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능(궁궐, 왕릉)을 찾는 국내외 관람객들이 급증하며 곳곳에서 훼손·오염 문제가 잇따른다. 관리 주체인 국가유산청이 관람질서 준수를 당부하고 나섰지만, 실효성 있는 제도적 보완도 함께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유산청은 17일 경복궁~광화문 일대에서 관람질서 준수 캠페인을 개최했다. 허민 유산청장과 서울경찰청·수도방위사령부 관계자 등이 나서 관람객들에게 질서있는 관람을 호소했다. 훼손에 취약한 지역을 점검하고 낙서나 흡연 등 행위 자제를 요청했다.
허 청장은 "다음주부터 추석 연휴가 시작되는 만큼 (관람객들에게) 관람 질서를 지켜달라는 말씀을 드리고 있다"며 "외국인 관람객들도 동참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캠페인은 최근 궁능 관람객 급증과 함께 치솟고 있는 훼손 사례에 대응하기 위해 마련됐다. 유산청 집계에 따르면 지난해 궁능을 찾은 관람객은 1781만명이며, 올해는 이보다 늘어 2000만명에 육박할 전망이다. 궁능유적본부 관계자는 "한정된 인력과 비용으로 급증하는 관람객에 모두 대응하기는 어려움이 있어 자발적인 관람 질서 준수를 당부하고 있다"고 말했다.
자발적 준수 홍보 캠페인 외에도 위반 사례에 대한 실질적인 단속과 규정 손질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화유산법은 국가지정문화유산을 손상할 경우 3년 이상의 유기징역과 원상 복구 비용 등 민·형사상 책임을 지도록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수용 능력을 벗어난 관람객이 몰리면서 적발이 어려워졌고, 일부 훼손 사례는 처벌 규정조차 없다.
외국인 관광객에 의한 훼손이 대표적이다. 수가 많고 국적이 다양해 범행을 저지르더라도 출국해 버리면 잡을 방법이 없다. 지난 2월에는 관람 질서 준수를 요구하는 경복궁 경비원을 폭행한 중국인들이 제지 없이 출국해 논란이 됐으며, 경복궁 돌담 인근에서 용변을 본 외국 관광객도 범칙금 5만원 부과 외에 별다른 제약 없이 한국을 떠났다.
관련 규정 역시 미비하다. 경복궁 일대를 누비는 '러닝크루'(달리기 모임)가 대표적이다. 많게는 십수명이 무리지어 달리며 다른 관람객들을 방해하지만, 처벌 규정이 없어 단속이 어렵다. 고궁박물관이 '보관함에 러닝용품을 맡기지 말아달라'는 권고문을 붙이는 게 전부다. 온라인에서 유행이 된 창호지 구멍 뚫기도 문제다. 관람객들이 궁궐 창의 창호지를 손가락으로 뚫어도, 관련 처벌 규정이 없다.
해외는 유산 훼손을 엄중 처벌한다. 영국은 문화재를 훼손하면 경중에 따라 제한 없는 '무한 벌금'이 부과될 수 있으며, 프랑스는 고의 여부에 따라 우리나라의 2배가 넘는 최대 7년의 징역에 처해질 수 있다. 일본 역시 문화청이 훼손 단속·문화재 보존 등 강력한 권한을 갖고 있으며, 최근 훼손범에 5년 이하의 징역을 부과하는 내용으로 형량을 강화했다.
문화유산계는 보다 강력한 처벌과 인력·비용 충원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경복궁 내부에는 400여대의 CC(폐쇄회로)TV가 운영 중이지만 축구장 60여개 크기인 면적을 고려하면 한계가 있다. 문화유산계 관계자는 "국적을 불문하고 유산 훼손은 강하게 처벌해야 한다"며 "외국인도 단속할 수 있도록 법적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