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비수도권 사업에 대한 예비타당성(예타) 조사 기준이 완화된 이후 2년 동안 예타 조사 44건 중 가운데 3건만이 사업타당성이 없는 것으로 판단됐다. 경제성을 중시한 기존 방식으로는 지방 사업 추진이 어렵다는 비판에 따라 예타 문턱을 낮춘 결과다. 최근 정치권에서 추진하는대로 예타 조사 주관 부서까지 기획재정부에서 각 사업부처로 바뀌면 사실상 예타 제도가 무력화될 것이란 우려가 제기된다.
28일 한국개발연구원(KDI) 공공투자센터에 따르면 2019~2020년 예타 조사를 마친 사업은 총 44건, 사업비 기준으로 79조296억원어치다. 현행 국가재정법상 총사업비가 500억원 이상이고 국가 재정투입이 300억원 이상인 건설공사·지능정보화사업·국가연구개발(R&D) 사업과 중기사업계획서상 재정지출이 500억원 이상인 사회복지·보건·교육·노동·문화사업 등에 대해선 예산 편성 전 예타 조사를 진행해야 한다.
44건 가운데 B/C(비용 대비 편익), AHP(종합평가) 분석상 계량평가가 가능한 사업은 41건, 이 가운데 3건을 제외한 38건이 종합평가 통과기준인 0.5점 이상을 충족했다. 10건 중 9건 이상이 예타 조사를 통과했다는 얘기다. 2018년 진행한 예타조사 22건 중 17건이 AHP 0.5점 이상을 기록하며 통과율 77.3%에 머문 것과 비교하면 15%포인트(p) 이상 통과율이 올랐다.
2019년엔 인천 서도 연도교건설 사업이 0.483점, KIST(한국과학기술연구원) 연구동 환경 개선사업이 0.377점을 받아 AHP 기준에 미달했고, 지난해에는 부산도시철도 하단~녹산선 건설사업이 AHP 0.497점을 내 18건 중 단 1건만이 예타에서 걸려졌다.
2019~2020년 예타 조사 통과율이 높아진 것은 비수도권 사업에 대한 예타기준을 완화한 때문이다. 기재부는 2019년 4월 기존 예타 조사 방식이 경제성 평가 비중이 높아 지방사업에 불리하다는 지적이 잇따르자 개편방안을 발표했다. 비수도권 사업에는지역균형발전 가중치를 30~40%로 5%포인트(p) 확대하고, 대신 경제성 평가 가중치를 내렸다. 또 AHP 권한을 조사기관이 아닌 전문가위원회로 넘겨 경제성(B/C) 평가가 곧바로 AHP 계산에 이어지지 않도록 했다.
그 결과 지방사업에 대한 예타 문턱이 대폭 낮아졌다는 게 당국의 설명이다. 2020년 예타조사 사업의 평균 B/C 값은 1.19로 2018년 1.22에 비해 0.03포인트 낮아졌지만 AHP 평균값은 0.616으로 2018년 0.541에 비해 0.075포인트 올랐다. 2019년은 평균 B/C값이 1.23으로, AHP 0.588로 집계됐다. 경제성과 무관하게 종합평가 점수가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경제성 충족기준인 B/C값 1 이하이면서도 AHP값은 0.5점 이상인 사업은 2019년 6건, 2020년 5건으로 집계됐다. 사업비 1조1955억원 규모인 제천~영월 고속도로 건설사업은 지난해 예타 조사에서 B/C 0.46점으로 경제성이 기준치의 절반이 채 안됐지만 AHP에선 0.559점으로 예타조사를 통과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기재부 관계자는 "예타 조사는 1999년 도입 당시 경제성만을 평가기준으로 삼았지만 2000년 이후 제도 개편마다 지방 균형 발전에 대한 평가 비중을 늘려왔다"며 "2019년 재편 이후 비수도권 사업을 중심으로 예타 통과율이 높아졌다"고 설명했다.
지방사업에 대한 문턱이 낮아졌지만 정치권의 예타 완화 요구는 여전하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는 올해 7월 경제재정소위를 열고 예타 조사 주관부서를 기재부에서 각 부처로 이관하는 것을 골자로 한 국가재정법 일부개정안을 검토했다. 기재부가 일률적으로 예타 조사를 진행하면서 경제성 위주 사업이 우선 분류돼 예타 조사를 받게 되고, 지역 균형 발전과 형평성 고려가 적다는 논리다.
기재부는 예타 조사의 객관성과 일관성을 이유로 반대 입장을 냈다. 이에 국회 기재위는 3개월 내 대안을 마련하라고 요구하며 사실상 '최후통첩'을 한 상태다. 정부는 최근 '초광역협력 지원전략'을 발표, 총사업비 1000억원 미만이면서 국비보조 500억원미만 사업에 대해선 예타없이 지방자치단체 주도로 사업을 진행하도록 했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예타 면제 사업이 136건에 달해 예타 우회로를 넓혔다는 비판도 나온다.
박현 서울시립대 국제도시과학대학원장은 "2019년 예타조사 재편으로 그동안 과했던 예타 조사의 구속력이 다소 정상화된 측면이 있다"면서도 "예타의 기능이 현업 부서와 재정당국 간 정보 비대칭을 완화하고 객관적 사업평가를 하도록 하는 것인만큼 독립적인 평가 보장이 가능하도록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