않는다. 좁게는 문자 체계(writing systems)를 다루지만, 그 바탕에는 인간이 생각과 감정, 기억을 외부의 기호로 옮겨온 방식에 대한 관심이 있다. 그런 점에서 그림과 표식, 이모지와 로고처럼 의미를 압축해 전달하는 기호 문화 역시 함께 사유할 수 있다. 이 자리에서 보면, '좋아요'와 이모지도 오늘날 사람들이 감정과 의미를 주고받는 기호적 장치다. 다만 모든 기호가 그렇듯, 그것들은 무언가를 전하는 동시에 무언가를 덜어낸다. 공감의 표시가 많아졌다고 해서 공감의 능력이 깊어진 것은 아닐 수 있다.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는가, 무엇이 흘러가고 무엇이 남는가. 박물관이 던지고 싶은 질문은 이런 것이다.
어릴 적 시골집 장독대에는 늘 옹기들이 놓여 있었다. 옹기 표면에는 수많은 미세한 숨구멍이 있어 공기와 습도를 천천히 주고받고, 그렇게 안의 음식은 천천히 발효되고 오래 보존된다. 진짜 소통도 어쩌면 그런 것인지 모른다. 끊임없이 소리를 내고 즉각적으로 되돌려 말하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틈으로 천천히 서로의 온도와 마음을 주고받는 일. 상대의 말에 반응하는 것을 넘어, 그 사람의 심정까지 헤아리려는 태도 말이다.
돌이켜보면 문자도 그렇게 만들어져왔다. 새겨진 글자 하나가 천 년을 건너 우리에게 도착하는 것은, 그 문자가 빠른 답을 위해서가 아니라 오래 남기 위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문자는 즉각적인 반응보다 오래 지속되는 의미를 선택해 온 인류의 방식이었다.
홍보와 소통은 서로 대립하는 개념이 아니다. 좋은 홍보는 결국 사람을 이해하려 하고, 좋은 소통 역시 방향성과 책임을 가진 메시지가 필요하다. 중요한 건 용어의 차이가 아니라, 어떤 기호로 어떤 의미를 어떻게 남길 것인가다. 우리는 매일 기호를 사용하고 있다. 하트를 누르고, 엄지를 보내고, 짧은 댓글로 마음을 표시한다. 그러나 새 기호가 늘었다고 해서 우리가 더 잘 통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수천 년 전 사람들이 돌과 뼈에 글자를 새긴 것은, 빠른 응답이 아니라 오래 도착하는 한마디를 위해서였다. 진짜 소통이 만들어지는 자리도 화면 위의 빠른 반응이 아니라, 화면을 끄고도 마음에 남는 어떤 흔적 속에 있다.
필자는 종합여성지 <Queen>과 월간 <문학사상>에서 편집장으로 일했으며 현재 국립세계문자박물관 홍보디자인부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박물관 브랜딩과 전시 커뮤니케이션, 문화콘텐츠 기획 업무를 맡고 있으며 '콘텐츠는 인간을 어떻게 움직이는가', '문화기관은 어떤 질문을 남겨야 하는가'에 관심을 두고 있다. 언론과 문화기관 현장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콘텐츠와 인간의 관계를 시대 감각의 관점에서 관찰하고 기록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